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인 난민 320명 귀국 도왔는데, 500명 더 발동동…그래도 돕는 이유

광주고려인마을·교회, 우크라이나 피란민 귀국·주거 지원
“우리도 거저 받았으니 거저 줄 것”…십시일반 후원의 힘 독려

우크라이나 피란민을 포함한 고려인들이 지난 15일 광주광역시 광산구 월곡동에 있는 광주고려인마을교회에서 이천영(오른쪽) 목사의 주일예배 설교를 듣고 있다.

지난 2월 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광주고려인마을이 주목받고 있다. 우크라이나에서 이역만리 떨어진 이 곳 일대가 피란민들의 또 다른 피난처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고려인 출신 우크라 난민들이 루마니아 등 접경 국가로 피신한 뒤 한국으로 들어오고 있는 것이다.

이 일이 가능할 수 있었던 건 돕는 손길이 있기 때문이다. 광주고려인마을(대표 신조야·67)과 광주고려인마을교회(이천영 목사·64)가 그들이다. 이들 단체는 지난 3월부터 한국행을 원하는 피란민들에게 귀국편 비행기삯 등을 지원하고 있다. 광주고려인마을·교회에 따르면 20일 현재 총 326명이 항공료를 지원받았다.

지난 15일 오후 광주고려인마을 중심부에 위치한 광주광역시 광산구 월곡2동 사암로입구사거리. 여러 나라 말로 촘촘하게 적힌 안내 현수막이 펄럭이고 있었다. ‘코로나19 백신 추가 접종 꼭 받아 주세요!’라는 문구가 한국어 영어 중국어 태국어 러시아어 베트남어 등 6개 국어로 쓰여 있었다.

광주고려인마을 입구에 걸린 플랜카드. ‘코로나19 백신 추가 접종 꼭 받아 주세요!’라는 문구가 한국어 영어 중국어 태국어 러시아어 베트남어 등 6개 국어로 쓰여 있다.

현수막 옆으로 난 골목 어귀엔 승합차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차량마다 한국어와 러시아어로 ‘남녀 직원 급구함’이 쓰인 큼지막한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전봇대와 아스팔트 길바닥에도 ‘3교대 공장’ ‘건물 해체’ 등 일할 사람을 구하는 전단지들이 곳곳에 눈에 띄었다. 이 동네에 고려인들이 많이 몰려들고 있는 것 같았다.

광주고려인마을교회에서 만난 이 목사는 “예전부터 고려인들이 많이 모여살다 보니 서로 연대하는 분위기도 있고, 여러 지원을 받기가 수월하기 때문일 것”이라며 “우크라이나 피난민들이 귀국하면서 무연고 난민뿐 아니라 한국의 다른 지역에 식구가 있는 난민들도 이곳으로 오는 경우가 빈번하다”고 설명했다.

이 목사는 20년 전 광주 하남산업단지에서 외국인근로자문화센터를 열어 외국인노동자를 돕고 있었다. 당시 신조야 대표는 전남 함평의 한 콘크리트 회사에서 일하는 노동자였다. 당시 임금 체불로 신 대표가 이 목사에게 도움을 구하러 온 것이 광주고려인마을의 탄생 배경이다.

광주고려인마을 고려인지원센터의 층별 안내도.

이들이 함께 만든 ‘고려인지원센터’는 월곡동 고려인들 삶의 한가운데 있다. 마을엔 한국어학당을 비롯해 지역아동센터, 진료소, 노인복지센터 등 편의시설들을 두루 갖추고 있다. 영어 교사였던 이 목사는 목사 안수를 받아 이곳에 광주고려인마을교회를 세웠다. 주일마다 고려인들로 빼곡히 들어찬 예배당에서 복음을 전하고 있다.

이날 교회 주일예배엔 고려인 130여명이 참석했다. 이 자리엔 에드와르드(51)씨가 있었다. 그는 두 자녀와 함께 우크라이나를 빠져나왔다. 그러나 우크라인 아내는 한국 땅을 밟지 못했다. 부부가 혼인 신고를 하지 않은 까닭에 아내 비자가 발급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검게 그을린 그의 얼굴은 오랜 나그네 생활을 한 사람처럼 고되어 보였다.

