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 더듬으라니 충격… 그런 심리치료 없다” 美기관서 회신[이슈&탐사]

[심리상담 X파일] 그들의 답변

신체기반 심리치료법의 권위자인 미국 심리학자 피터 레빈 박사. 에르고스소매틱교육연구원 홈페이지


본보가 보도한 논란의 심리치료 방식(“평소 자위 좀 하세요?” 유명 심리상담사가 물었다)에 대해 해당 치료법을 교육·운영하는 미국 권위기관은 “매우 충격을 받았다. 들어본 적도 없는 방식”이라고 답변했다.

캘리포니아 소재 에르고스소매틱교육연구원 멜리사 스테이저 매니저는 지난 주말 이슈&탐사팀에 회신한 이메일에서 “해당 세션의 어떤 것도 소매틱익스피어리언싱(Somatic Experiencing·SE)이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나열된 기법은 단 한 가지도 우리 프로그램에서나 (SE 창안자인 피터) 레빈 박사가 가르치지 않는다”고 재차 강조했다.

문제의 상담사 한주성(가명)씨는 성폭력 피해 트라우마를 호소하는 여성 내담자에게 ‘감각 깨우기’라며 자신이 보는 앞에서 스스로 가슴과 성기를 비롯한 몸 곳곳을 더듬게 하고 볼 등을 자기 손으로 만지기도 했다. 한씨가 사용했다고 주장하는 치료법이 신체 기반 접근법인 SE다.


트라우마 등 정신적 외상을 치유하는 기법인 SE는 문제를 겪은 신체 감각을 깨워 억눌린 감정을 방출하는 원리로 작동한다. 미국 심리학자 레빈 박사가 1970년대에 처음 고안한 이 치료법은 지난 50년간 여러 임상을 통해 효과를 인정받은 것으로 평가된다.

스테이저 매니저는 “우리가 사용하는 ‘셀프 터치’(스스로 만지기)의 예시는 자신이 살아 있고 실재함을 느끼기 위해 자기 팔을 꽉 쥐는 식”이라며 그 정도가 매우 짧고 과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이 방법은 내담자에게 성적인 느낌을 주지 않는다고 그는 덧붙였다.

SE 프로그램에는 성적인 문제를 다루는 특별 훈련 과정이 있다고 한다. 내담자가 조금이라도 불편함을 느낀다면 기본 기법에 대해 충분히 익숙해질 때까지 성적인 부분에 대해 일절 말하지 말고 기다리도록 가르친다고 스테이저 매니저는 설명했다. 또 치료의 성공을 위해 더 낫다고 판단되면 내담자가 동성이나 다른 치료사를 만나도록 하는 방안을 고려하도록 권고한다고 한다.

신체기반 심리치료법 '소매틱익스피어리언싱(SE)' 공인 교육기관인 미국 에르고스소매틱연구교육원에서 회신해온 이메일.

한씨는 별도 SE 전문교육을 받지 않고 레빈 박사가 쓴 ‘몸과 마음을 잇는 트라우마 치유’를 교재로 활용했다. 그는 오랫동안 활동한 트라우마 전문가임을 강조하며 다양한 기법을 활용할 자격이 있다고 주장했다. 레빈 박사가 1999년 미국에서 출간한 이 책은 2014년 국내에 번역됐다.

역자인 서주희 국립중앙의료원 한방신경정신과장은 앞서 취재팀 질의에 “이 책은 SE의 입문서 역할을 하는 정도”라며 “구체적이고 전문적인 SE기법을 사용하려면 SE 전문 트레이닝 과정을 밟아야 할 것”이라고 답변했다.

국내에 ‘몸과 마음을 잇는 트라우마 치유’로 번역 출간된 피터 레빈 박사의 저서. 에르고스소매틱교육연구원 홈페이지

취재팀은 지난달 20일 에르고스 측 이메일로 저자 레빈 박사에게도 해당 심리치료 방식의 적절성 등을 문의했다. 스테이저 매니저는 교육생과 강사 등으로부터 이메일 수백 통이 쏟아져 회신에 시간이 걸렸다고 설명했다. 올해 80세(1942년생)인 레빈 박사는 현재 부분적으로 은퇴한 뒤 일부 공개워크숍만 참여 중이라고 한다. 개인 이메일은 사용하지 않는다.

대신 답변해온 스테이저 매니저는 SE 인증 자격인 ‘프랙티셔너’로 2015년부터 레빈 박사의 프로그램을 관리해왔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는 “책을 읽는 것으로는 환자를 치료할 수 없다”며 “실제 교육을 이수하고 자격을 취득해야 한다”고 말했다. 레빈 박사의 저서는 SE 치료와 훈련을 받으면 가능해지는 일을 소개한 것이지 자체 훈련이 아니라고 그는 설명했다. 또 “이름 뒤에 SEP(SE 프랙티셔너)라는 글자가 없으면 그는 이 작업을 수행할 권한이 없다”며 “그렇게 제한된 지식으로는 안전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피터 레빈 박사가 군복무 중 폭발을 겪고 심각한 트라우마를 얻은 해병 대원과 2008년 12월 첫 상담을 하는 장면. 유튜브 채널 '소매틱익스피어리언싱 인터내셔널' 캡처

스테이저 매니저는 논란의 치료 방식이 SE에 기반한 것이라는 한씨 주장에 “자신의 실수에 대한 핑계로 삼고 있다”며 ‘SE를 하는 척’하는 것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또 “이 사람은 해당 내담자에게 피해를 줄 뿐 아니라 적절히 사용하면 매우 유용한 치료법에도 피해를 준다”고 비판했다.

스테이저 매니저는 “세상 사람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우리의 작업(치료법)을 마케팅하고 판매하려고 시도한다는 걸 알고 있다”며 “선의를 가진 사람에 의해서도 잘못 활용될 수도 있지만 그가 사용한 게 12단계(치료법)라면 그건 정확하지 않다”고 말했다. 한씨는 레빈 박사의 저서에 나온 12단계 트라우마 치유 프로그램을 활용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에르고스 측은 12단계라는 이름으로 치료법을 마케팅한 적이 없다고 스테이저 매니저는 설명했다.

이슈&탐사팀 강창욱 이동환 정진영 박장군 기자 issue@kmib.co.kr

※‘우리만 몰랐던 상담시장 X파일’ 시리즈는 국민일보 홈페이지 이슈&탐사 코너(www.kmib.co.kr/issue)에서 모두 보실 수 있습니다.

[관련 기사]
이수정 “무자격 심리상담 미국선 다 감옥 가야”[이슈&탐사]
“100회분 결제? 조심하세요” 좋은 심리상담 받는 꿀팁[이슈&탐사]
심리사냐 상담사냐… 심리상담, 법이 없다[이슈&탐사]
성범죄자도 몸치료 OK… 엉터리 법에 무법천지[이슈&탐사]
“나랑 놀래?” 심리상담센터 대표의 한밤 취중 카톡[이슈&탐사]
“평소 자위 좀 하세요?” 유명 심리상담사가 물었다[이슈&탐사]
뭐지? 당신들 유령인가… 범죄심리상담업체의 실체[이슈&탐사]
‘성범죄자 선처세트 팔아요~’ 엉터리 심리상담에 55만원[이슈&탐사]
엉터리 심리상담사 자격증, 3주 만에 187명이 낚였다[이슈&탐사]
“무조건 합격이세요” 엉터리 심리상담사, 기자도 땄다[이슈&탐사]

강창욱 기자 kcw@kmib.co.kr
이동환 기자 huan@kmib.co.kr
정진영 기자 young@kmib.co.kr
박장군 기자 general@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국민일보 신문구독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