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하청에 재하청 ‘IT 정글’서 의문사한 딸…“피해자만 있고 가해자는 없다”

현장엔 엄마가 싸준 삶은 달걀·흰 우유 든 가방뿐

고 장원향씨 가방에선 사망 전날인 2016년 3월 2일 어머니가 챙겨준 삶은 계란 2개와 흰 우유 등이 발견됐다.


IT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스스로를 “갑도 을도 아닌 병과 정 아래”라고 말한다. 최첨단 4차 산업혁명의 주역이라는 수식어는 화려한 외관일 뿐이다. 혹독한 야근과 비정상적인 대우에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사람도 있다. 국민일보는 ‘갑을병정 그 아래, 한국 IT노동자의 한숨’ 시리즈를 통해 IT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전한다. 피해자와 그 가족들도 용기를 냈다.


장상은(60)씨에게는 아직도 2년 전인 2016년 3월 3일이 생생하다. 경찰은 딸 원향씨의 것이라며 가방을 건넸다. 가방 안에는 삶은 계란 2개와 흰 우유가 그대로 있었다. 식사 시간을 제때 챙기지 못하는 딸이 안쓰럽다며 출근길에 아내가 챙겨준 것이었다.

전날 밤 딸은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리고 하루가 지난 다음날 새벽 딸의 번호로 전화가 왔다. 수화기 너머 낯선 목소리는 자신을 경찰이라고 소개한 뒤 “따님이 응급실에 있다”고 했다. 장씨는 병원으로 가는 내내 “과로로 쓰러졌을 것”이라며 스스로를 안심시켰다. 예상은 빗나갔다. 원향씨는 영등포의 한 호텔 4층 비상계단에서 1층으로 추락했다.

119 구급대원은 장씨에게 “발견했을 당시 이미 심정지 상태였다”고 말했다. 1시간 넘게 의료진이 심폐소생술을 했지만 결국 사망했다. 경찰은 실족사로 결론 내렸다. 장씨는 이해할 수 없었다. 여의도에서 근무하던 딸이 왜 영등포 호텔까지 갔을까. 엘리베이터를 두고 왜 비상계단으로 갔을까. 원향씨가 사망했을 당시 나이는 34세였다.

지난달 28일 서울 양천구 장씨의 집을 찾았다. 장씨는 세상을 등진 딸의 방으로 기자를 안내했다. 방은 딸이 살아있을 때 그대로였다. 책장엔 책이 꽂혀 있었고 행거엔 옷가지들이 걸려 있었다. 검은 색 천으로 씌워놓은 전자 피아노만이 원향씨의 부재를 이야기하는 듯했다.

고 장원향씨의 아버지 장상은씨가 지난달 28일 서울 양천구 자택에서 딸의 죽음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프리랜서였지만 ‘프리’하지 않았다

원향씨는 증권사 정직원으로 입사해 웹디자인을 담당했다. 하지만 매번 ‘승진’에서 누락됐다. 직장 상사는 “여자는 승진하기 힘들다”고 위로했다. 원향씨는 “벽을 깨는 게 어렵겠다”고 판단해 회사를 그만두고 프리랜서로 전향했다.

-가정이지만, 딸이 다니던 회사를 계속 다녔으면 어땠을까요?
“자식이 결정하는 것에 부모가 어떻게 이래라 저래라 하겠어요. 다 사정이 있겠거니 했죠. 성격도 쾌활하고 자신의 커리어를 위해 늘 열심히 살았어요. 회사를 다니면서 증권거래 관련 자격증도 따고 수영도 즐겼어요. 어디 내놔도 남부럽지 않은 모범생이었어요.”

하지만 프리랜서로 전향한 장씨의 삶은 달라졌다. 소속이 없어졌고 프로젝트가 있을 때만 한시적으로 업무에 투입됐다. 속칭 ‘보도방’을 통해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었다. IT 업계에서 ‘보도방’이라 불리는 하청업체들이 대기업으로부터 시스템 통합 등 IT 관련 사업(프로젝트)을 하청받아 또 다른 소기업에 재하청을 주거나 프리랜서들에게 업무를 맡긴 뒤 수수료를 받는다. 원향씨도 보도방을 통해 프로젝트가 있을 때면 한시적으로 업무에 투입됐다. 그러나 아버지는 딸의 죽음 이후에야 그런 말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딸이 ‘보도방’을 통해 일했다는 것을 알았나요.
“몰랐어요. 2015년 10월까지 I업체를 통해 P라는 회사와 용역계약을 체결해서 일을 했더라구요. 이후 I업체는 자기들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E라는 용역업체를 소개해줬어요. E회사는 대형 증권업체인 M증권사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로 했었죠.”