이 목사는 설교에서 “깨어 기도하며, 사랑으로 덮어주자”고 당부했다. “고려인 출신 우크라이나 난민 46명이 공항에 들어온 지난주 목요일, 출입국 당국에서는 우리 고려인들을 안 내보내겠다고 했습니다. 그래도 계속 전화하니 우리를 내보내 줬습니다. 이게 기도의 원리입니다. 문제가 생기면 사람도 이렇게 돕는데, 하나님은 안 도와주시겠습니까?”

광주고려인마을 대표인 신조야(오른쪽) 권사가 주일예배를 마친 뒤 고려인 출신의 새신자들을 소개하고 있다.

광주고려인마을·교회에 따르면 현재 루마니아 등에서 귀국을 기다리는 고려인들은 500여명이다. 지금까지 귀국을 지원한 인원보다 훨씬 더 많은 고려인들이 고국행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이 목사의 어깨가 더 무거워지고 있다. 그가 여행사에서 보낸 문자 메시지를 내밀었다. 90만원 정도였던 편도 항공료가 일주일 사이 100만원을 훌쩍 넘었다는 내용이었다.

항공료 지원뿐 아니라 고려인들의 주거비용(원룸) 일부와 식자재 등 생필품도 십시일반 후원을 받아 지원하고 있는 광주고려인마을·교회 입장에서는 부담이 커지는 상황이다. 후원의 손길이 더 간절해지기 때문이다.

현재 고려인마을에 있는 우크라 난민은 150여명이다. 이들은 월세를 지원받는 두 달 동안 자립할 길을 찾아야 한다. 이들에게 주어지는 일은 산업단지 생산직·건물 철거원·건설현장 일용직 등 대체로 중대 재해 위험성이 큰 육체노동이 대부분이다. 신 대표는 “돈을 많이 버는 야간 노동을 선호하는 고려인들이 많다”면서 “밤에 하는 일은 건강을 해친다는 점에서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광주고려인마을 주변에 주차 돼 있는 차량에 구인 광고 스티커가 부착돼 있다. 아래는 아스팔트 바닥에 붙어 있는 구인 전단지. 한국어와 러시아어 등으로 쓰여 있다.

고려인들이 어렵게 비자를 받아 한국에 들어와도 ‘산 넘어 산’이다. 건강보험 가입자격 때문이다. 외국인이 건강보험에 가입하려면 6개월 이상 한국에 머물거나, 당장 일자리를 구해 직장 가입자가 되어야 한다. 마을 내 고려인광주진료소가 있지만, 대처 불가능한 질병이 너무 많다. 몸이 불편한 중증 환자들은 앓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광주고려인마을·교회의 난민 사역은 이어질 전망이다. 이 목사나 신 대표, 앞서 정착한 고려인들 모두 ‘우리도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겠다’는 한마음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탈북민은 고려인마을에서 6년째 사역을 돕고 있다. 그는 “탈북 과정에서 러시아에 있을 때 고려인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며 “서로 도우며 살자는 생각으로 은혜를 갚고 있다”고 말했다. 11년 전 우즈베키스탄에서 온 고려인 텐올가(36)씨도 이 곳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그는 “아이들을 돌보고 아픈 분들을 병원에 데리고 가는 일은 대단한 게 아니라 마땅한 것”이라고 말했다.

광주고려인마을교회 이천영(오른쪽) 목사와 광주고려인마을 신조야 대표. 20년 가까이 재한 고려인들을 지원해오고 있다.

이날 교회 주일예배에서는 설교가 끝난 뒤 합심 기도가 이어졌다. 가장 큰 기도 제목은 “고려인마을에 도움을 요청하는 난민들이 한국에 무사히 들어올 수 있도록 해달라”는 간구였다. 예배당을 가득 채운 성도들은 자신들이 받았던 은혜가 동등하게 내려지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우리가 나그네를 살펴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었다.

광주=글.사진 박이삭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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