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오피니언 > 칼럼 > 문화비평

[김경호의 문화비평] ‘비긴 어게인’ 집단감성을 녹여낸 MBC ‘무한도전’

[김경호의 문화비평] ‘비긴 어게인’ 집단감성을 녹여낸 MBC ‘무한도전’ 기사의 사진
‘사회적 루저’들의 스토리… 영화 ‘비긴 어게인’

요즘 세상 참 어렵다고들 한다. 팍팍한 삶의 현장에서 자칫 좌절과 실의에 빠지기가 쉽다. 그런 만큼 ‘세상은 한번 살아볼만한 곳’이란 긍정과 희망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지금이다. 이 순간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다시 시작하기’가 아닐까.

‘다시 시작하자’는 뜻의 ‘비긴 어게인’(Begin Again)은 아픈 한국사회를 관통하는 최적의 감성인 것 같다. 초유의 청년실업난에 베이붐 세대의 조기퇴직, 깊은 불황의 그림자가 우리를 억누를 때마다 ‘다시 시작하자’는 재기 메시지는 사그라든 가슴속 열정의 불씨를 다시 지피운다.

지난 8월 개봉한 영화 <비긴 어게인>은 2014년 가을 상처받은 우리사회에 많은 여운을 남기고 있다. 웃고 지나가는 단순 로맨틱 코미디물이 아니라 제목에 치유와 재기의 다짐이 담겨있다.

이 영화는 지난 10월 21일 현재 1700만명을 동원하며 사상최고 흥행기록을 세운 영화 ‘명랑’(감독 김한민)에 그대로 묻히는가 싶었다. 지난 20일 현재 관객 340만명을 돌파한 이 영화는 개봉 3개월이 넘도록 여전히 극장가를 점하고 있다. 뉴욕을 배경으로 한 남녀주인공들의 인생스토리를 다룬 로맨틱 코미디물이지만 ‘비긴 어게인’이란 메시지는 매우 강력했던 것 같다.

미국사회에서 한마디로 ‘디스’된 나이먹은 왕년의 스타 음반 프로듀서와 역시 스타가 된 남자친구에게 졸지에 실연당한 싱어송라이터가 좌절과 실의의 날을 보내다 우여곡절 끝에 음악을 통해 재기한다는 줄거리다. 뻔한 스토리의 로맨틱 코미디의 틀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상처입은 영혼’ 재기를 그린 뮤직 & 로맨틱 코미디 여운

하지만 ‘비긴 어게인’의 반향은 지금도 작지 않다. 명성과 사랑에 차인 무일푼의 주인공들이 의기투합해 거리밴드를 급조해서 뉴욕도심을 배경으로 악기를 연주하고 노래하는 장면은 깊은 인상을 남긴다.

뉴욕까지 와서 스타남자친구에게 차여버린 싱어송라이터 그레타(키이라 나이틀리 분)와 해고된 이혼남 음반프로듀서 댄(마크 러팔로)은 용기를 잃지 않고 음악으로 인생을 다시 시작하고 결국 성공한다.

영화 ‘원스’(2007)로 잘 알려진 존 카니 감독은 주인공들의 ‘상처난 영혼’을 관객들에게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이어 주인공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격려하면서 희망과 꿈을 되찾아가는 과정을 섬세하게 묘사했다.

주인공들은 뉴욕도심을 스튜디오 삼아 연주하고 노래한다. 하지만 둘이 사랑에 빠진다는 통속적인 결론은 없다. 실패할 뻔한 주인공들이 우연한 만남을 통해 ‘비긴 어게인’하고 결국 과거 자신들이 있던 제자리로 돌아간다.

영화 ‘비긴 어게인’은 꿈과 희망의 힘을 보여준다. 인생 밑바닥에 떨어진 주인공들이지만 그들에겐 열정과 사랑과, 재기를 향한 꿈이 있었다. 맨해튼과 차이나타운,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 등 뉴욕 도심 그 자체가 무대였고, 또 살아가는 현장이었다. 그래서 OST에는 도시인들의 사랑과 이별, 고된 삶과 역경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요즘 연인들이나 가족들은 물론이고 좀처럼 보이지 않던 40~50대 중년남자들이 영화관 객석 곳곳을 차지하는 모습이 눈에 띈다.

MBC 김태호PD가 <비긴 어게인>의 감성을 최근 <무한도전>에 잇따라 담고 있다. 400회 특집주제도 다름아닌 ‘비긴 어게인’이었다. 여기서 서로를 알고 배려하고 재기하려는 무도 멤버들의 모습 그려졌다. 치열한 경쟁, 좌절과 절망, 고독과 무기력을 털고 일어나 ‘우리는 할 수 있다’는 강한 의지도 상징적으로 화면에 담았다.

‘비긴 어게인’ 감성을 녹여낸 MBC ‘무한도전’ 400회

아닌 게 아니라 지난 10월 18일 방송된 무도 400회 특집은 시청률 12.4%(닐슨코리아 전국시청률 기준)를 기록해 동일시간대 지상파 예능프로 중 1위를 차지했다. 400회란 특수도 있었지만 ‘비긴 어게인’이란 집단감성 자극이 시청률제고에 도움이 된 것이 아닌가 싶다. 시청자들이 그만큼 공감한다는 의미이다.