아버지는 딸의 계약서를 보여줬다. ‘용역(상주) 프로젝트 계약서’였다. 보도방 업체들은 프리랜서들과 근로계약서가 아니라 용역계약서를 작성한다. 용역계약서를 쓰면 퇴직금이나 연차수당은 물론 연장·주휴·야간휴일 수당 등을 받기 힘들다. 근로자로 인정받지 못하니 소송을 해도 시급으로 계산된 보수를 받을 수 없다. 원향씨 사망 후 E사는 특별한 책임을 지지 않았다.

-산재처리를 받지 못했다고 들었습니다.
“딸은 인력 시장에서 차출해 가는 일용직 노동자와 다름이 없었어요.”

아버지는 또 다른 서류 하나와 한 장의 명함을 보여줬다. 서류는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받은 산재처리 ‘부지급’ 통보서였고, 명함은 원향씨가 사망 직전까지 갖고 다니던 것이었다. 근로복지공단은 원향씨가 속한 사업장이 ‘상시 근로자수 1명 미만’이기 때문에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 해당하는 ‘근로자’가 아니라고 했다. 공단이 말한 사업장은 보도방인 E사가 소개해준 B사였다. 그런데 명함 속 원향씨의 회사는 E사였다. 직함은 디자인팀 팀장이었다.

“노무사는 B사가 상시 근로자 1명인 사업장이어서 근로성을 인정받지 못했다고 했어요. 원향이는 B사로부터 임금을 받고, E사 명함을 들고 다니면서 M증권사에서 일한 거죠. B사 소속이어서 산재처리가 안 된다는 거죠. 완전히 사기에요.”

보도방의 또 다른 문제는 수수료다. 시장에선 최악의 경우 먹이사슬이 5, 6차는 물론이고 7, 8차까지 내려가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이 과정에서 프리랜서는 당초 원청에서 주기로 했던 금액의 절반도 받지 못하는 경우가 생겼다. 그나마 원향씨는 6개월간 프로젝트에 투입돼 매월 3% 세금을 제외한 467만원 가량을 받았다.




◇‘계약 연장’ 걸린 술자리…의문의 ‘실족사’

사고 당일 저녁 원향씨에게 문자를 보낸 건 명함 속 E사 이사인 A씨였다. A씨는 저녁을 먹으며 이야기를 하자고 제안했고, 원향씨는 M증권사 인근 식당을 수소문해 예약했다. 원향씨는 저녁을 먹은 뒤엔 사무실로 돌아오려고 가방은 회사에 둔 채 휴대전화만 챙겨 저녁 자리에 나갔다고 한다. A씨는 술에 취해 제대로 몸을 가누지 못하는 원향씨를 택시에 태워 호텔로 데려갔다. 사고는 그 호텔에서 일어났다.

-A씨와 딸이 직장에서 어떤 관계였나요?
“(딸의 회사 일인데) 알 수 없죠. 다만 휴대폰을 조회해 보니 (E사와) 계약을 체결한 2015년 10월 26일에 연락한 것 밖에 없었어요. 그것까지 포함해서 A씨와 딸은 전화통화 4번 밖에 한 적이 없었어요. 카카오톡도 업무 이외에는 아무런 사적인 대화를 하지 않았고요.”

아버지는 딸과 A씨의 관계가 그다지 편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럼에도 원향씨가 불편한 저녁자리에 나갈 수밖에 없었던 건 원향씨와 A씨 사이에 존재하는 권력관계 때문이었으리라 생각했다. 당시 M증권사는 원향씨와의 계약 연장을 요청한 상황이었고, 원향씨의 계약을 결정하는 게 A씨였다. 물론 진실을 정확히 알기 어렵다.

-A씨는 경찰 조사에서 원향씨와의 관계를 어떻게 설명했나요.
“처음에는 ‘여자친구다. 합의 하에 갔다’고 했어요. 그런데 형사계로 넘어가니 ‘연장근로를 목적으로 만났다’고 말을 바꿨다고 합니다. 4개월 일하며 밥, 회식 등 많이 데려가지 못해 미안해서 만났다는 말도 했다고 하고요.”

