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령 1만호] 주가 1000→3000, 저력의 한국 경제와 함께

국민일보는 1988년 12월 10일 창간했습니다. 세계 인권의 날에 맞춰 지령 1호가 발행됐습니다. ‘사랑·진실·인간’의 창간이념을 품고 달려온 지 30여년 만에, 6월 24일 지령 1만호를 선보이게 됐습니다.

1만번 신문을 만들면서 세 가지를 지켜왔습니다. “우는 자와 함께 울라”는 말씀처럼 낮은 곳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진실이 최후에 승리한다”는 신념으로 모든 진실을 보도하고, 창간 편집국에서 치열하게 토론한 결과대로 “치우침 없이 균형 잡힌 시각”을 유지하려 노력했습니다.

격변하는 미디어 환경 속에서 이제 지령 2만호를 향해 나아갑니다. 국민일보는 ‘콘텐츠의 힘’에서 방향을 찾으려 합니다. 다양한 형식의 미디어에 끊임없이 도전하면서, 어떤 형식의 미디어에도 통할 수 있는 좋은 콘텐츠를 끊임없이 개발할 것입니다.

지령 1만호는 종이로 발행하지만 다시 30여년 뒤 2만호가 어떤 모습으로 독자를 찾아갈지는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을 보는 시선과 균형 잡힌 시각과 진실을 향한 열정은 결코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코스피가 전날보다 63.47포인트(2.14%) 오른 3,031.68로 장을 마감하며 종가 기준 첫 3000을 돌파한 1월 7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 전광판에 코스피 3000 돌파를 기념하는 문구가 표시되고 있다. 최현규 기자

‘지수 1000돌파, 주가 전 종목 폭등세’
1989년 3월 31일 코스피지수가 종가 기준으로 처음 1000을 넘어선 날 국민일보는 경제면에 이렇게 제목을 뽑았다. 코스피지수가 지난 1월 7일 3000을 돌파했을 땐 ‘동학개미의 힘…코스피 사상 첫 3000고지 밟았다’가 헤드라인이었다. 단어는 다르지만 경제의 현재 가치를 증명하는 코스피의 신기록을 바라보는 흥분은 모두 같았다.

그렇다고 환희만 있었을까.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금융위기, 2020년 코로나19 같은 초대형 악재는 한국경제를 강타했다. 여기에 남북문제 등 대내외 변수까지 우리 경제의 변곡점은 곳곳에 있었다. 하지만 한국은 오뚝이처럼 서며 위기를 전화위복으로 만드는 저력이 있었다. 국민일보 지령 1~1만호의 기사들은 한국 현대사와 경제사를 응축했다.

창간호에서 남북경제 공영 주창
1988년 12월 10일자 창간호의 경제면 창간특집 기사는 ‘남북한 경제 공영 시대 열리려나’다. 88올림픽 이후 동서 간 신 데탕트 시대가 열리며 남북 대화가 박차를 가하는 시기에 나온 보도다. 이어 남측의 첨단 기술, 북측의 원자재가 공급될 경우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고, 군비 부담이 줄어 산업 승수효과가 극대화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33년이 지났지만 이 해법은 지금도 유효하다. 그 후 수많은 정권이 명멸했지만 남북 경제 협력은 숙원이면서도 제대로 이행되지 못한 난제 중의 난제였다.

93년 8월 12일 김영삼 대통령은 오후 8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헌법 76조 1항에 따라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대통령 긴급명령을 발포한다”며 금융실명제 도입을 단행했다. 13일자 국민일보는 ‘밝은 경제 첫발…“검은돈 차단, 부조리 원천봉쇄”’ ‘부(富) 균등 실현, 경제민주화 기대’ 등으로 호평했다. 예나 지금이나 부패없는 사회에 대한 국민의 열망은 지대했다.