시청률이란 외형만 볼 때 무도는 재기 발판을 굳혔다. ‘시들시들 끝나가는 거 아니냐’는 곱지 않은 평가도 한때 있었지만 그럴 때마다 무도는 시련을 딛고 일어서는 ‘불굴의 의지’를 보여주었다.

2006년 5월 ‘무(모)한 도전’으로 첫 방송을 시작한 무도는 지난 8년 넘게 주시청자인 10~20대 젊은층을 웃기고 또 울렸다. 그런 의미에서 400회 특집 ‘비긴어게인’은 초심에서 다시 시작하겠다는 다짐으로 해석된다.

최근 무도 프로그램 주제를 보면 초창기 창의력과 도전정신이 되살아나는 듯한 느낌을 갖게 한다. ‘무모한 도전’을 ‘다시 시작하겠다’는 내적 다짐이라고 할까.

유재석 박명수 정준하 정형돈 노홍철 하하 등 6명의 멤버들이 두명씩 짝을 지어 24시간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은 강한 인상을 주었다. 거의 8년 넘게 함께한 멤버들임에도 서로를 모르는 모습들이 많았다. 마치 한지붕 밑에서 수십년 살아온 가족간에도 모르는 구석들이 있듯이 시청자들 스스로 자신의 가족들을 되돌아보게 만들었다.

흘러간 세월동안 멤버들간 다툼과 불화도 있었고, 때로는 감정이 보기 불편할 정도로 화면에 드러난 적도 많았다. 매주 토요일 무도는 가족이나 친구 등 모든 집단 내에서 일어나는 감정의 충돌과 관계의 얽힘을 여과 없이 보여주었다. 그 안에 자연스럽게 해법도 녹여 넣었다. 고운정 미운정이 다들었다.

천방지축 멤버들의 캐릭터가 오히려 강점으로 작용하지 않았나 싶다. 오히려 타 방송사의 리얼 버라이어티가 결코 따라올 수 없었던 가식 없는 솔직함이 그대로 배어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도팬은 물론 시청자들이 모두 공감한다. 제작사고나 진행 실수에 대한 시청자들의 질타가 있을 때 멤버는 물론 프로그램 제작총괄인 김태호PD가 엎드려 곤장을 맞았다. 그만큼 무도는 꾸밈없고 솔직했다는 이야기다. 무도 400회를 끌어온 생명력이다.

무한도전, 시대정신 꿰뚫는 집단감성으로 초심서 ‘비긴 어게인’ 해야

무도팬들도 나이를 먹는다. 2006년 10대와 20대 젊은층들과 30대 직장인들도 이제 아홉살을 더 먹었다. 강산도 변한다는 10년이 다되도록 무도를 보며 꿈과 희망을 키워온 주시청자들이다. ‘무모하지만 세상은 한번쯤 해볼만한 가치가 있다’고 느꼈을 당시 시청자들은 400회 특집 ‘비긴 어게인’을 보며 지나간 시간들을 반추했다.

그런 탓일까. 무도는 최근 추억의 감성을 자극한다. 제396~398회의 ‘라디오스타’는 추억이 숨어있던 시간의 껍데기를 여지없이 깨뜨려버렸다. 과거 라디오에 얽힌 시청자들의 소중한 추억들을 고스란히 되살려놓았다. ‘배철수 음악캠프’ 팬이었던 ‘중학생’ 정형돈이 이제 배철수 프로그램 일일DJ를 맡는 과정은 모두에게 지난 시간에 대한 뭉클함을 느끼게 했다.

이렇게 MBC 라디오 일일DJ로서 멤버들은 젊은 날의 꿈과 희망을 되살리면서 ‘비긴 어게인’의 감성을 자극했다. 평범한 아이템이지만 ‘라디오스타’는 청취자는 물론 TV본방 시청자 감성을 뒤흔들기에도 충분했다.

라디오스타 특집은 무도를 잘 드러낸 아이템이었다. 유재석과 ‘꿈꾸는 라디오’, 박명수의 ‘굿모닝FM’, 정형돈의 ‘음악캠프’, ‘두시의 데이트 노홍철입니다’, ‘푸른밤 하하입니다’, ‘정오의 희망곡 정준하입니다’에서 멤버들 모두 서툴지만 도전과 재기로써 웃음과 공감을 이끌어냈다.

‘시대정신’을 꿰뚫는 사회적 집단감성만이 시청자들의 공감을 쉽게 불러일으킬 수 있다. 2014년 늦가을 우리 사회를 관통하는 ‘비긴 어게인’은 깊은 여운을 남기고 있다. 400회를 넘은 무도가 우리사회의 아픔과 상처, 좌절조차도 웃음으로 치유하며 초심에서 <비긴 어게인>하기 바란다.

김경호 방송문화비평가 alps1959@hanmail.net blog.daum.net/alps1959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국민일보 신문구독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