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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마드 작가 양혜규도 팬데믹 시대 ‘로컬’로 돌아왔나

고개를 젖혀야 할 만큼 높은 천장에서 내려온 긴 줄이 바닥까지 닿아있다. ‘동아줄’처럼 굵은 줄은 다닥다닥 붙은 방울로 엮여 흔들면 ‘짜르르∼’ 둔탁한 소리가 난다. 마치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설화에서 호랑이에게 쫓기던 남매가 마지막 순간에 살려달라고 외치자 하늘에서 내려온 굵은 동아줄처럼 마음에 와닿는다.
'소리나는 동아줄'과 '중간유형-구렁이' 연작 설치 전경.

세계적인 설치 미술가 양혜규(49) 씨에게는 ‘노마드’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모교인 독일 프랑크푸르트 슈테델슐레 교수이기도 한 그는 뉴욕현대미술관(MoMA) 등 세계 유수 미술관에서 개인전이 열려 한국보다는 외국에서 머무는 시간이 많다.

그런 그가 올해는 세계적인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지난 2월부터 한국에서 지내오고 있다. 그로서는 이례적인 한국살이다. 그래서일까.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하는 ‘MMCA현대차 시리즈 2020: 양혜규전’에는 유난히 한국적 코드, 동양적 요소가 입혀졌다.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이 같은 줄의 형태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밝힌 이 작품 ‘소리 나는 동아줄’로 명명한 이 작품뿐 아니라 오방색, DMZ(비무장지대)의 철조망, 구렁이와 이무기 등 여러 요소에서 그런 특징이 감지된다. 이동의 자유가 제약받는 코로나 팬데믹 시대를 맞아 세계화 대신 로컬이 부상하는 것처럼 양 작가도 로컬로 돌아온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오행비행' 설치 전경.

소리 나는 동아줄은 유례없는 코로나 위기로 생존의 불안에 시달리는 한국인의 정서를 건드린다. 동아줄에는 ‘인조 짚’으로 생명체를 연상시키는 형체를 만들어 군데군데 걸쳐 놓았다. 작가가 지속해서 해온 ‘중간유형’ 연작이다. 여기에 ‘구렁이’ ‘이무기’ 등의 별칭을 붙였다. 역시 집과 마을을 지키는 동양의 구렁이 설화를 연상시킨다.

이렇듯 설화적 요소를 통해 한국의 전통, 나아가 동양의 전통으로 확장하는 작가는 당대 한국 문제에도 눈을 돌린다. ‘월 페이퍼(벽지 그림)’ 형식이 이번에도 빠지지 않았는데, ‘디엠지(DMZ) 비행’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분단을 상징하는 철책선이 가로놓이고 번개와 퍼즐 등의 이미지가 겹쳐져 다층적인 해석을 낳는다.
양혜규 작가.

보다 당대 한국 사회 현실에 대해 발언하는 작품은 ‘오행비행’이다. 이 작품 역시 전통적인 오방색(검정 파랑 빨강 노랑 흰색)에서 영감을 얻은 것으로 전시장 복도에 현수막을 풍선을 매달아 방패연 띄우듯 걸어놓았다. 각각의 색은 물, 나무, 불, 흙, 철의 다섯 가지 요소를 상징하며 이것을 우리 사회 문제에 대입시켰다. 노란색을 주조 색으로 해서 ‘땅’이라고 쓴 현수막에는 초고층 빌딩, 폐기물 쓰레기봉투, 화장실 변기, 싹 튼 보리 등의 이미지를 삽입했다. 그러면서 ‘토지’ ‘경매’ ‘쓰레기’ ‘경작’ 등의 글씨를 함께 써놓았다. 부동산 투기와 환경 파괴 등을 비판하는 것으로 양 작가의 작품이 이렇게 친절한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설명적이다. 대중 친화적이기는 하지만 가장 상투적인 주제인 오행을 다소 상투적인 방법으로 소화함으로써 양혜규 작가다운 맛은 다소 감소시키는 작품이었다.

양 작가는 방울, 인조 짚 등 민속적인 요소를 보편적인 문화로 확장하며 이것을 원, 사각 등 기하학적인 그릇 안에 담아냈다. 방울과 짚을 사용해 뭔지 모를 형체를 연상하게 하는 ‘소리 나는 가물(家物)’ 등이 그런 예이다. 생명체와 기계, 사물과 인간 사이를 사유하는 이 연작도 이번에는 마치 뒤집힌 코끼리 등 구체적인 뭔가를 연상시키는 등 좀 더 대중 친화적으로 변했다. 대체로 이야기성이 강조되면서 양혜규 전시가 가졌던 ‘보편적 민속과 기하학적 외양’이라는 내용과 형식의 팽팽한 긴장감은 다소 줄었다.

작가는 “해외에서 전시할 때 그 나라의 사람과 땅(문화)을 이해하려는 자세로, 공부하는 마음으로 다가간다”며 “한국은 (내가 자란 곳이기에) 한 면만을 따기에는 아는 것이 너무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전시 제목은 ‘공기와 물’을 뜻하는 원소 기호 ‘O2 & H2O’이다. 공기와 물이 철학적인 연상으로 이끈다. 이를 화학적 기호를 치환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상상의 확장 가능성을 겨냥한 듯하다.

이번 전시는 국립현대미술관이 현대차의 전폭적 후원을 받아 매년 중견 작가 1명을 선정해 전시를 열어주는 프로그램이다. 작가는 서울대 조소과 출신으로 현재 모교인 독일 프랑크푸르트 슈테델슐레 교수로 재직 중이다. 뉴욕 MoMA뿐 아니라 영국 테이트 세인트 아이브스, 필리핀 마닐라 현대디자인박물관 등에서 잇달아 전시한다. 내년 2월까지.

손영옥 미술·문화재전문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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