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겁났지만 피해자 또 생길까봐…핸들 꽉 잡았죠” [아살세]

기지 발휘해 보이스피싱범 잡은 택시기사들


세 명의 택시기사가 7일 보이스피싱 현금수거책를 잡은 공로로 표창장을 수여받고, ‘피싱지킴이’로 임명됐습니다.

이들은 각각 택시를 운행하다가 탑승객이 현금수거책인 것을 의심하고 경찰에 신고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택시 기사들의 기지로 경기도 수원·여주·평택에서 보이스피싱 사기범들이 검거됐고, 더 큰 피해를 막을 수 있었습니다. 사기범에게 당한 피해자들은 피해 금액을 되돌려 받았습니다.

한 시간 넘게 카톡 채팅만 하는 손님, 인상착의 얼른 외웠죠

보이스피싱 수거책을 검거하는 데 큰 역할을 한 공로로 표창받은 A씨의 모습. 수원남부경찰서 제공

지난 2월 22일 택시기사 A(57)씨는 인천에서 승객을 태워 수원까지 가던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승객이 전화통화는 하지 않고 1시간이 넘는 이동시간 내내 카카오톡 채팅만 사용했다고 합니다.

A씨는 “1시간 동안 카톡만 하더라고, 카카오톡 알림음이 계속 들려 백미러로 힐끔힐끔 쳐다봤다”고 전했습니다.

승객은 목적지인 주택가에 도착 후 요금을 카드가 아닌 현금으로 결제했습니다. 승객이 현금영수증도 요청하지 않자 A씨는 이때부터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승객은 A씨에게 “다른 곳에 또 들를 수 있느냐”고 물었고, A씨는 이를 승낙해 승객이 볼 일을 끝낼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승객은 주택가에 내려서도 계속 카카오톡으로 누군가와 연락을 하는 듯 보였습니다. A씨는 혹시나 하는 생각에 그를 기다리는 동안 승객의 인상착의를 머릿속으로 외웠다고 합니다.

주택가에서 40분 가량 기다린 후 승객이 다시 택시로 돌아왔을 때 A씨는 좌석에 무언가 던져지는 소리가 나 순간적으로 뒤를 돌아봤습니다. A씨는 “성인 남자 주먹만한 주먹 두께의 현금 뭉치 같은 게 보였다”고 했습니다.

승객은 의심을 피하려는 듯 괜히 A씨에게 “은행을 끼고 돈을 받아주는 업체에서 일한다”라고 설명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돈을 수금하러 간다”, “돈을 받으려면 30∼40분가량 기다려야 한다” 등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A씨는 그가 보이스피싱 수거책임을 계속 의심하게 됐습니다.

보이스피싱범은 다시 차에 올라탄 뒤 A씨에게 “어제도 택시비로 한 27만원 정도 사용했다”라며 “혹시 다음 일 마치고 충청도 천안까지 갈 수 있냐”고 물었다고 합니다.

그때 A씨는 그가 보이스피싱범임을 확신했다고 했습니다. A씨는 “손님, 천안 가시면 요금 조금만 더 좀 챙겨주세요”라고 농담하며 신고할 시간을 벌었습니다.

A씨는 승객을 2차 도착지에 내려준 뒤 곧바로 경찰에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하며 인상착의와 목적지 등을 알렸습니다. A씨는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분명히 뭔가 있다 싶어 신고했다”고 전했습니다. A씨의 기지 덕분에 보이스피싱범은 출동한 경찰에 붙잡혔습니다.

보이스피싱범을 태운 채로 신고하는 게 무섭지 않았냐고 묻자 A씨는 “내가 태권도 관장 출신인데도 겁은 났다”며 “그래도 현금 뭉치를 보니 피해자가 더 생기겠구나 싶어 신고하게 됐다”고 밝혔습니다.

경찰 관계자에 따르면 해당 보이스피싱범은 피해자 6명으로부터 9000만원 상당의 피해금액을 받아냈다고 합니다.

A씨는 “얼마 전 부산에서 40대 아저씨가 보이스피싱을 당해 자살한 사건을 보고 너무 마음이 아팠다”며 “앞으로도 이런 일이 있으면 저는 무조건 잡을 겁니다. 그런 놈들은 제가 죽기 전까지 그런 기회가 오면 잡으려고요”라고 전했습니다.

112로 전화해 형님과 식사 약속 잡는 척…뒷좌석에서 공격할까봐, 식은땀 흘려

경기남부경찰청 유튜브 캡처

택시 기사 B(54)씨는 지난 1월 26일 시흥에서 한 손님을 태우고 가다가 대화를 나누게 됐습니다. B씨는 실내 인테리어 출장을 간다는 승객이 장비도 없이 내리고, 내린 곳에서 몇 분만에 다시 택시에 오르는 등 미심쩍은 행동을 해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2월 21일 보이스피싱 사건을 수사 중인 여주경찰서로부터 한 달여 전인 1월 26일 시흥에서 자신이 태웠던 승객이 보이스피싱 현금 수거책이었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바로 그 다음 날인 22일 오후 1시쯤, B씨는 시흥에서 호출을 받고 우연히 태운 승객이 한달 전 자신이 태운 그 보이스피싱 수거책임을 인상착의를 보고 바로 알아차렸습니다.

