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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윤상의 세상만사] 술을 이기지 못하면 벌어지는 일


‘퉤’ 택시에서 내리면서 무심결에 침을 뱉었다. 평소에는 입에 고인 침을 삼켰겠지만, 술이 침을 더러운 이물질로 느끼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하필 택시 근처에서 한무리의 젊은이들이 술에 취한 채로 서성이고 있었고, 침이 그 중, 한 명의 신발에 튀었다. 혈기왕성한 그 젊은이가, 그것도 술에 잔뜩 취해있는데, 그냥 지나갈 리 만무하다. 바로 욕이 튀어나왔다.

‘미안하다’고 한마디만 했다면 그냥 해프닝으로 지나갈 일이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술에 잔뜩 취해있었기 때문이다. 더 센 욕으로 치받았다. 그러자 주먹이 날라왔다. 눈 주위를 맞았지만, 술이 마취제로 작용했는지 고통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다만, 기분이 나빠서 그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주먹을 날리고 발길질을 해댔다. 젊은이가 쓰러지고 그의 일행들이 말리면서 비로소 주먹질을 멈췄다. 그리고 젊은이에게 명함을 건네며 한마디 했다. “맷값 물어줄테니까 전화해” 그가 택시에서 내리고 잠깐 동안 벌어진 일이다.

핸드폰이 울린다. 여전히 술이 깨지 않았는데, 핸드폰 울리는 소리에 잠이 깼다. 숙취 때문에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다. “아침부터 누가 전화질이야”라고 생각하며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여기 경찰선데요. 조사받으러 나오셔야 될 것 같은데, 언제 괜찮으세요?”
“무슨 조사요?”
“어젯밤에 사람 팬 거 기억 안 나세요? 명함까지 줬다면서요. 피해자가 뼈가 부러졌나봐요. 전치 8주 진단서 첨부해서 고소했습니다.”
“제가요?”

정신이 바짝 들었다. 일단 ‘알았다’고 하고 거울을 보니 얼굴이 말이 아니다. 시커멓게 멍들어 있는 눈 주위가 많이 부어있다. 갑자기 쓰라린 고통이 밀려온다. 기억을 더듬어보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어젯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도통 기억이 나질 않는다. “도대체 술을 얼마나 먹은 거야” 혼자 중얼거리며 앞으로 닥칠 일에 대한 걱정으로 정신이 혼미해진다.

‘술은 우리가 삶의 움직임을 이겨내는 마취제이다(조지 버나드 쇼)’ ‘주막에 가 본 적이 없는 자는 주막이 얼마나 낙원인지를 모른다. 오, 신성한 주막이여! 오, 경이로운 주막이여!(롱펠로우)’ ‘술은 모든 약 중 으뜸이다’ ‘술 속에 진리가 있다(에라스무스)’ 등 술을 찬양하는 명언들이 많다.

한편, ‘처음엔 당신이 술에 취하고, 그 다음엔 술이 술을 취하고, 그 다음엔 술이 당신을 취한다(F. 스콧 피츠제럴드)’ ‘마약과 술이 하는 것은 이게 전부다. 결국 당신의 감정을 잘라내 버리는 것!(링고 스타)’ ‘후세에 반드시 술로써 나라를 망치는 자가 있을 것이다(우 임금)’ ‘술이 머리에 들어가면 비밀이 밖으로 밀려나간다(탈무드)’ 등 술을 경계하는 명언들도 많다.

관건은 ‘내 이성이 술을 통제하느냐, 술이 내 감성을 지배하느냐’에 달려있다. 이성이 술을 이기면서 적당한 환각 속에 풍부한 감수성을 누릴 수 있다면 술은 내 삶에 경이로운 활력소로 작용할 수 있겠지만, 이 수준을 넘어서면 ‘순간의 쾌락 뒤에 따르는 긴 고통’으로 작용할 것이다.

경찰서에서 피해자와 마주 앉았다. 거듭 고개를 숙이며 사과하자 피해자도 마음이 조금 누그러졌는지 500만원에 합의해주겠다고 한다. 어쩔 수 없다. 합의하는 수밖에...

피해자와 합의를 마치고 나오는 길에 지인에게 전화한다. “오늘 기분도 더러운데, 술이나 한 잔 할까?”

*외부 필자의 기고 및 칼럼은 국민일보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엄윤상(법무법인 드림)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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