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로자살’도 산재입니다… “내 동생은 결코 약하지 않았다”

[갑을병정 그 아래, 한국 IT노동자의 한숨]

IT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스스로를 “갑도 을도 아닌 병과 정 아래”라고 말한다. 최첨단 4차 산업혁명의 주역이라는 수식어는 화려한 외관일 뿐이다. 혹독한 야근과 비정상적인 대우에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사람도 있다. 국민일보는 ‘갑을병정 그 아래, 한국 IT노동자의 한숨’ 시리즈를 통해 IT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전한다. 피해자와 그 가족들도 용기를 냈다.



“IT업계 종사자들 사이에서는 과로자살이라는 단어가 통용됩니다. IT업계 실태조사를 해보니 응답하신 분들 중 상당수가 실제 자살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매일 자살을 떠올린다는 분도 계셨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이철희 의원은 지난달 국회에서 열린 ‘양진호 회장 폭행 사태로 본 IT노동자 직장 갑질·폭행 피해 사례 보고’ 토론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극단적으로 긴 노동시간에 시달리다 죽음을 선택하는 IT노동자들이 많다는 뜻이다.
하지만 기록이 전하는 현실은 전혀 달랐다. 국민일보가 근로복지공단을 통해 받은 IT업계 노동자들의 과로자살 산업재해 현황 자료를 보면 지난 2014년부터 올 9월까지 과로자살 산재 신청은 고작 8건에 불과했다. 그나마 승인된 것은 3건에 그쳤다.

웹디자이너였던 동생을 허망하게 떠나보낸 장향미(39)씨는 동생의 죽음이 ‘과도한 업무’로 인해 일어난 사고라는 걸 인정받기 위해 올 한 해 지난한 싸움을 벌이고 있다.
고 장민순씨의 언니 장향미씨가 지난달 20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 사옥에서 기자를 만나 동생의 죽음을 설명하고 있다.

“2017년 12월이었어요. 평소 힘든 내색을 안 하던 동생이 제 앞에서 펑펑 울었어요.”
지난달 20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 사옥에서 만난 장씨는 강했던 동생이 그동안 회사로부터 받은 부당한 요구를 토로하며 눈물을 보였다고 말했다.

인터넷 교육업체 ‘에스티유니타스’에서 웹디자이너로 근무했던 장씨의 동생 민순(36)씨는 지난 1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동생이 세상을 떠난 뒤에야 장씨는 동생이 견뎌야했던 ‘과도한 업무’에 대해 알게 됐다. 회사는 장씨 동생과 ‘포괄임금계약’을 맺은 뒤 살인적인 야근을 요구했다. 게다가 동생을 괴롭힌 건 과로만이 아니었다.

동생은 매일 자아비판을 했다. 그것도 직원들이 모두 볼 수 있는 게시판에서였다.
“A프로젝트를 진행하였습니다. 진행 후 00님께 피드백을 들으며 아직도 부족한 점이 많아 부끄러웠습니다… 기획서를 깊게 파지 않은 제 자신이 참 부끄러웠습니다….”
말만 업무일지였을 뿐 스스로의 잘못을 만들어서라도 고백해야 하는 ‘공개 자아비판’이었다. 견디기 힘든 정서적 폭력이었다. 일상의 괴롭힘도 부지기수였다. 직장 상사는 채식주의자인 동생에게 육식을 강요했다. 주말엔 업무와 관련 없는 책을 읽고 독후감을 써오라고 요구했기도 했다.

◇자살률 1위+노동시간 2위=과로자살
장씨는 ‘과로자살’로 인한 동생의 산재 신청을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쉽지 않은 싸움이다. 한국은 10년 넘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를 기록하며 ‘자살 공화국’으로 불리지만 산재로 인정받는 경우는 흔치 않다.

근로복지공단에서 제공한 ‘자살 산재 현황’에 따르면 2015년부터 2017년까지 ‘업무상 사유 등으로 인한 자살’로 접수된 것은 194건이었다. 이 중 절반에 가까운 86건(44.3%)이 승인을 받았다. 그러나 IT업계로 들어가면 얘기는 달라졌다. 같은 기간 고작 4건이 접수돼 단 1건만 승인을 받았다. 기간을 2014년부터 올해 9월까지 늘려도 승인건수는 3건에 불과했다.

