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령 1만호] 1주일 1시간 알바, 내가 실업자가 아니라니…

27세 여성 김민서(가명)씨는 서울 도봉구의 연립 주택에서 친구 2명과 함께 살고 있다. 월세 40만원 중 17만원을 김씨가 부담하고 나머지는 친구들이 나눠서 낸다. 학교 기숙사에 살았는데, 돈을 더 아끼기 위해 나왔다고 한다. 김씨는 1주일에 14시간 정도 보험회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한 달에 60만원가량을 받는다. 아르바이트를 하는 시간 외에는 취업 준비에 ‘올인’ 하고 있다.

김씨는 20대 후반 ‘취준생’(취업준비생)의 전형이다. 대학 졸업을 유예해 놓고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벌면서 취업 준비를 하고 있다. 하지만 김씨는 국가 통계에서 실업자로 분류되지 않고 있다. 1주일에 1시간만 일을 해도 실업 상태가 아닌 것으로 통계청은 분류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20대 여성이 지난 16일 서울 중구 서울시청년일자리센터에 마련된 ‘일자리 카페’에서 취업 공부를 하고 있다. 최현규 기자

통계청이 매달 조사해 발표하는 고용동향 자료에는 김씨 같은 취준생들이 취업자에 포함돼 있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통계청 조사가 청년 취업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또 청년 지원 정책이 주로 ‘미취업 청년’을 지원 대상으로 하다보니 실질적으로 도움을 받아야 할 ‘알바 취준생’들은 청년 정책의 사각지대에 놓이게 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청년취업 통계의 착시 효과
알바 취준생들을 취업자로 분류하는 것은 취업자 수를 부풀리는 착시 효과를 일으킨다. 국민일보가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마이크로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청년 실업자는 코로나19 창궐 이후 되레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15~34세 실업자 수는 2019년 5월 55만7781명에서 2020년 5월 55만3262명으로 감소했다. 2021년 5월엔 51만6868명으로 줄어들었다.

최근 2년간 4월 통계를 따로 뽑아봐도 마찬가지 결론을 얻게 된다. 청년 실업자는 2019년 4월 64만192명에서 2020년 4월 48만9372명으로 감소했다. 청년 실업자가 코로나19 1차 대유행 이후 크게 줄어든 것이다. 2021년 4월 청년 실업자는 53만7522명으로, 2년 전에 비해 11만여명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 통계대로라면 청년 취업 문제는 팬데믹 상황에서도 풀리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청년들은 극심한 취업난을 체감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통계청은 “국제노동기구(ILO)에서는 수입을 목적으로 1주 동안 1시간 이상 일한 사람을 취업자로 정의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통계청은 또 “한 나라의 총생산을 측정하기 위해서는 취업자 수와 근로시간에 기초한 총노동투입량이 필요하다”며 “이를 계산하기 위해서는 수입을 목적으로 1시간 이상 수행된 모든 일이 파악되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통계청 기준에 따르면 김씨는 취업자 중 ‘시간 관련 추가 취업 가능자’(추가 취업 가능자)로 분류된다. 추가 취업 가능자는 취업시간이 1주에 36시간 미만이며, 추가취업을 희망하고 추가취업이 가능한 사람들이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파트타임으로 일하면서 풀타임 직장을 구하려는 취준생이 여기에 해당된다.


15~34세 추가 취업 가능자는 2019년 많게는 16만명, 적게는 12만명대를 유지했다. 코로나19 1차 유행기인 2020년 3월에는 23만3777명으로 급증했다. 전년 동기(2019년 3월) 대비 8만762명(52.8%), 직전 월(2020년 2월) 대비 9만2023명(64.9%) 증가한 것이다. 한 번 20만명대로 올라선 추가 취업 가능자 수는 2020년 12월 24만8900명으로 정점을 찍은 뒤 2021년 2월 22만명대로 떨어졌다. 2021년 5월엔 다시 24만2869명으로 증가했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더 각박해진 청년 취업 현실이 실업자 통계가 아니라 추가 취업 가능자 통계에서 명확하게 드러난 셈이다.

