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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량위기 아직, 10~20년내 기후위기로 진짜 충격”

[인터뷰] 남재작 한국정밀농업연구소장
곡물가 폭등은 단기적 수급 문제… 연말 해소될 수도
우크라 사태보다 더 큰 문제는 미국 캐나다의 가뭄

남재작 한국정밀농업연구소장은 “식량위기에 관심이 높아진 건 반갑지만 휘발성 이슈로 소비되면 되레 합리적으로 대응하기 어려워진다”며 “새로운 인프라에 대한 투자, 디지털농업에 대한 투자 등 장기적으로 차분하게 식량 전략의 다변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한결기자

식량대란, 식량위기, 식량전쟁, 식량주권, 식량안보…. 세계적 곡창지대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으로 밀, 옥수수, 콩 등 농산물 가격이 급등하면서 식량이란 키워드가 뉴스의 중심으로 불려나왔다. 한국이 세계 7위의 곡물 수입국이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식량자급률이 최저 수준이라는 점을 들어 식량 문제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남재작(54) 한국정밀농업연구소 소장에게 한국에 식량위기가 닥칠 가능성과 그에 대한 해법을 물었다. 남 소장은 기후위기와 식량, 생태, 농업 스타트업 등을 주제로 책과 칼럼을 쓰며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농업과학자 중 한 명이다. 2007년 유엔 산하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 4차 보고서 승인 회의와 유엔기후변화협약 회의에 한국 정부 대표단의 일원으로 참여한 바 있다.

-한국의 상황을 먼저 살펴보자. 2020년 식량자급률 45.8%, 사료를 포함한 곡물자급률은 20.2%다. 2021년 식량안보지수는 세계 113개국 중 32위였다.

“한국이 OECD 국가 중에 가장 열악한 형편인 건 사실이다. 1980년대만 해도 식량자급률이 70~80%로 수입이 많지 않았지만 지금은 100% 가까이 자급하고 있는 쌀을 제외한 대부분의 농산물 시장이 다 개방됐다. 식성이 바뀌면서 밀이 제2의 주식이 됐는데 자급률은 0.8%에 불과하다. 2020년 식용 밀 수입량은 250만t으로 쌀 소비량 350만t을 따라잡아가고 있다.”

-유엔 세계식량계획의 데이비드 비즐리 사무총장은 “현재 수준의 식량위기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로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식량위기에 대한 경고가 이어지고 있지만 피부에 와닿지는 않는다.

“아직까지 식량위기는 아프리카의 문제인 게 사실이다. 나라마다 식량안보에 대한 시각도 다르다. 유럽은 식량 과잉이지만 아프리카에서 유입되는 기아 난민 문제 때문에 식량안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한국은 보릿고개의 역사 때문에 식량위기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것 같다. 한국은 자국에서 모든 걸 생산해야 한다는 폐쇄형 식량안보 개념을 가지고 있으면서 실제로는 식량의 80%를 수입하는 개방형 수급 체계를 가지고 있는 나라다. 같은 용어를 쓰더라도 개념이 다르면 전략이 달라져야 한다. 우리에게 식량안보가 어떤 의미냐는 것부터 정의를 내릴 필요가 있다.”


-한국에 맞는 식량안보의 개념은 무엇일까.

“대부분의 나라는 식량이 부족하다. 식량을 자급하는 몇 나라가 있고, 식량을 아주 많이 생산하는 몇 나라가 있다. 우물에 비유하면 러시아와 동유럽에 하나, 유럽에 조금 작은 우물 하나, 미국과 호주에 큰 우물이 하나씩 있는 셈이다. 한국에는 아주 작은 우물이 있다. 그럼 우리의 식량 정책은 이 우물이 마르지 않게 하는 것, 즉 더이상 자급률이 떨어지지 않도록 노력하는 게 첫 번째다. 두 번째는 전쟁이라는 돌발상황으로 러시아의 우물을 못 쓰게 된 것처럼 가능한 한 여러 곳의 우물물을 조금씩 잘 가져와야 한다. 공급망의 다변화 전략이다.”

-코로나19에 이어 우크라이나 사태로 각국이 곡물 수출을 제한‧금지하는 식량안보 정책을 강화하고 있다.

“전염병과 전쟁, 기후변화 세 가지 요인이 겹쳐 곡물 가격이 오르고 있다. 하지만 생산량의 위기라기보다 단기적인 수급 문제에 가깝다. 연말이면 가격 문제가 해소될 수도 있다. 밀 수출 1위인 러시아가 수출 통제를 시작했지만 미국에는 한국 농경지의 3배 가까운 600만㏊의 휴경지가 있다. 그중 100만~200만㏊는 당장 증산할 수 있을 테고 호주도 좀 더 심을 것이다. 전체 공급량 자체는 큰 차이가 나지 않을 수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더 길어진다면 한국도 타격을 입지 않겠나.

