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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오늘] 조선시대 소문난 ‘고양이 집사들’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이다.” -E.H. 카(Edward Hallett Carr)

삽화=이유민 인턴기자

반려동물 1500만 시대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의 ‘2021 한국반려동물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은 1448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됐다. 반려동물을 가족처럼 여기는 ‘펫팸족(반려동물(pet)과 가족(family)의 합성어)’도 늘고 있다.

사람과 반려동물의 역사는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삼국시대에는 곡식을 훔쳐먹는 쥐를 잡기 위해 고양이를 길렀다고 전해진다.

감추어둔 나의 고기를 훔쳐 배를 채우고
천연스레 이불 속에 들어와 잠을 자누나.
쥐들이 날뛰는 게 누구의 책임이냐.
밤낮을 가리지 않고 마구 다니네. - 「책묘(責猫, 고양이를 나무라다)」

고려시대 문인 이규보의 시다. 쥐를 잡기는커녕 말썽을 피우고 주인의 이불을 차지하고 있는 고양이를 얄밉게 묘사했다. 그러나 전반적인 분위기에서 고양이에 대한 애정을 엿볼 수 있다.

조선시대에는 소문난 고양이 집사들이 있다. 19대 왕 숙종과 17대 왕 효종의 딸인 숙명공주다. 엄격한 분위기의 조선 왕실도 반려동물에 대한 애정은 숨길 수 없었나 보다.

숙명공주는 효종과 인선왕후의 셋째 딸로 태어나 1652년 이조참판 심지원의 아들과 혼인했다.
효종이 딸 숙명공주에게 보낸 한글 편지. 국립청주박물관 소장

“너는 시집을 가 (정성을) 바친다더니 어찌 고양이를 품고 있느냐? 행여 감기나 걸렸거든 약이나 해서 먹어라.”

숙명공주의 고양이 사랑은 효종이 시집간 딸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정확한 연도는 알 수 없지만 1652년에서 1659년 사이로 추정된다. 짧은 편지 속 아버지 효종은 왜 고양이만 안고 있느냐며 사랑하는 딸의 철없는 행동을 꾸짖고 있다.

숙명공주의 조카가 조선의 19대 왕 숙종이다. 숙종의 반려묘 ‘금묘’의 이야기는 꽤 유명하다. 숙종의 시와 신하 이하곤이 쓴 글에 숙종과 금묘의 만남이 기록돼 있다.

영조대에 활동한 화가 변상벽(卞相璧)이 그린 <고양이와 참새(猫雀圖)>.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어느 날 숙종은 후원을 거닐다가 굶어 죽기 직전의 어미 고양이를 발견했다. 숙종은 이 고양이에게 금덕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고 잘 보살피라고 명했으며 장례까지 치러 주었다.

금덕이 낳은 새끼가 바로 금묘였다. 기록에 따르면 금손이라고도 불렸다고 한다. 금묘는 숙종 곁에서 일상을 공유했다. 고양이에게 고기반찬을 손수 먹여줄 정도로 숙종은 금묘를 끔찍이 아꼈다. 추운 밤에는 금묘를 용상 옆에서 잠자게 했을 정도였다. 이러한 숙종과 금묘의 모습은 김시민의 <동포집>에 나타나 있다.

“금묘만 가까이서 선왕을 모시고 밥 먹었네. 차가운 밤에는 몸을 말고 용상 곁에서 잠들었네. 비빈들도 감히 고양이를 길들이지 못하는데… 임금의 손으로 어루만져 주시며 고양이만 사랑하셨네.” - 「금묘가(金猫歌)」

그런데 어느 날 금묘는 숙종에게 올라갈 고기를 훔쳐 먹었다는 죄로 궁궐에서 쫓겨났다. 이후 숙종이 승하하자 금묘는 3일 동안 밥을 먹지 않고 슬프게 울었다. 소식을 들은 대비 인원왕후가 궁궐로 데리고 온 후에도 주인을 잃은 고양이는 수십 일 동안 빈전(왕이나 왕비의 관을 모시던 전각) 주변을 맴돌았다고 한다. 결국 금묘는 빈전 계단에서 피골이 상접한 모습으로 죽은 채 발견됐다.

끝내 주인을 따라간 고양이에게 감동한 인원왕후의 지시에 따라 금묘는 숙종의 능인 명릉(明陵) 근처에 묻혔다고 전해진다.

배규빈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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