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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호의 미디어비평] KBS ‘걸어서 세계속으로’ 출연자 조작, 감춰진 그 뒷이야기

[김경호의 미디어비평] KBS ‘걸어서 세계속으로’ 출연자 조작, 감춰진 그 뒷이야기 기사의 사진
인터뷰 출연자 성(性)을 갈다니… 심각한 저널리즘 훼손

KBS 1TV 대표적인 여행다큐 <걸어서 세계속으로>(연출 김성기 등)가 출연자 인터뷰 명단 조작사건에 휘말려 된서리를 맞았다. ‘생생한 현장감’을 생명으로 하는 리얼 다큐멘터리가(다큐물) ‘출연자 명단 조작’이라니, 저널리즘이란 측면에서 상상할 수 없는 대형사건이 아닐 수가 없다.

<걸어서 세계속으로>는 지난 9일 ‘교황 방한 특별기획-천국으로 가는 열쇠. 로마 & 바티칸’편을 방송했다. 그런데 담당PD가 현지 취재 중 인터뷰 출연자들의 이름이 적힌 메모지를 분실하자 이탈리아 축구팀 선수들의 이름을 임의로 붙여서 자막처리해 방송했다. 시청자들의 의혹제기로 결국 조작의 진상은 밝혀졌다. KBS 게시판에는 ‘시청자를 우롱했다’ ‘진짜 취재를 한거냐’는 비난들이 올라왔다.

결국 KBS 함형진 교양문화국장과 외주제작사인 미디어쿠오레 강성철 대표가 잇따라 시청자들에게 머리 숙여 사과하기에 이르렀다. 미디어쿠오레 강 대표는 사과문에서 “가장 기초적이고 또 정직해야할 부분에 있어서 과오를 범했다”면서 “결코 있어서는 안되는 사고였다. (중략) 30여년간 방송프로그램을 제작해왔던 피디로서 참담함과 부끄러움을 절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사건은 담당 제작PD에 대한 중징계조치로 일단락되는 듯 하다.

<걸어서 세계속으로>는 이번 프란치스코 교황방한을 400회 특별기획으로 제작했다. 명단조작으로 결국 빛이 바래버렸지만 이번 프로그램의 기획은 물론 작품성 등에서 다큐물로는 아주 공들여 만든 수작(秀作)으로 평가한다.

바티칸시국 내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지하공간 취재나 베드로성당 돔 공개, 프란치스코 교황이 존경했다는 성인 프란치스코의 마을 ‘아시시’는 시청자들에게 청빈과 검소함에 대한 남다른 여운을 남겼다. 또 교황의 여름 별장의 전경 등은 그동안 접하지 못했던 장면들이어서 더욱 눈길을 끌었다. 그런 탓에 안타까움을 더해준다.

조작으로 빛바랜 기획 및 작품성…시청자들 안타까움 더해

다큐물은 사실(事實·Fact)에 기초한다. 그런 점에서 다큐물은 저널리즘 장르다. 그런 만큼 기본취재 수칙을 생명처럼 여겨야한다. 이번 명단조작을 심각한 사고라고 규정하는 이유다. 다큐물에서 허위 내지 조작은 저널리즘 차원에서 결코 있어서는 안된다.

KBS와 외주사의 사과와 신속한 징계조치로 이번 사태는 일단락되었지만 이쯤에서 다시 한번 짚어볼 것들이 있다. 먼저 이같은 사건이 왜 일어났을까? 다시 되풀이 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는가?

첫째, TV 프로그램을 제작하다 보면 시청자 눈에는 잘 띄지 않지만 사실의 과장, 왜곡, 심지어 조작의 순간과 유혹들이 수없이 다가온다. 그럴 때마다 PD들의 머릿속에는 ‘잘 눈에 띄지 않는 왜곡’은 어느 정도 용인된다는 ‘포장우선의 메카니즘’이 작동한다.

실례로 이명박 정부 당시 MBC PD가 ‘제야의 종’ 타종식을 생중계 하던 중 시위소음을 제거하려 오디오 채널3을 닫는 사고가 있었다. 이 역시 명백한 현장에 대한 왜곡이자 사실조작으로 큰 파문을 일으켰다. 하지만 뉴스를 제작하는 기자직군에서도 비슷한 일들이 종종 일어난다. 예를 들어 방송사들의 9시 메인뉴스에서도 긴장감이 감도는 DMZ를 보여주면서 오디오효과를 극대화하려고 대남방송 오디오를 빼버리고 대신 가요나 클래식 음악을 배경음악으로 까는 자체도 사실왜곡이다. 뮤직비디오가 아닌 이상 현장 그 자체가 가감 없이 시청자들에게 전달되어야 진정한 저널리즘이다. 기자들의 리포트 취재에서도 이럴진대 PD직군에 저널리즘 원칙을 과도하게 요구할 수도 없다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기자든 PD든 저널리즘의 생명은 사실보도에 있다는 점을 되새겨보아야 한다.

방송인들의 저널리즘 원칙의 몰이해…jTBC의 출연자가 밝힌 ‘시청자 사기술’

지난 8월 14일 제76회 jTBC의 <썰전>도 ‘예능심판자’ 비평에서 ‘걸어서 축구속으로’라고 비꼬면서 이번 사태를 다루었다. 그런데 출연자중 한명의 멘트는 상당히 위험했다. ‘하필이면 세계적으로 유명한 이탈리아 축구 선수들의 이름을 인터뷰에다 갖다 붙였나. 평범한 이탈리아 사람 이름을 붙이면 될텐데’라는 발언대목이다. 한마디로 저널리즘의 기본은커녕 언론인으로서 기본소양을 의심케 한다. PD가 평범한 이탈리아 사람 이름을 마음대로 붙여 시청자들이 알아채지 못하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넘어갔으면 되었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설사 그렇게 넘어갔다 해도 PD는 자기 양심을 속이고 팔아넘긴 것이나 다름없다. 기자의 양심은 최고의 저널리즘 잣대라 하지 않는가.

