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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호의 문화미디어비평] 한류가 식는 일본, TV드라마와 예능을 되짚어본다

[김경호의 문화미디어비평] 한류가 식는 일본, TV드라마와 예능을 되짚어본다 기사의 사진
기모노를 입고 도쿄 중심 아카사카 거리를 걷는 일본인 여성들. 어떤 한국드라마를 보느냐는 질문을 외면한 채 바쁜걸음을 재촉했다. 도쿄=김경호 방송문화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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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급한 쓰나미 무차별 상륙?… ‘러브레터’가 보여준 日대중문화

한국의 일본 대중문화 개방은 많은 우려를 낳았다. 1998년 이후 부산 등 남해권을 중심으로 일본의 저급한 대중문화가 위성방송을 타고 국경을 넘어 들어오던(이른바 Spill-Over) 당시 문화개방은 엎친데 겹친 격이었다.

개방직후 당초 우려한 일본 문화의 쓰나미 상륙은 일어나지 않았다. 반대로 일본문화에 대한 규제가 풀리자 첫 선을 보인 일본의 영화, 연극, TV콘텐츠들이 호평을 받았다.

대표적으로 1995년 일본에서 개봉된 ‘러브레터’(감독 이와이 슌지). 국내에서 뒤늦게 개봉된 이 영화는 ‘잘 지내시나요?’라는 ‘오겡키데스카?’라는 유행어로 국내에 ‘러브레터 신드롬’을 만들어낼 정도였다. 한국 TV에서는 이를 패러디하는 예능 프로그램들이 늘어났고, 촬영무대였던 일본의 홋카이도 삿포로의 오타루는 금세 한국인들이 몰리는 유명관광지로서 국내에서 유명세를 탔다.

하얀 눈이 쌓인 산기슭에서 ‘오겡키데스카?’를 외치는 여주인공 후지이 이츠키(나카야마 미호 분) 애잔하고 갸날픈 목소리는 한국영화 팬들의 가슴을 뒤흔들었다. 영화 이외에도 여러 형태의 일본 대중문화는 한국인들에게 좋은 첫인상을 남기며 이후 선순환 유통구조를 만들어냈다. 그동안 무조건 틀어막는 규제중심 문화정책의 한계를 체감하는 계기도 되었다.

<겨울연가> <대장금>이 한류의 불씨…韓日 문화교류가 글로벌 경쟁력

1998~2004년까지 단계적으로 진행된 일본 대중문화 개방은 일본에도 한국의 대중문화, 즉 한류열풍을 만들어냈다. 일본은 물론 대만 등 동남아에서 한류를 잉태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2002년 1월부터 2002년 3월까지 KBS 2TV가 방송한 <겨울연가>(연출 윤석호 극본 윤은경 김은희)는 배용준과 최지우를 일약 글로벌스타로 만들어냈다. 심지어 ‘욘사마’(배용준님) 내지 ‘지우히메‘(지우 아가씨)란 말을 만들어냈고, <겨울연가> 촬영지 춘천과 남이섬은 매년 일본관광객들로 넘쳐났다. 이후 ‘끼’있는 연출자들이 만든 멜로드라마가 일본 등 아시아인들의 감성을 흔들었고, 기승전결 있는 창의적 제작방식은 미국 할리우드를 훨씬 능가한다는 호평까지 받았다.

2003년 NHK가 일본 전역에 <겨울연가>를 방송하자 한류 신드롬은 가히 폭발적인 성장세를 탔다. 시청률은 무려 38%로 일본인 10명중 4명가량이 시청했다. 이후 한국 TV는 한류의 열풍을 이어오고 있다. 2003년 9월 15일부터 2004년 3월 23일까지 방송된 MBC 드라마 <대장금>(연출 이병훈 극본 김영현) 역시 여주인공 이영애를 한류스타덤에 올리면서 일본은 물론 아시아전역에서 선풍적인 인기몰이를 했다. 이같은 한국TV드라마는 한류라는 신조어를 만들며 이른바 ‘한국문화의 세계화’를 앞당기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대중문화 규제가 남았다면 한류도 결코 없다

일본문화개방 이전에는 상상도 어려운 성과물이 아닐 수가 없다. 2000년 이전에는 소위 ‘왜색’이 깊은 대중문화 콘텐츠는 국민저변에 깔려있는 반일감정을 타고 반발을 샀다. 대중문화 반입이 규제되자 방송포맷만을 사다 드라마 예능에 접목하며 일본방송 콘텐츠를 모방했다. 마치 지금 중국TV가 한국의 방송포맷에다 중국인들을 채워 넣는 이른바 ‘포맷 프로그램’들과 같은 콘텐츠가 전부였다.

