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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염 걸렸다고 해고 통보” 아픔 숨기는 노년 노동자

[‘휴식’이란 이름의 노년 무임노동]③ 아파도 숨겨야 하는 노년 노동자

서울 5호선 광화문역에서 대중교통 지하철역 청소하는 청소노동자들의 모습. 기사와 사진은 관련 없음. 윤성호 기자

늙고 병든 몸이지만 일을 쉴 순 없었다. 50대부터 시작한 청소 노동을 70대가 훌쩍 넘은 나이까지 하고 있는 임모(75)씨는 일하며 얻은 허리통증과 관절염을 참으며 매일 아침 서울 서대문구의 한 오피스텔로 출근하고 있다. 임씨는 출근하자마자 청소도구함에서 걸레와 빗자루 등을 챙겨 엘리베이터를 타고 꼭대기 층인 17층으로 이동한다. 그리고 층층마다 내려오며 오피스텔 복도와 비상계단을 빗자루로 쓸고 대걸레로 닦는다.

계단을 내려올 때면 무릎이 시큰거려 한동안 움직이지 못할 때도 있다. 하지만 아파할 시간이 없다. 임씨가 휴식 시간을 스스로 포기한 거나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회사 측은 임씨에게 “30분 휴식시간이 포함된 4시간 근로 계약과 휴식 시간이 없는 3시간 근로 중 선택하라”고 했다. 먼저 일하던 동료들은 임씨에게 “휴식이 포함된 4시간 근로 계약을 하더라도 어차피 휴식 시간은 말뿐이어서 1시간을 꼬박 더 일할 수 밖에 없다”며 차라리 “근무 시간을 1시간 단축하고 일한 만큼 돈을 받으라”고 권했다. 고령의 노동자에게 ‘쉬는 시간’은 ‘돈을 받지 않는 근로 시간’인 것을 그때 알았다. 결국 명목뿐인 휴식을 포기하고, 돈을 덜 받는 쪽을 택했다.

3시간이라도 내리 일하는 게 고령의 임씨에겐 쉽지 않다. 한숨 돌리는 순간에도 누가 볼까 신경이 쓰인다고 했다. 무릎이 아플 땐 잠시 주저 앉아 쉬고 싶기도 하지만 그럴 수 없다. 언제든 3시간 단기 근로자인 임씨를 대체할 고령의 노동자는 넘칠 정도로 많다.

그만큼 힘들게 구한 일자리였다. 임씨는 지난해 12월까지 약 2년 동안 청소 노동을 했던 건물의 주인이 바뀌면서 해고됐다. 이후 3개월 동안 구인공고를 따라 서울 시내 곳곳을 다니며 지원서를 냈다. 하지만 번번이 “나이가 많고 몸이 성치 않아 보인다”는 이유로 그를 고용하지 않았다. 임씨는 5일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지난 3월 인력사무소에서 6만원의 소개비를 내고서야 겨우 얻은 ‘마지막 동아줄’”라며 “누군가 ‘노인이 시원찮게 일을 한다’는 평가를 할까 오히려 더 웃으면서 일하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인터뷰 중에도 소독제로 엘리베이터 버튼을 닦아냈다.

임씨가 잠시도 쉴 수 없는 건 몸이 좋지 않아 해고됐던 경험의 영향도 있다. 임씨는 약 5년 전 여름 서대문구의 한 건물에서 청소 노동을 하다 음식을 잘못 먹고 장염을 앓았다. 설사를 계속해 하루이틀 만에 살이 빠질 지경이었지만 아파서 쉰다는 말을 할 수 없어 아무것도 먹지 않고 출근해 걸레질을 했다. 그러다 순간적으로 현기증이 나 몸이 살짝 휘청였다. 마침 건물에 입주한 업체의 직원이 그 모습을 목격하곤 “청소하시는 분이 힘들어 보이신다”고 주변에 말했다고 한다.

임씨를 걱정하는 마음이었지만 직원의 말이 건물 관리인에게까지 전해졌고 건물 청소반장은 임씨에게 해고를 통보했다. 임씨는 “억울한 마음에 노동청에 신고할까 고민했지만, 노인의 편을 들어줄 사람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따지지 못했다”며 “잠깐 휘청였을 뿐인데 3년 동안 있었던 일터에서 허무하게 나와야만 했다. 이후 일을 하며 아픈 티를 내지 않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주변 청소노동자들은 임씨가 일자리를 구한 것이 ‘축복’이라고 평가한다. 임씨의 동료 청소노동자 김모씨는 지난해 12월 허리를 다쳐 일을 그만둔 이후 9개월 넘게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있다. 아픈 허리를 한두 달만 치료하고 일을 다시 시작하자고 마음먹었지만, 그만둘 때와 달리 다시 시작하는 건 김씨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이전 일을 그만둘 때 사유가 ‘건강 문제’였다는 점이 발목을 잡으며 번번이 구직에서 실패했다. 김씨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일을 해야 하는 처지이지만 마땅한 일자리가 없어 자식들에게 손을 벌리고 있다”며 “노인들은 일을 계속하려면 아파도 아프다는 말조차 해서는 안 되는 게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임씨가 아픈 몸을 이끌며 얻는 시급은 1만원 수준이다. 최저임금보단 높지만 근무 시간 자체가 하루 3시간으로 짧아 매일 일해도 한 달에 버는 돈은 60만~70만원 남짓이다. 임씨는 이렇게 얻은 수입의 절반 정도를 자신과 암 수술을 받은 80대 남편의 병원비로 충당한다. 남편과 살고 있는 15평 정도의 임대아파트 관리비 10만원까지 내고 나면 한 달 생활비로 임씨의 벌이는 터무니 없이 부족하다. 임씨는 “나이 많은 사람에게 일자리를 준 것만으로도 고맙다고 느낀다”며 “이 일터에서 아파도 이를 악물고 매일같이 출근하며 버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단시간 근로에 임금도 낮아

생계를 위해 청소나 경비일을 하는 노인들의 수입은 최저임금 수준에도 못 미친다. 기초연금과 국민연금을 모두 받더라도 ‘최저생계비’(건강하고 문화적인 생활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비용)의 절반에도 못 미쳐 생계를 위해선 노년에도 일하는 삶을 이어가야 한다.

노년아르바이트노조(노년알바노조)에 따르면 지난 5월 기초연금을 받는 전국 65세 이상 청소·경비 노동자 41명을 대상으로 노년 임금과 복지실태를 조사한 결과 법으로 반드시 보장받아야 할 올해 최저임금(8720원)과 비교해 청소노동자의 임금은 82%, 경비노동자의 임금은 72% 수준에 머무른 것으로 나타났다. 허영구 노년알바노조 공동위원장은 “다른 소득이 없다면 생계를 위해 일을 하며 돈을 더 벌어야 하는 현실”이라며 “무상급식이나 아동수당처럼 차등없이 기초연금을 보편적으로 지급하는 식의 노인 생계 대책을 정부가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성필 기자 feel@kmib.co.kr

['휴식'이란 이름의 노년 무임노동]
▶①“16시간 학교 지키면 4.5시간이 근무고 다 휴식이래”
▶②“난 염전노예 같은 신세, 노인네가 회사를 어떻게 이겨”
▶④“1시간 쉬라는데 갈 데가 없어” 서글픈 노년의 돌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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