이에 B씨는 보이스피싱범이 도망가지 못하게 고속도로로 빨리 운전해서 들어갔습니다. B씨는 고속도로에 진입하자마자 112로 전화를 걸어 “형님 저 안성 장거리 손님이 타서, 다녀와서 식사 하시지요”라고 말했습니다.

범죄 신고임을 알아챈 경찰관은 “계속 식사 약속 잡는 듯 말씀하라”며 B씨의 위치를 묻는 등 답변을 유도했습니다.

신고를 접수한 경찰관은 통화 내용을 토대로 택시 위치를 파악한 뒤 인근에 있는 고속도로순찰대에 연락해 경찰관들을 배치했습니다.

그러나 고속도로 순찰대에서 B씨에게 몇 번 전화를 하자 범인은 눈치를 챈 듯 “약속이 취소됐으니 다시 시흥으로 가자”고 말했습니다. B씨는 이에 “여기서 내리시면 이동할 방법이 없다”며 “남안산까지 10분이면 가니 톨게이트 나가자마자 세워드리겠다”고 답했습니다.

B씨는 이때 등에서 식은 땀이 흘러내렸다고 당시 심경을 전했습니다. B씨는 “속으로 침착하자는 말을 계속 했다”고 전했습니다. B씨는 범인이 뒤에서 해를 가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핸들을 두 손으로 꽉 잡았다고 합니다.

다행히 고속도로 경찰대는 B씨의 택시를 발견한 뒤 수거책을 검거했습니다.

B씨는 “내가 (보이스피싱범을) 잡으면 피해자가 그만큼 줄어드는 만큼 눈 감고 있을 수가 없었다”며 “누구나 관심을 가지면 관련 피해를 예방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여주경찰서 관계자에 따르면 해당 보이스피싱범의 전화를 받고 피해자 1명이 1000만원을 넘겨준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이 피해금액 역시 피해자에게 되돌아갔습니다.

행선지 계속 바꾸고 수상한 손님…주저하지 않고 경찰에 신고
평택에서 보이스피싱범을 신고한 택시기사 C씨가 경찰서로부터 표창을 수여받았다. 평택경찰서 제공

택시 기사의 신고로 보이스피싱 현금 수거책을 검거한 사례는 또 있습니다. 지난 2월 25일 경기도 평택에서도 택시 기사 C(50)씨가 보이스피싱범을 검거하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C씨의 택시에 탄 승객은 갑자기 서울에서 용인으로 행선지를 바꾸고, 주행 중 계속해서 누군가와 연락하는 등 보이스피싱범을 의심케 하는 수상한 모습을 보였다고 합니다. 이에 B씨는 중간 목적지인 평택에서 112에 신고했습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검거된 이 승객은 역시나 보이스피싱범이었습니다.

경찰 관계자에 따르면 해당 현금수거책은 안산에서 이미 한 번 피해자에게서 현금을 수거하고 또 다른 피해자로부터 현금을 수거하러 평택으로 이동하던 것이라고 합니다.

경찰 관계자는 “안산에서의 피해자는 보이스피싱 당한 것을 직감하고 돈을 못 찾을 것이라 생각해 신고도 하지 않은 상태였다”고 밝혔습니다.

그런데 택시기사가 현금수거책을 신고해 붙잡으면서, 해당 피해자는 피해금액 1950만원을 다시 받을 수 있었던 것이죠.

경기남부경찰청은 A씨와 B씨, C씨를 ‘피싱 지킴이’로 선정하고 7일 이들에게 표창장을 수여했습니다.

더 큰 피해로 이어질 수 있었던 순간, 망설이지 않고 신고에 나선 이들의 용기 덕분에 범죄를 막을 수 있었습니다. 이들이 아니었다면 누군가 열심히 모은 돈을 보이스피싱범에게 몽땅 뺏기는 안타까운 일이 발생했을 것입니다. 불의를 지나치지 않고, 기지를 발휘해 주저 없이 신고한 이들이 또다른 시민의 삶을 지켜냈습니다.

[아직 살만한 세상]은 점점 각박해지는 세상에 희망과 믿음을 주는 이들의 이야기입니다. 힘들고 지칠 때 아직 살만한 세상을 만들어 가는 ‘아살세’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어보세요. 따뜻한 세상을 꿈꾸는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황서량 인턴기자
김민영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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