진짜 실업률은 따로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실업자는 지난 4주간 일자리를 찾아 적극적으로 구직활동을 했고 일자리가 주어지면 즉시 취업이 가능한 사람이다.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는 취준생 대부분이 여기에 해당된다. 사정상 즉시 취업이 불가능했거나(잠재취업가능자), 일할 의지는 있지만 구직 활동을 적극적으로 하지 못했던 사람들(잠재구직자)도 사실상 실업자로 봐야 한다는 시각이 많지만, 이들은 공식실업률 통계에 반영되지 않는다.


잠재취업가능자와 잠재구직자를 합친 잠재경제활동인구(15~34세)는 2020년 1월 73만명대였다가 같은 해 3월 86만1844명으로 폭증했다. 코로나19 1차 확산기에 크게 증가한 것이다. 또한 구직단념자와 ‘쉬었음’ 인구는 지난해 코로나19 확산기를 거치면서 급증했다. 구직단념자는 취업을 희망하고 취업이 가능하지만 원하는 임금 수준이나 일자리가 없을 것 같아 구직활동을 하지 않은 사람이다. 쉬었음 인구는 조사 대상 기간에 취업 준비, 가사, 육아 등을 하지 않고 그냥 쉰 인원이다.

이에 대해 유근식 국회 예산정책처 경제분석관은 ‘고용보조지표를 통해 살펴본 코로나19 이후 청년층의 고용상황’ 보고서에서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잠재적으로 취업이 가능하지만 노동시장에서 이탈하는 청년층의 규모가 점차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통계청은 추가 취업 가능자와 잠재경제활동인구까지 포함한 확장실업률을 고용보조지표라는 이름으로 따로 집계해 발표하고 있다. 공식실업률이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15~34세 공식실업률과 확장실업률 간 차이는 최근 2년간 10% 포인트 안팎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유 분석관은 “코로나19 이후로 청년층 공식실업률과 확장실업률 간 격차가 커지고 있는 원인을 세부적으로 파악하고 정책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 “알바취준생 대책 시급”
문제는 청년 취업 정책이 통계청의 실업자 기준을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청년 실업 통계 탓에 청년 정책의 사각지대가 커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변금선 서울연구원 부연구위원은 23일 “일부 청년 정책은 ‘취업시간이 1주에 20~25시간 미만이면 지원받을 수 있다’는 조건을 달기도 하지만 정책 대부분은 미취업 청년에 집중돼 있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서 주관하는 ‘빅데이터 청년인재 양성 및 일자리 연계’ 사업의 경우 미취업자를 대상으로 하며 4대 보험에 가입돼 있을 경우 지원할 수 없게 돼 있다. 금융위원회에서 주관하는 ‘청년 신용회복 지원’ 프로그램도 미취업자를 대상으로 한다. 변 위원은 “형편이 어려워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청년들은 지원 대상에서 배제되고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청년 실업 문제를 풀기 위한 새로운 통계 모델과 이를 토대로 한 지원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높다. 이승윤 중앙대 사회복지학부 교수는 “청년들은 취직과 실직 상태의 간극이 점점 모호해지고 있다. 기존 제도는 취직 상태이면서도 실직 상태라는 정체성을 갖고 있는 청년들을 포괄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변 위원은 “통계청 조사는 과거의 노동시장, 사회구조를 전제로 한다. 노동시장의 불안정성에 얼마나 많은 청년들이 노출돼 있는지 공식 통계로는 파악하기 어려운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경숙 평택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정부의 청년 정책이 포커스를 맞추는 대상이 뭔지 잘 모르겠다”며 “대다수 청년을 끌고 갈 것인지, 당장 끼니를 걱정하는 청년들에게 초점을 맞춘 것인지, 분명한 방향성이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문동성 박세원 구자창 김경택 기자 theMo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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