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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오늘] 200궤짝이나 요구한 중국… 선물의 외교학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이다.” -E.H. 카(Edward Hallett Carr)

삽화=이유민 인턴기자

지난 22일 한·미 정상회담이 열렸다. 윤석열 대통령은 조 바이든 대통령에게 ‘나비국화당초 서안’을 선물했다. 김건희 여사는 질 바이든 여사에게 ‘마크 로스코’전(展) 도록과 경대를 전달했다. 답례로 바이든 대통령은 윤 대통령에게 탁상 푯말과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인 조종사 선글라스를 선물했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 방한 답례 선물. 왼쪽 사진부터 나비국화당초 서안, 경대, 도록. 대통령실 제공

서안이란 일종의 좌식 책상이다. 조선시대 사대부가 책을 읽거나 손님과 이야기를 나눌 때 주로 사용됐다. 나비와 국화, 당초 문양이 그려져 있는데 이는 번영과 부귀영화, 장수를 상징한다. 한·미 양국 국기에 모두 들어가는 빨간색과 파란색 보자기로 포장해 정상회담을 기념했다.

김 여사가 선물한 경대는 거울과 보관함이 합쳐진 전통 가구이다. 겉면은 건강과 복을 상징하는 모란 문양으로 장식돼 있다. 조선 왕실은 경대를 중국에 선물하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1884년 고종이 미국인 퍼시벌 로웰에게 선물한 청자상감국화문발. 보스턴박물관 소장

19세기 조선 왕실은 미국에서 온 외교관들에게 고려청자를 선물하곤 했다. 고종은 1884년 2월 최초로 미국인 퍼시벌 로렌스 로웰(1855~1916)에게 청자를 선물했다.

1878년 프랑스 국립세브르도자제작소가 제작한 높이 62.1cm 백자 채색 살라미나 병. 조불수호조약(1886년) 체결을 기념하여 프랑스 대통령이 조선에 선물했다.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프랑스와도 ‘도자기 외교’를 펼쳤다는 기록이 있다. 프랑스 대통령은 조불수호조약(1886) 체결을 기념해 첨단 기술과 프랑스의 문화적 전통이 합쳐진 세브르의 대형 화병을 선물했다. 고종은 답례로 청자 두 점과 왕실공예품 한 쌍을 프랑스에 보내기도 했다.

특히 우리나라는 일본, 중국과 함께한 외교의 역사가 길다. 지리적으로 가까우면서 같은 한자 문화권에 속했기 때문이다.

과거 동아시아 국가들 사이의 외교 관계는 사대교린(事大交隣)이었다.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섬긴다’는 뜻의 사대 관계는 조선과 명·청 사이에 형성된 수직적 관계다. 이와 달리 ‘서로가 대등한 입장에서 교류한다’는 뜻의 교린 관계는 조선·일본, 여진 사이에 확립된 수평적 관계를 말한다.

일본과는 주로 통신사를 통해 선물을 주고받았다. 조선은 인삼, 비단, 꿀, 필기구 등을 일본에 보냈다. 일본의 대표적인 답례품은 은이었다.

우리나라와 중국의 조공 관계는 4세기 이후 삼국시대부터 시작됐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32년(고구려 대무신왕 15)에 후한으로 사신을 보내 조공을 바쳤다는 기록이 있다. 고구려는 일찍부터 중국과 조공 관계를 맺었으며, 백제와 신라도 마찬가지였다.

세종실록에 이런 기록이 있다.

“사신이 요구한 물건이 200여 궤나 되었다. 궤짝 하나를 메고 가려면 장정 여덟 명을 써야 한다. 중국 사신의 물품 요구가 이렇게 많은 적은 없었다.”

조선이 명나라에 사신을 보내 조공한 물품들은 금·은부터 종이, 신발, 비단, 가죽까지 다양했다. 환관과 공녀를 따로 선발해 보내기도 했다. 이러한 조공 관계는 조선의 경제에 막대한 부담으로 작용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조공 자체를 종속적인 것으로 볼 수 없다고 지적한다. 조공 관계는 동아시아의 보편적인 외교 문화였다. 당시 중국과의 정치·경제·문화 교류를 위한 관습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배규빈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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