*근로복지공단 최초요양 1회차 결재일 기준 <자료 : 근로복지공단>

승인건수를 따지는 것 자체가 의미 없다는 지적도 있다. 3년간 우리나라에서는 3만9068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데 IT를 포함한 전 산업에서 자살로 산재를 신청한 건수는 194건에 불과하다. 이상한 건 2015년 한 해에만 경찰 초동 조사에서 ‘업무상 문제’를 자살원인으로 기록한 사례가 500건이 넘는다는 사실이다. 경찰에서는 ‘회사 일’을 원인으로 지목했지만 유족 대다수는 산재 신청을 포기했다는 것이다.

이유는 엄격한 기준 탓일 가능성이 높다. 공단 역시 자살에 대한 분류가 없어 직업병명(대) 중 ‘정신질환, 자해행위’ 중 유족급여 청구 사건을 기준으로 과로자살 데이터를 추출했다.
장씨도 산재 승인을 받는 게 쉽지 않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과로자살로 인한 산재 신청을 준비 중이라고 들었습니다.
“우리나라 자살률은 OECD 국가 중 1위, 노동시간은 2위예요. 이 두 가지가 합쳐진 게 과로자살입니다. (동생의) 출퇴근 카드와 계약서를 보니 주 69시간을 근무했어요. 그 상태로 1년 8개월을 일했습니다. 연장 근로만 1년 넘게 했죠.”

-문제는 과로자살을 인정받기 어렵다는 겁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과로사나 과로자살에 대한 법적 정의가 명확하지 않다 보니 산재냐 아니냐를 판단하는 것도 상황에 따라 달라져요. 업무와의 연관성을 입증해야 인과관계가 성립이 돼 산재 인정을 받는데 과로자살은 일단 입증하는 자료를 구하는 것부터 어려워요.”

실제 우리나라 산업재해보상보호법(상배보상법)상 과로자살이 산재로 인정받기는 어렵다. ‘업무상 사유로 발생한 정신질환으로 치료를 받았거나 받고 있는 사람이 정신적 이상 상태에서 자해행위를 한 경우’인데 이를 증명하려면 사망 원인으로 지목된 질병이 업무와 연관됐다는 것부터 입증해야 한다. 여기에 업무상 사유로 발생한 질병의 증세가 악화돼 ‘정신적 이상상태’에서 자살을 해야 산재로 인정받는다.

유족들은 ‘업무 연관성’과 ‘정신적 이상상태’를 입증하기 위해 직접 전문의 진료기록과 회사 동료들의 진술, 출퇴근 기록, 유서 등을 확보해야 한다. 쉽지 않은 일이다.

동생 장민순씨는 과도한 업무 지시(사진 오른쪽)와 수시로 바뀌는 기획으로 지인과 회사 동료에게 여러 차례 어려움을 호소했다. 전문가들은 장시간 노동에 수반된 직무 자율성의 결여는 직무 스트레스를 급증시키는 요인이 된다고 설명한다.

-산재 인정이 어렵기 때문에 더욱 과로자살을 산재로 인정받으면 비슷한 상황의 유족에게도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저 말고도 저와 같은 상황에서 가족을 잃은 분들이 굉장히 많을 겁니다. 그분들이 앞에 나서지 못하는 이유가 있어요. 우리 사회에선 아직도 자살을 개인의 책임으로 보는 시선이 많아요. 친척들에게도 알리지 못할 정도로 사회적 낙인이 찍히죠. 사회 분위기가 달라져야 합니다.”

-그래서 산재 신청을 하신 건가요.
“경제적 이유 때문이 아니에요. 고인의 명예회복을 위해서 꼭 산재 승인을 받고 싶었습니다. 제 동생은 약한 사람이 아니었어요. 누구보다 강한 사람이었고 강했기 때문에 극한 상황에서도 견뎌 보려고 엄청 노력을 했던 겁니다. 과로자살은 회사가 개인에게 가한 폭력인데 주위에선 여전히 피해자에게 왜 도망가지 않았냐고 비난합니다. 하지만 진짜 비난 받아야 할 사람은 가해자 아닌가요. 책임은 가해자인 회사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부분이 달라져야 합니다.”

◇직장 내 괴롭힘… 보이지 않는 폭력
장씨는 IT업계에서 벌어지는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해서도 말했다. 직장 내 괴롭힘이 명백한 폭력이라는 걸 알리고 싶다고 했다. 동생은 과로에 내몰리는 상황에서 직장 상사의 괴롭힘까지 더해져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피폐해졌다.