1998년 1월 3일 대우본사에서 실시한 금모으기 행사 .국민일보DB

외환위기와 금융위기
해방 이후 대한민국을 벼랑 끝으로 몰아넣은 가장 큰 사건은 97년 외환위기였다. 97년 11월 22일 임창열 당시 경제부총리가 기자회견을 하기 나흘 전인 18일자에 국민일보는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신청 사실을 단독 보도했다. 1면 ‘구제금융 신청키로…결국, 이 지경 책임은 누가 지나’ 기사에서 경제팀 총 사퇴를 요구했다.

외환위기가 한국사회에 남긴 생채기는 크고 깊었다. 평생직장으로 여겼던 일자리는 사라졌고 해고·명예퇴직 등 구조조정이란 낯선 단어가 지면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재계 30위내 기업 중 3분의 1가량이 퇴출됐고 수많은 은행들이 문을 닫거나 합병됐다. 노숙자와 실업자가 급증한다는 소식이 수시로 국민일보 지면을 장식했다. 98년 1월 6일자 국민일보 사회면에는 실직 후 주변의 이목을 피해 영화관으로 출근하는 세태를 그린 ‘실직의 한 “영화관으로”’라는 기사가 실렸다.

국가 위기를 극복하려는 국민들의 노력은 눈시울을 뜨겁게 한다. 한국민의 저력을 가장 실감나게 보여준 것은 바로 98년 1월 초에 시작된 금모으기 운동이다. 그해 1월 7일자 “금모아 빚값자”는 제목의 기사는 한국교회가 국채보상운동 차원에서 기독교인을 대상으로 ‘금모으기 운동’을 전개한다는 소식을 전했다. 2001년 8월 24일자 1면에 ‘빚 전액 상환, IMF 졸업’ 기사가 실렸다. 굴욕적인 구제금융 이후 3년 8개월 만이었다.

외환위기를 맞이한지 10여년 후인 2008년 9월 16일 1면 ‘월街 쇼크 세계 금융시장 강타’ 기사는 금융위기의 막이 열렸음을 알려줬다. 외환위기가 한국 등 동아시아의 외환 유동성 부족으로 일어났다면 금융위기는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이 야기한 거대한 회오리바람이었다. 국제적인 신용경색이 발생했고 유럽의 아이슬란드는 국가부도를 선언하기도 했다. 한국은 미국 중국 일본과 통화스와프를 체결하면서 위기에 맞선 방파제를 쌓으며 다른 어느나라보다 빠른 회복의 발판을 마련했다.


뉴시스

코로나19와 비대면·전국민 투자시대 활짝
두 차례 위기를 통해 외부 악재에 대한 대비는 어느정도 했지만 전염병의 공습에는 속수무책이었다. 2020년 한해 코로나19로 인해 한국을 비롯한 전세계가 국경을 닫고 외출을 삼가는 전대미문의 일을 겪었다.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은 외환위기 이후 처음으로 전년도보다 뒷걸음질쳤다. 코로나19로 가장 타격받은 부문은 고용 이다. 비대면 및 사회적 거리두기가 지속되면서 신규 채용은 급감했다. 지난해 취업자 수는 21만8000명 감소했다. 올 1월 14일자 1면 ‘IMF 이후 최악 고용 한파…2030 청년층 직격탄’ 기사는 코로나19의 실상을 보여준 우울한 자화상이었다.

주머니가 홀쭉해지자 국민들은 월급에 의지하지 않고 투자로 눈을 돌렸다. 지난해 코스피지수가 1400선대로 추락했다가 3000선으로 급등한 것은 개미로 불린 개인투자자들의 저돌적인 투자 확대 덕분이었다. 정책 실패로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자 ‘영끌’로 자산 매입에 올인했고 올 들어서는 투기적 요소가 강한 암호화폐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비대면 장기화로 재택근무가 활성화하고 배달서비스가 활황을 맞는 등 사회·경제적 변화가 촉진됐다.

강준구 기자 eye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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