“밀을 주식으로 하는 중동과 아프리카 국가에겐 심각한 문제지만 우리는 러시아에서 수입하는 비중이 크지 않다. 아직까지는 가격의 문제라고 본다. 크게 호들갑 떨 일이 아니다. 곡물 가격이 꼭대기에 있으니 ‘한국이 자급률이 낮다, 해외 시장이 요동친다, 기후가 불안하다’ 3개 기본 음계를 가지고 교향곡을 만들어내고 있다. 곡물뿐 아니라 사료비와 비료값도 올라서 충격이 있지만 어쨌든 우리는 가격이 올라도 감당할 수 있는 경제력이 있는 나라 아닌가.”

-지나친 불안감을 조성한다는 건가.

“지금이 위기가 아니라는 게 아니다. 그동안 기후위기로 이보다 몇 배는 더 심각한 식량위기가 닥쳐올 거라는 경고에는 관심이 없다가 이 정도 일에 왜 그렇게 화들짝 놀라느냐는 것이다. 2018년 인천 송도 IPCC 제48차 총회에서 자연 생태계 복원의 마지노선으로 삼은 지구 기온 상승 폭 1.5도를 넘는 시점이 짧게는 10년, 길어도 20년 안에 오게 된다. 오히려 지금 위기가 과장돼서 전달될까봐 걱정이다. 앞으로 계속 식량 문제에 대해 듣게 될 텐데 ‘작년에도 그 얘기했잖아’ ‘그 기사 전에도 봤는데’ 이렇게 무뎌질까봐서다.”


-장기적으로 기후위기라는 끝판왕이 기다리고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 우크라이나 사태보다 더 큰 문제는 미국과 캐나다 중서부에 계속되는 가뭄이다. 작년 생산량이 40%까지 줄었고 5~6월에 거두는 겨울밀 수확량도 감소할 것이다. 지금은 호주 작황이 좋아서 미국 생산량을 채워주고 있는데 기후 패턴이 무너져 호주까지 가뭄이 들고 러시아에 비가 너무 많이 오는 트리플 악재가 2~3년 계속되면 비축량이 바닥나는 진짜 위기가 온다.”

-이달 초 경북 울진 산불 진압이 어려웠던 것도 기후위기로 인한 유례없는 겨울 가뭄 때문이었다.

“우리나라도 그렇고 미국 캐나다에도 역대 최장의 산불이 일어났다. 2020년에는 53일간 비가 내려 역대 최장 장마 기록을 깼다. 꿀벌이 사라지기 시작한 것도 벌써 몇 년 된 얘기다. 기후위기로 이런 일이 일어날 거라는 건 다 예고됐던 것 아닌가. 우리 식량 시스템이 의존하고 있는 자연 생태계를 어떻게 관리할 것이냐는 굉장히 중요한 문제다.”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탄소중립 농업도 있지만 식량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우선 국내 생산을 늘리는 건 어떤가.

“현실적으로 어렵다. 한국은 인구에 비해 땅이 작고, 농사지을 수 있는 땅은 정해져 있다. 그나마 한때 240만㏊였던 농경지가 150만~160만㏊로 줄어들었고 계속 줄어드는 추세다. 농경지가 늘지 않으면 품종을 바꾸고 비료를 더 뿌려도 생산량이 조금 늘어나는 정도다.

벼든 밀이든 콩이든 소규모로 재배해서는 농가는 살 수가 없다. 한국 농가의 평균 경작 규모가 1.1㏊인데 호주는 트랙터가 직진만 일주일을 한다고 농담한다. 그런 곳에서 생산되는 곡물과 가격 차이가 날 수밖에 없지 않나. 그런데도 농가가 계속 생산하게 하려면 정부가 그 가격 차이만큼 지원을 해줘야 한다. 효율성에 대한 고민과 더 많은 돈을 투입하는 데 국민들이 동의할 것이냐의 문제가 있다.”

-정부는 밀 자급률을 5%까지 높이는 걸 목표로 삼고 있다.

“자급률을 최대한 높여가야겠지만 거기에 올인하는 게 정답은 아니다. 1980년 여름에 최고기온이 24도도 안 돼서 쌀 수확량이 30% 줄어드는 대흉작이 있었다. 수입을 거의 안 하던 때라 갑자기 쌀을 구하느라 비싸게 살 수밖에 없었다. 계약은 2~3년 단위로 이뤄지니 그다음 해에 수확량이 회복됐을 때 쌀값을 쭉 떨어뜨리는 원인이 됐다.”