-(A씨는) 딸이 프리랜서라는 점을 악용했다고 보는지요?
“A씨에게 당한 또 다른 피해자들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수소문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어요. A씨에게 찍히면 안 되는 상황이어서 다른 피해자를 연결해주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

장씨가 확인한 CCTV를 보면 원향씨는 호텔에 들어갈 당시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만취 상태였다. A씨가 부축해야 이동이 가능할 정도였다. 그러나 A씨는 호텔 객실에 들어간 뒤 3분 만에 밖으로 나왔다.

-A씨는 왜 나온 건가요?
“경찰에는 ‘재우고 가려고 했다’고 말했다는데, 외투는 객실에 두고 나온 상태였어요. 또 ‘신용카드를 잃어버려 종업원을 만나러 갔다’고 했답니다. 그런데 CCTV에서 A씨는 목에 카드 지갑을 걸고 있었어요.”

-딸이 방에서 나온 건 언제인가요. 그리고 왜 비상계단으로 갔을까요.
“A씨가 나오고 잠시 뒤 딸이 나왔어요. 비틀거리며 맨발로 나왔어요. 딸은 엘리베이터 바로 옆에 있는 비상계단으로 향했어요. A씨와 마주칠 것을 피하기 위해 비상계단으로 간 것 같아요.”

고 장원향씨의 아버지 장상은씨가 지난달 28일 서울 양천구 자택에서 딸의 죽음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는 없다

아버지는 딸의 죽음이 억울했다. 그날의 행적들이 이해되지 않는 것들이 많았다. 경찰과 검찰의 강력한 수사를 촉구했다.

-경찰과 검찰은 어떻게 판단했나요?
“경찰에선 기소의견으로 사건을 검찰 송치했지만 검찰에서는 증거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분을 내렸어요. 재판도 받지 못했죠. 최소한 호텔에 데려간 것만으로도 의심의 정황이 충분하지 않나요? 우리 집이 여의도에서 멀지 않고 딸 휴대폰도 있었는데 왜 호텔에 데려갔을까요?”

-많이 답답하셨을 것 같아요.
“재판조차 받지 못한 게 제일 어이가 없죠. 더구나 초동 수사도 미흡했어요. 범죄 정황을 찾으려면 현장을 보존해야 하는데 호텔 객실은 이미 깨끗하게 치워진 상태였어요.”

딸은 사망했지만 A씨나 E사는 책임을 지지 않았다. 오히려 E사는 딸의 사망으로 업계에 소문이 나 피해를 입고 있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장씨는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는 없는 게 IT 업계인 것 같다”고 말했다.

-앞으로 계획을 말씀해 주세요.
“딸만 보냈어요. 부모로서 아무 것도 해준 게 없는데. 바라는 건 수사 당국이 재수사를 해 주셨으면 하는 겁니다. 검찰에서 한번 틀어지니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장자연 사건처럼 수사가 마무리된 사건도 청와대 국민청원 등을 통해 재조명 받는 경우도 있지 않나요. 미혼 여성을 재워준다고 호텔에 데려가는 게 말이 됩니까?”

-IT 노동자들을 위해 바꿔야 할 건 무엇이라 생각하나요.
“나도 오랜 세월 회사를 다녔어요. 지금은 작은 소기업을 운영하고 있고. 그런데 하청업체에서 일하면 억울한 게 많아요. 무엇보다 하청구조 시스템에 문제가 있어요. 상·하 관계야 당연히 있겠지만 갑을 관계를 떠나서 공존하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어요.”

오후 6시30분에 시작한 인터뷰는 3시간 뒤인 오후 9시30분에야 끝이 났다. 장씨는 “눈물이 많은 사람인데 이제 다 말라 버렸다”며 “이제는 (딸을) 떠나보내야 한다”고 말했다. 스스로에게 하는 다짐이다.


<글 싣는 순서>

1회/폐 잘라낸 IT개발업자 “52시간 근무해도 IT기업 안 망해요”
2회/하청에 재하청 ‘IT 정글’서 의문사한 딸…“피해자만 있고 가해자는 없다”
3회/“과로사와 과로 자살은 뭐가 다른가요”
4회/몰랐고 모른 척 했다
5회/미국의 실리콘밸리엔 야근이 없다
6회/기준이 필요하다, 표준계약서·야근 수당’

서윤경 기자 y27k@kmib.co.kr, 박태환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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