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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호의 미디어비평] 중년여심 뒤흔든 멜러판타지… ‘별그대’ 그리고 ‘밀회’

[김경호의 미디어비평] 중년여심 뒤흔든 멜러판타지… ‘별그대’ 그리고 ‘밀회’ 기사의 사진

2014년 초 드라마시장을 흔든 러브스토리

[쿠키 미디어비평] 올 상반기 여심(女心)을 뒤흔든 2개의 TV드라마를 꼽아보자. 주저없이 SBS의 ‘별에서 온 그대’(별그대)와 jTBC의 ‘밀회’(密會)라고 말하고 싶다. 둘 다 멜로판타지다. 당연히 주제는 애절한 남녀간 사랑이야기다.

별그대에 이어 밀회가 1970년대 극장가를 흔들었던 영화 ‘러브스토리’의 애잔한 사랑을 그대로 되살려놓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일각에서 두편의 드라마가 ‘러브스토리’의 감성을 2014년 중년 여성층에 다시 고스란히 심어놓았다고도 한다. 여성층의 감성을 흔들지 않고서는 당분간 대박드라마를 기대하기 힘들지 않느냐는 전망도 나온다.

별그대의 감성이 채 가시기도 전에 밀회가 중년의 여심을 다시 뒤흔들어놓았다. 지상파가 아닌 종편인 jTBC의 밀회는 입에서 입에서 세간의 공감대를 형성해나갔다. 마지막 16회가 방영된 5월 13일 시청률은 5.4%(닐슨코리아 기준)까지 올랐다. 종편채널과 중년여성을 소재로 한 물리적 한계를 감안해볼 때 경이적인 기록이 아닐 수 없다.

밀회는 ‘나의 이야기’ 공감대

이미 종영된 드라마가 잔잔한 여운을 남기는 이유는 무엇일까. 월화드라마 밀회가 방송되던 기간중 월·화요일은 ‘밀(密)요일’이었다. 시청자 대부분 중년 여성들이었다. 다들 지나간 시간을 되돌리는 ‘자신들의 이야기’라고 감정이입을 했다.

별그대는 ‘나만 바라보는 완벽남’의 젊은층 로망을 충족시켰다면, 밀회는 ‘뒤늦은 되돌아봄’을 통해 중년층 내면의 욕망을 표출한 판타지라 할 수 있다.

밀회의 주제 역시 흔하디 흔한 불륜이다. 40대의 남부러울 것이 없는 출세한 여성이 아들뻘의 20대 퀵서비스 청년과 순수한 사랑에 빠진다는 설정 자체가 그렇다. 시나리오만 본다면 막장도 이런 막장이 없다. 피아노천재 이선재(유아인 분)란 순진무구 청년을 사랑한 오혜원(김희애 분)의 관계는 지극히 단순하고 따분하고 심지어 불쾌감마저 느끼게 할 수 있는 주제였다.

입소문을 통한 ‘조용한 대박’의 요인

하지만 밀회는 막장도 아니고 천박하지도 않다. 더욱이 ‘불륜스럽다’는 느낌도 주지 않는다. 오히려 ‘수십년 내 마음 깊은 곳에 감춰둔 속내를 들켰다’는 시청자들의 ‘제발저림’이 공감대 확산의 연결고리로 강력히 작동했다. 불륜드라마의 진화니 ‘웰 메이드 드라마’라는 평도 있지만 주시청자인 40대 여성층과의 감성공유가 ‘조용한 대박’을 낸 결정적인 요인이다.

담담하기만 짧은 대사에서 ‘왠지 눈물이 나온다’고 한다. 이러한 시청자들의 애잔한 반응은 ‘어쩌면 나도 오혜원과 똑같은 인생을 좇아오지 않았나’하는 자조인지도 모른다. 주인공들의 대사는 중년여성층이 오래동안 가슴속에 묻어둔 ‘내면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사랑에 빠진 중년여성의 독백은 시청자들의 가슴에 꽃혔다. “심장은 진작에 모래주머니가 돼버렸는데~”(6회) “집이라는데가, 가끔은 직장 같을 때도 있단다”(7회) “지금 이시간은 이 차맛으로 기억해둘게”(16회)라는 전회에 걸친 간접화법 속 자기독백 들이다. “나 지금 너 아주 무섭게 혼내준거야. 주제넘게 굴지 말고 반성해”(5회)라는 첫 키스후의 우회적 화법은 중년여성 시청자들을 더욱 강력하게 끌어당겼다.

