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생 박현성(가명)씨는 2016년 전역 후 5년간 직장을 구하지 못하고 있다. 한때는 법조인의 꿈을 꿨었다. 서울의 한 사립대 법과대학을 다니면서 수차례 사법시험에 응시했지만 고배를 마셨다. 6년 만에 대학을 졸업한 뒤 군 복무를 마치고 로스쿨에 다시 도전했지만 뜻대로 일이 풀리지 않았다. 지방에서 뒷바라지를 해주던 부모님은 전화기 너머로 “더 이상은 지원이 어렵겠다”면서 말끝을 흐렸다.


박씨가 취업준비를 더 서두르게 된 건 2018년이었다. 서른 살을 코앞에 두고 절박한 마음에 청년 취업지원 정책을 찾아보다가 정부에서 운영 중인 ‘취업성공패키지’라는 프로그램을 알게 됐다. 취업 상담과 일자리 알선, 훈련수당 지급을 해주는 제도였다. 그러나 박씨에게는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는 “대부분 중소기업들을 추천받았고 마음에 드는 일자리도 없었다”고 말했다. 학사 졸업인 박씨에게 석사 이상 자격을 요구하는 일자리를 소개하거나 여성만 지원할 수 있는 곳을 알려주는 실수도 반복됐다.

취업 문턱까지 간 적도 몇 번 손에 꼽힌다. 그러나 면접 때마다 “나이가 많은데 지금까지 뭘 했느냐”는 압박 질문에 번번이 발목을 잡혔다. 박씨는 “나이에서 오는 압박이 제일 크다. 명목상 청년이라고는 하지만 기업에서는 그렇게 안 봐주는 것”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이런 이유로 박씨는 최근 공기업에만 입사원서를 넣고 있다고 했다. 공기업은 지원자의 나이를 보지 않는 ‘블라인드 채용’ 방식을 채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안 그래도 공기업은 취업 경쟁이 치열한데, 코로나19로 채용 규모까지 크게 감소했다는 점이다. 박씨는 “좋은 공기업에 가려고 여유를 부리는 게 아니라 다른 선택지가 없는 상황”이라고 하소연했다.

박씨는 2년 전부터 생활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병행하고 있다. 스터디카페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면서 매달 50만~60만원을 받고 있는데, 직업이 없는 동생의 생계까지 맡아 허리띠를 더 졸라매야 하는 상황이다. 그렇다고 해서 아르바이트를 더 구하자니 취업이 가능한 시기를 완전히 놓쳐버리는 게 아닌가 하는 불안감을 떨칠 수 없다. 박씨는 23일 “지금이라도 부모님 말처럼 공무원 준비를 해야 하는 건지, 아니면 다른 진로를 찾아야 하는 건지 답답하다”고 했다.


김연희(가명·31)씨는 지난 1월 부모님이 사는 충북 청주로 내려갔다. 심리학을 전공한 김씨는 석사 학위를 취득한 뒤 나름의 경력을 쌓으며 취업준비를 하던 중이었다. 혼자 사는 청년이나 중장년층에게 ‘자기 삶을 더 잘 사는 법’을 주제로 강연하는 프리랜서 강사로 일했다. 하지만 취업난에 생활고까지 겹쳐 낙향했다. 김씨는 “잠깐만 부모님 신세를 지려고 내려갔는데…”라고 말했다.

대전의 한 대학을 나온 김씨는 전문성을 키우면서 취업준비를 하기 위해 서울에서 석사 과정을 마쳤다. 2017년 2월 대학원 졸업 후 취업한 곳은 5인 미만의 소규모 기업이었다. 계약서에는 ‘연구개발’이 김씨의 업무였지만 이와 무관한 일을 지시받는 경우가 많았다. 김씨는 “중소기업 경력을 ‘물 경력’이라고들 하는데, 청년들이 이런 기업에 가지 않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고 털어놨다.

3년 만에 이 회사를 나온 김씨는 프리랜서 강사 일을 시작했지만 생계를 이어갈 수 없었다. 지인 소개나 공공기관 등을 통해 가끔 잡히는 일로는 생활이 불가능했다. 지난해 그의 소득은 2000만원 정도였는데, 월세 45만원과 공공요금 등을 빼면 남는 게 없었다. 김씨는 청년지원 정책에서 개선이 제일 시급한 부분은 주거 문제라고 강조했다. 그는 “역세권 청년주택사업 등 지원 정책이 많이 생겼지만 자격 요건은 까다롭고, 보증금·임대료를 보면 부모 도움을 안 받는 청년 혼자의 힘으로는 실질적인 지원을 받기 어렵다”고 말했다.