둘째, <걸어서 세계속으로>는 PD 1인이 기획 촬영 편집 원고작성 등 제작 전과정을 책임진다. 한마디로 ‘1인 제작, 즉 원맨시스템(One Man System)’이다. 이 프로그램 뿐 아니라 ‘VJ특공대’나 ‘다큐3일’도 PD 혼자 전담한다.

되짚어보면 이번 제작사고 역시 ‘효율성 지상주의’ 잣대로 도입된 ‘1인 시스템’이 빚어낸 참극이다. PD 혼자서 그야말로 ‘북치고 장고치고’ 혼자 다해야한다. 기획하고 연출하고, 게다가 내레이션 문안까지 만들어 오디오를 입히고 비디오 편집까지 해야 한다.

매주 ‘걸어서 세계속으로’를 보다보면 어떤 경우 안쓰러운 PD의 모습도 보인다. 예를 들어 화면 속에서 PD가 홀로 촬영하고 취재하며 다음 여정을 준비하는 모습이 노출된다. 심지어 ‘패키지 투어’ 취재도 엿보인다. PD가 다른 관광객들에 끼어서 동분서주하는 모습들이다. 외주제작PD에게 지급되는 제작비는 턱없이 낮다. 일반인 관광경비에 비해 결코 많지 않은 제작비용을 주고는 ‘품질 좋은 방송프로그램을 제작하라’고 요구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지상파-외주제작사간 불공정 거래가 낳는 구조적 적폐들

셋째, 구조적 문제점으로 외주제작사가 제작한 프로그램이라는 점이다. 이번 사태의 모든 책임은 독집제작사인 ‘미디어쿠오레’에 있다. KBS에는 전적으로 외주제작사의 잘못이라는 정서가 저변에 깔려있다. 사실 KBS가 잘못한 것은 없다. 외주제작사로 하여금 담당PD 징계하도록 요구하고 외주제작 일감을 주지 않으면 된다. KBS등 지상파방송사는 외주사에게 ‘갑’(甲)이다. 외주제작사는 밉보이면 프로그램 납품이 중단될 수도 있다. 외주사 대표 역시 현직PD로 활동하다 퇴직 후 현직 후배PD들과의 인간관계로 외주납품을 하는 게 방송가의 일상적 관행이다. 대형사를 제외한 나머지 외주제작사들은 항상 ‘을’(乙)의 입장에 서 있다.

영세한 독립제작사들의 몸부림은 눈물겹다. 지난 2013년 10월 31일 방송외주제작사들의 단체인 (사)독립제작사협회는 기자회견을 갖고 방송 외주제작 분야에서 지상파 방송사의 저작권 독점 횡보가 심각하다며 제작비 삭감과 인사권 압력, 저작권의 포기 등을 무리하게 요구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하지만 지금도 지상파 방송사의 막강한 힘에 밀려 독립제작사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프로그램 납품을 할뿐 정상적인 제작비나 저작권 행사 등에서는 별다른 권한을 갖지 못하고 있다. 불공정행위로 제소해봐도 공정거래위원회는 방송사 눈치만 살피다가 이내 외면해버렸다.

바야흐로 지상파 TV마다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상당수가 외주제작사들이 제작납품하는 프로그램들이다. 최근 불어닥친 리얼프로그램은 그야말로 사전 각본이나 연출없이 생생한 있는 그 자체를 보여주는 장르로 성장했다. 리얼프로그램은 최근 다큐멘터리의 장르를 넘어 예능영역으로 확대되고 있다. 리얼을 앞세운 프로그램들은 올들어 높은 시청률로 불황임에도 효자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조작사건을 계기로 격조있는 여행 프로그램으로 거듭나길

리얼 다큐는 시청자들에게 사랑을 받는 대표적인 장르 중 하나다. 그중에서도 ‘대형사고’를 친 KBS1 TV의 <걸어서 세계속으로>, EBS의 <세계테마기행>은 가장 인기있는 간판급 프로그램이다.

KBS의 <걸어서 세계속으로>는 매주 토요일 오전 가 끝난 직후 온 가족이 함께 보는 대표적인 가족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았다. 또 평일 저녁 8시50분 편성된 <세계테마기행>도 지난 8월 19일부터 ‘미지의 땅, 중국 네이멍구’를 시리즈로 방송했다. 지난 2008년 2월 25일 첫 전파를 탄 뒤 무려 6년이 지난 최장수프로그램이다.

이제 여행 다큐는 단순히 여행 정보 프로그램을 벗어나 배낭여행자가 느끼는 자유로운 현장체험을 생생하게 전해준다. 이를 보면서 시청자들은 간접으로나마 고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이국나라에서 휴식과 위안, 마음의 여유, 때로는 미래에 대한 희망을 발견한다.

이번 사태를 거울삼아 ‘걸어서 세계속으로’가 매주 시청자들에게 성숙한 모습으로 더욱 다가서길 바란다. 아울러 KBS도 열악한 제작비 등 제작여건을 개선하고, 1인 시스템이 갖는 비효율성, 독립제작사와의 해묵은 저작권 논란을 해결하고 보다 격조있는 리얼체험 여행프로그램을 많이 제작해주길 기대한다.

김경호 방송문화비평가 kyungho@kmib.co.kr

blog.daum.net/alps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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