마지막 16회. 수인(囚人) 오혜원의 최후진술은 절정에 다다랐다. “그 친구는 그저 정신없이 걸레질을 했을 뿐입니다. 저라는 여자한테 앉을 자리를 만들어주려고 애쓴 것뿐이었는데, 저는 그때 알았습니다. 제가 누구한테도 그런 정성을 받아보지 못했다는 걸요”

‘진작에 모래주머니가 된 내 심장’ ‘직장같은 내 집’

이런 대사들이 빛을 발하는 이유로 먼저 김희애의 탁월한 연기력을 꼽고 싶다. 오로지 세속적 목표를 향해 이전투구로 달려온, 그 결과 우리사회에서 남부럽지 않은 귀족으로 출세의 사다리를 타고 올라간 중년여성의 뒤늦은 가슴속 고독을 절묘하게 표현해냈다.

톱스타 김희애만이 할 수 있는 연기가 아닌가 싶다. 도도함과 자신감으로 가득 채워진, 품격있는 듯한 껍데기 속에 원초적 욕망을 철저하게 숨겨놓았던 오혜원. 그 이중적 캐릭터를 완벽하게 소화해냄으로써 김희애는 시청자의 공감대를 더욱 확장할 수 있었다.

여기에다 드라마 제작팀(연출 안판석 극본 정성주)의 탁월한 연출력을 다시 꼽지 않을수 없다. 자칫 불륜으로 갈만한 스토리를 품격있는 멜로드라마로 변화시켰다. 한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화면연출, 그리고 애잔한 배경음악은 드라마의 품격을 한껏 올려놓는 결정적 역할을 했다. 특히 슈베르트의 ‘피아노를 위한 판타지아’, 리스트의 ‘스페인 광시곡’, 라흐마니노프의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랩소디’ 등 OST는 시청자의 멜로감성을 증폭시켰다.

jTBC 시청자 게시판에는 아직도 ‘밀요일’의 가슴앓이가 계속되고 있다. 드라마에 대한 입소문의 힘은 무섭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미 다시보기를 넘어 해외까지 입소문이 났다는 후문이다.

‘후회하지 않는 사랑’ vs ‘두려움 없는 사랑’

게시판에는 가슴시린, 그리고 애잔한 자신의 독백과 감성을 은유한 시(詩)로 공감을 표시하는 여성시청자들이 적지 않다. 그들 모두 밀회를 ‘후회없는 사랑’, 그리고 ‘두렵지 않은 사랑’으로 규정했다.

별그대 역시 ‘죽음도 마다않고 언제 어디서든 나만 바라보는 사랑’이 드라마 전편에 깔려있었다. 초능력까지 갖춘 완벽남의 도민준(김수현 분)이 천송이(전지현 분)를 향하는 사랑은 초현실적인 헌신 그 자체다.

반해 드라마 밀회는 20대 순수청년을 향한 중년여성의 평범한 사랑이야기다. 40살의 오혜원에게 이선재는 뒤늦은 풋풋한 설렘이자 내면의 자아를 새롭게 발견하게 만든 기폭제였다.

젊은 청년과의 사랑은 서한예술재단을 둘러싼 음악계의 검은 욕망과 비리를 과감히 고발하는 정의감으로 전이되었다. 또 수십년간 돈과 권력이란 세속적 가치에 함몰된 속물같은 자신의 인생을 뒤늦게 되돌아보는 심적 동력이었다. 그리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순수한 사랑을 선택하는 암시로 드라마는 막을 내린다.

세대를 넘는 불륜과 이로 인한 가정해체라는 시나리오 설정은 윤리적 도덕적 파괴성을 갖고 있다. 그런데 욕망과 비리의 중심에 있던 자신의 껍데기를 깨뜨림으로써 오혜원은 가장 순수하고 인간적이면서 정의로운 캐릭터로 재생산되었다. 음악계의 검은 비리와 추한 권력암투는 역설적으로 순수한 사랑이 더욱 빛을 발하게 만들었다.

별그대와 밀회의 계속되는 여진

몇 십년 쌓아올린 부와 권력 등 세속적 가치를 모두 포기하고 사랑을 선택한 40대 여성의 러브스토리. 황금만능의 요즘 세태에서 볼 때 단순한 로맨틱이나 멜러가 아닌 판타지가 될 수밖에 없다. 여성시청자들이 열광하는 이유다.

별그대의 신드롬에 이은 밀회의 여진은 당분간 이어질 것 같다. 우리의 삶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오혜원의 삶을 훔쳐보면서 모두들 다시 공감을 느낀다. 이미 ‘모래주머니’가 된 가슴을 안고 ‘직장같은 집’을 수없이 오가는 중년이 된 자신을 문득 발견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별그대와 밀회가 남긴 이러한 가슴속 후유증들이 TV드라마시장에 남아있는 것 같다. 매주 월화드라마 전쟁에서 ‘드라마 대박’을 꿈꾸는 방송사 PD들에게 이러한 후유증들은 당분간 해결하기 힘든 고민거리가 아닐 수 없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방송문화비평가 kyungh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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