-한때 한국 기업이 해외농장에서 생산한 식량을 들여오는 방안도 추진되지 않았나.

“외국에 직접 우리 우물을 파자는 취지로 이명박정부 시절에 식량자주율이라는 개념을 도입했지만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농업은 정부의 지원이 중요한데 외국에 투자할 경우 정부 지원이 없으니 경쟁력을 갖기 어려웠다.”

지난 2일(현지시간) 이집트 카이로에서 한 노동자가 이집트의 주식인 전통 빵 ‘발라디’를 들고 있다. 이집트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곡물가격이 급등해 식량난과 정치적 불안이 고조되고 있다. AP연합뉴스

-러시아 수입 비중이 크지 않다고 했는데 해외 공급망이 편중돼 있지는 않은가.

“수입선 다변화는 물론 중요하다. 이집트는 밀 수입량의 80% 이상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 몰았다가 문제가 커졌다. 알제리는 지난해 프랑스와의 갈등으로 프랑스는 입찰도 못하게 막았다가 밀 사정이 급해지니 들어오게 했다. 한국의 다변화율은 일본에 비해 주요국 집중도가 10%p 정도 높지만 호주 미국 브라질 우크라이나 동유럽까지 잘 분산이 돼 있다.”

-자급률을 높이고 다양한 공급망을 확보하는 것 외에 식량위기에 대비하려면 추가적으로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80%를 수입하는 우리가 제일 신경 써야 할 건 그 80%를 생산하고 있는 나라들이다. 식량 확보는 결국 정보 싸움이다. 한국은 2025년에 농업용 중형위성을 발사해 비로소 눈을 갖게 되는데 세계 1위 곡물 기업 카길은 자체 인공위성으로 세계 주요 농장의 작황을 매일 모니터링한다. 미국 농무부 장관이 ‘카길의 식량과 현물 시장에 대한 정보력은 CIA보다 뛰어나다’고 했을 정도다. 메이저 곡물회사들이 장악한 정보력의 문턱을 넘어 한국에 최적화된 글로벌 식량 공급망을 구축하는 것이 가장 큰 숙제다.”

-모델로 삼을 만한 농업 선진국이 있을까.

“네덜란드가 우리와 경지 면적이 비슷하고 농업 생산액은 우리보다 많지 않은데 농산물 수출액이 1000억달러(122조원)쯤 된다. 농업 기술이 뛰어나 온실의 경우 다른 나라에 비해 생산성이 5~10배 높다. 무엇보다 수출액의 상당 부분이 중계무역과 가공으로 올린 성과다. 식민지 시대부터 무역으로 부를 축적했던 전통과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농업 정보망과 인적 네트워크를 확보한 덕분이다. 우리와 일대일로 비교하기 어렵지만 네덜란드와 같은 시스템을 참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구체적인 아이디어가 있나.

“개발도상국을 지원해 해외농업을 늘리는 방안이 있다. 일본에는 국제협력 업무를 담당하는 국제농림수산업연구센터(JIRCAS)라는 기관이 있다. 대학원생을 동남아에 파견해 현지 교수들과 농업 연구를 함께하게 한다. 식민지 경영을 해본 나라들이 주로 이런 방식을 쓰고 있다. 영국의 커먼웰스 프로그램이 옛 식민지를 돕고 관리하는 대표적인 공적개발원조(ODA) 사업이다. 한국도 ODA에 4조원 가까운 돈을 쓰고 있다. 그중 10% 이상이 개도국 농업개발에 지원되는데 그 예산 중 일부를 떼서 우리 대학원생들이 현지 대학에서 연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면 자연스럽게 해외농업 전문가도 양성되고 인적 네트워크도 확보된다. 태국이 쌀 수출을 늘려가고 있고 인도는 밀 수출국에 합류했다. 미얀마와 베트남도 잠재력이 큰 나라다.”

-ODA의 방향을 바꿔보자는 제안이다.

“우리가 지원해 생산된 농산물을 우리가 일정 부분 구매하면 지원 효과를 더 크게 만드는 선순환이 될 것이다. 한국이 농업 R&D(연구개발)에 투자하는 예산이 1조원이 넘는다. 세계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드는 수준이다. 개도국과 기술협력을 통해 우리의 식량문제뿐 아니라 세계의 식량문제 해결에도 기여할 수 있다. 지금까지 따로따로 생각했던 ODA, 농업 R&D, 식량안보를 합쳐 미래의 식량위기에 대응하는 전략을 만들어가는 게 10년, 20년, 30년 위기를 대비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권혜숙 인터뷰 전문기자 hskw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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