사실 이전에는 한국TV 대부분 일본 방송콘텐츠를 베끼다시피 했다. ‘표나지 않게 잘 베끼는 PD’가 유능한 연출제작자였던 시절이 있었다. MBC 김영희 대PD의 일화는 지금도 방송가에 회자되고 있다. 일본예능방송이 하듯 큼지막한 자막을 국내 처음으로 자신의 프로그램에 올리자 MBC 고위간부로부터 ‘무슨 이렇게 난삽하게 만드냐. 일본방송 만들 셈이냐’는 거센 질책을 받았다고 한다. 결국 3개월간 그 간부를 피해 다녔더니 어느날 모든 TV방송사들이 그 자막포맷을 그대로 따라왔다는 후일담에서 당시 일본 TV문화에 대한 우리의 기피증후군을 느낄 수가 있다.

한류열풍이 휩쓴 이후 일본 내 판도는 완전히 달라졌다. ‘저급한 일본문화가 대량 유입될 것’이란 문화역전(文化逆轉)이 아니라 일본 내에 한류의 싹이 무섭게 움터 올랐다. 2000년대 후반 한국 TV예능은 무섭게 일본사회를 파고들었고, 결국 한국드라마 등 예능프로그램의 일본 내 파워는 매우 커졌다. 일본문화개방의 수혜자는 한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드라마 열풍 이후 후지TV와 TBS, NTV의 예능에 한국의 아이돌과 탤런트 등 한류주인공들이 잇따라 출연하자 한국인들에 대한 일본인들의 호감도는 높아졌다. 최근에도 일본 TBS의 <비밀의 아라시짱>이나 NTV의 에서 한국에서 활동한 일본인들이 한국을 소재로 한 여행버라이어티로 한류의 불씨를 이어가고 있다.

외교경색도 규제의 일종…두드러진 도쿄 일본인들 한류 외면

그러나 지금 한류열풍이 식어가는 것은 틀림없다. 일본인들의 반한감정을 반영한 일본TV들이 잇따라 한국의 드라마나 예능을 편성하지 않는 탓이다. 도쿄를 가보면 지난 2012년 한일관계가 급속히 냉각된 이후 일본 내 한류는 심각할 정도로 흔들리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다. 한일 민간교류까지 줄어들 정도로 일본사회에 한국인 내지 한류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매우 강하다.

그럼에도 MBC의 <무한도전>과 <우리 결혼했어요>, KBS2의 <해피선데이-슈퍼맨이 돌아왔다> 등은 지금 일본에서 여전히 인기가 있다. 일본 현지 로케나 귀화한국인 추성훈과 딸 추사랑의 출연이 일본인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중심의 일방적인 제작이 아니라 일본인들의 TV제작 참여에 그나마 공감하고, 마음을 열고 있다는 반증이다.

민족주의 성향이 강한 아시아, 그것도 과거사에 아픔을 가진 한일간에 장기화되고 있는 정치외교적 경색은 결국 ‘문화적 응축현상’을 낳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지난 8월 23일 일본 도쿄 와세다대에서 열린 ‘2014년 제20회 한일국제심포지엄’에서 한일 언론학자들은 이러한 문화경색국면을 우려했다.

이날 도쿄대 대학원 학제정보학부 오유라(박사과정)는 ‘2000대 이후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본 한일간 상호 이미지’이라는 주제발표에서 “미디어 문화영역에 외교적인 요인이 영향을 미치고 미디어가 그러한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역할도 한다”면서 “하지만 현시점에서 한국의 예능프로그램에서 일본관련 이미지가 나타나고 있는 것은 문화교류의 관점에서 눈여겨볼 만한 현상”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유연하고 탄력적인 對日 문화정책 아쉬워…오히려 문화공감대 넓혀갈 때

지난 15년간의 한일문화교류를 통해 문화영역은 정치외교적 토대로부터 직접적 영향을 받는 하부구조라는 사실이 확연히 드러난다. 정치외교적 관계가 활성화될 때 문화미디어영역도 활성화되는 비례적 연관관계를 나타낸다는 점에서다. 이명박 정부 후반이던 지난 2012년부터 급속히 냉각된 한일관계는 문화개방후 15년 넘도록 양국간 축적된 문화관계 마저 여지없이 깨뜨리고 있다.

이번 도쿄 국제심포지엄에서 한일 언론학자들은 ‘공생’과 ‘공감’을 강조했다. 참석자들은 ‘양국이 정치수준과 문화수준에서 공생, 공감할 수 있는 형태를 모색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며 한일공동연구의 가능성을 모색하자고 했다. 상호 이해는 결국 시간이 걸리더라도 공감대를 넓히는 것이 지름길이 아닌가.

한일간에 문화적 기피대립이 아니라 문화적 공감은 불가능한 것일까. 문화부가 정치외교와 문화미디어를 분리하는 유연성과 탄력성을 가질 수는 없는 것일까. ‘모 아니면 도’라는 식의 맹목적 민족주의에 ‘올인’ 되어버리는 미숙한 문화당국의 정책부재가 15년 이상 축적된 한류의 불씨를 꺼뜨려 버린다면 너무나도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도쿄(일본)=김경호 방송문화비평가 kyungho@kmib.co.kr blog.daum.net/alps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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