최연수(가명·26)씨는 학부 졸업을 2년 미룬 끝에 지난 2월 뒤늦은 졸업식을 치렀다. 대학생 신분을 되도록 오래 유지하는 게 취업 준비에 도움이 된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최씨는 서울에서 언론사 인턴기자로 일하면서 ‘스펙’을 쌓았다. 이후에도 아르바이트를 하며 취업준비를 했다. 부모님과 함께 지냈기 때문에 생활비 지출도 별로 없었다. 부모님과 떨어져 살거나 인턴 기회를 잡지 못한 다른 또래들보다는 상대적으로 상황이 나은 편이었다.

그런데도 최씨는 여전히 불안감을 떨칠 수 없다고 말했다. 취업 경쟁이 워낙 치열해진 탓에 웬만한 스펙은 내세울 수도 없는 형편이 됐다. 앞으로는 가능한 한 빨리 취업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고 취업준비에만 ‘올인’하기로 마음 먹었다. 하지만 코로나19 확산 이후로 언론사뿐 아니라 다른 기업들 채용 규모가 줄어들어 취준생 딱지를 언제 뗄지 기약이 없는 상태라고 했다. 최씨는 “알바와 취업준비를 병행하면 공부하는 패턴이 깨진다. 그간 모은 돈으로 버티면서 이력서를 써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잡지사 에디터로 일했던 문성환(가명·31)씨는 지난해 11월 실직 후 재취업을 준비하고 있다. 생계 유지를 위해선 단기 아르바이트를 알아보는 중이다. 지난 4월까지는 매달 160만원씩 나오는 실업급여로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실업급여가 끝난 뒤로는 그간 모은 돈이 예상보다 빨리 줄기 시작했다고 한다. 문씨는 “아르바이트를 길게 하면 구직에 방해가 된다. 일용직을 알아보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청년 지원 제도는 그에게 그림의 떡이었다. 문씨는 자신이 도움 받을 수 있는 지원책을 알아봤는데 ‘실업급여를 받은 날로부터 6개월이 지나야 지원 대상이 된다’는 답을 들었다고 했다. 문씨는 “구직 사이트 공고만 하염없이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생활비가 부족한 상황이 계속되자 예전에 했던 임상시험 아르바이트를 다시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생각까지 든다고 했다. 그는 “임상알바 모집 문자가 계속 오고 있는데 이거라도 해야 되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 여자친구 반대로 못하고는 있지만 돈은 떨어지고 취업은 안 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사실 취업을 위해 노력을 제일 많이 하고 있는 세대 아닌가요?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학점관리, 각종 자격증 준비에 목숨을 걸잖아요.” 대학 졸업을 앞둔 곽혜수(가명·23)씨는 ‘MZ세대는 눈만 높고 노력하지는 않는다는 지적을 어떻게 보느냐’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곽씨는 취업준비를 위해 휴학을 한 상태다. 학원 보조강사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취업에 필요한 자격증 취득을 준비하고 있다. 그는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놓은 건 아니고 뭐라도 준비해야 할 것 같은 불안한 마음이 컸다”고 했다. ‘치열한 취업 경쟁을 어떻게 극복하겠느냐’고 묻자 곽씨는 “청년들이 더 이상 노력할 게 남아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자꾸 학생들에게 극복하라고 하기보다는 청년 정책을 더 정교하게 만들고 근로기준법을 발전시키는 일이 더 중요한 것 아니냐”고 주장했다.


패스트푸드점에서 6개월째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조현우(가명·30)씨는 틈틈이 취업을 위한 영상제작 공부를 병행하고 있다. 조씨는 생계를 위한 아르바이트를 계속하면 할수록 취업준비에 소홀해지는 것 같아 불안감을 느낀다고 했다. 그는 “알바만 하는 생활이 계속되는 건 아닌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최저임금 인상이나 청년 지원 강화 요구를 두고 누군가는 욕심들 부린다고 하겠지만, 청년들이 평생 알바만 하는 사회가 되면 안 되는 것 아니냐”고 했다.

구자창 박세원 문동성 김경택 기자 critic@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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