-동생이 목숨을 끊기 전 무슨 일이 있었나요.
“지난해 12월 2일 동생은 제 앞에서 펑펑 울었어요. 세상을 뜨기 한 달 전이죠. 평소 힘든 내색을 잘 하지 않던 아이인데 그렇게 운 건 처음이었죠. 바로 그날 제가 고용노동부 서울강남지청에 동생 회사를 신고했어요. 일주일 뒤 ‘내년에 다른 업체 근로감독을 실시할 때 같이 하겠다’는 답변을 받았어요. 가만히 기다리고만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시민단체의 도움을 받아 회사의 위법 행위 자료를 수집했죠. 그러던 와중에 지난 1월 갑작스럽게 동생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저도 부모님도 충격을 받았어요.”

장례식장에 회사 동료들이 많이 왔다. 직장 동료와 퇴직자 30여 명을 만나면서 그동안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게 됐다. 그때부터 회사를 상대로 싸움을 시작했다. 동료들을 통해 위법 행위를 입증할 자료를 모았고 회사 앞에서 1인 시위도 했다. 직장 동료에게서 들은 증언을 시민단체에 알렸다.

동생 장민순씨를 괴롭힌 건 과도한 업무 뿐만이 아니었다. 직장 상사에게 채식주의자인 장씨는 육식을 강요(사진 오른쪽)당했고 주말이면 책을 읽고 독후감을 써 오라는 지시를 받는 등 ‘직장 내 괴롭힘’을 당했다.

결실도 맺었다. 장씨는 지난 7월 12일 에스티유니타스 측의 공식 사과를 받아냈다. 동생이 세상을 떠난 지 191일 만이었다. 윤성혁 대표는 ‘잘못된 기업문화’로 인해 장씨 동생이 사망했음을 인정하며 근로환경 및 업무소통 개선을 약속했다.

회사의 사과는 받았지만 장씨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이번에는 사회구조를 바꾸기 위한 더 큰 싸움이다. 장씨는 “이철희 의원실이 주최한 토론회에 나선 것도 이 때문”이라고 했다.

-토론회에 나선 이유가 무엇인가요.
“시스템을 바꿔야 이런 문제가 재발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피해 유족이 모든 걸 떠안지 않아야 하니까요. 예를 들어 직장 내 괴롭힘 이슈가 많이 부각되고 있는데 현행법에서는 피해자를 보호할 근거가 없어요. 증거가 있는데도 말이죠. 근로기준법 개정(안)에 이 부분이 포함돼 있는데 법안이 통과된다면 동생처럼 억울한 상황에 놓인 많은 사람들이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장씨가 말하는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근로기준법 개정안)’은 민법상 불법행위에 해당하는 물리적 폭행뿐만 아니라 정신적·정서적 폭행 행위도 불법으로 규정했다. 이 법안은 지난 9월 만장일치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를 통과했지만 법제사법위원회의 벽을 넘지 못했다. 법사위 내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직장 내 괴롭힘의 정의가 불명확하다며 법안 통과를 반대했다.

고 장민순씨의 언니 장향미씨가 지난달 20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 사옥에서 기자를 만나 동생의 죽음을 설명하고 있다.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시행되면 업무환경이 더 나아질 것이라 생각하나요.
“현행법상 직장 내 괴롭힘을 처벌할 근거가 없으니까요. 직장 내 괴롭힘이 잘못된 것, 범죄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게 중요합니다. 자기보다 지위가 낮거나 나이가 어리거나 다른 성별이라고 해서 그걸 빌미로 괴롭힌다거나 인격적인 모욕을 가한다거나 하면 범죄가 된다는 인식이 있어야 합니다.”

장씨는 인터뷰가 끝나갈 무렵 “동생이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는 뉴스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저에게 벌어질 거라고는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제2의 장민순’은 어느 조직이건 있을 수 있다는 뜻이다. 장씨는 25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올해 안에 공단에 ‘과로자살’로 인한 산재를 신청할 것이라고 했다.

<글 싣는 순서>
1회/폐 잘라낸 IT개발업자 “52시간 근무해도 IT기업 안 망해요”
2회/하청에 재하청 ‘IT 정글’서 의문사한 딸…“피해자만 있고 가해자는 없다”
3회/“과로사와 과로 자살은 뭐가 다른가요”
4회/몰랐고 모른 척 했다
5회/미국의 실리콘밸리엔 야근이 없다
6회/기준이 필요하다, 표준계약서·야근 수당

서윤경 기자 y27k@kmib.co.kr 박태환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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