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송금돼요”…내 카니발과 3670만원이 사라졌다 [검은 사기]

탁송 이용 ‘신종’ 중고차 3자 사기 기승
피해자만 11명, 3억 5000만원 사기…징역 5년
유사 피해 사례 잇따라…“조직적 범행” 의심

중고차 3자 사기 피해자 양모(40)씨(왼쪽)가 지난해 5월 14일 아파트 인근 카페에서 사기꾼 김모(29)씨와 만난 당시 모습. 피해자 제공

두 아이의 아빠 양모(40)씨는 지난해 5월 10일 아이들과 캠핑을 다니기 위해 샀던 카니발 리무진을 중고 매물로 내놨다. 개인 사정상 캠핑을 못 다니게 돼 차량을 빨리 정리할 생각이었다.

중고차 거래 온라인카페에 글을 올린 후 30분 만에 전화가 왔다. 자신을 중고차 딜러라고 소개하는 A씨였다.

“저도 아이를 키워서 아이랑 캠핑을 다니려고요. 제가 탈 차를 구하는데 카니발 리무진 휘발유가 매물이 별로 없어서 사고 싶네요.”

A씨는 양씨가 올린 4500만원에 차를 구매하기로 했다. 양씨도 거래를 빠르게 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의심 없이 A씨와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다.

거래는 일사천리로 5월 14일 진행됐다. 하지만 양씨가 그를 만나기로 한 장소에는 A씨와 목소리가 전혀 다른 김모(29)씨가 나왔다. 전화번호도 달랐다.

“저랑 같이 일하는 형님이 전화를 했었는데 제가 대신 차를 구매하러 왔어요. 차를 사서 형님도 타고 저도 타려고요.”

김씨의 말에 양씨는 찝찝함을 느꼈다. 하지만 중고차 거래 시스템을 잘 모르다보니 ‘개인 거래 할 때는 이런 경우도 있구나’라고만 생각했다.

4500만원에 거래하기로 했는데 3670만원만 입금

중고차 3자 사기 피고인 김모(29)씨가 지난해 5월 14일 아파트 인근 카페에서 피해자 양모(40)씨를 만났을 당시 모습. 피해자 제공

양씨는 그에게 차량 매도용 인감증명서 등을 건넸다. 매수자는 ‘XX모터스’였다. 김씨는 유명 중고차거래업체 이름을 대며 자신이 업체 소속 딜러라고 했다. 명함을 달라고 했지만 “지금은 명함을 놓고 왔고 나중에 사진으로 보내주겠다”고 했다.

김씨는 차량을 매입하기 전 차량 성능검사가 필요하고 우선 차량을 협력업체에 보내야 한다고 했다. 차량 탁송 기사가 도착했고 카니발은 탁송 기사와 함께 떠났다. 탁송 기사도 실제 영업을 하는 정상적인 기사여서 양씨는 별다른 의심을 하지 못했다.

양씨는 김씨와 함께 아파트 인근 카페에서 돈이 입금될 때까지 함께 기다렸다. 양씨 계좌로 입금된 돈은 약속했던 4500만원이 아닌 3670만원이었다. 입금자명은 양씨의 차량번호로 돼 있었다.

양씨가 김씨한테 따지니 그는 “사무장이 다른 차와 헷갈려 잘못 송금한 것 같다. 알려주는 계좌로 입금하면 다시 4500만원을 보내주겠다”고 했다.

김씨가 알려준 계좌주는 국민은행 ‘김XX(XX모바일)’이었다. 김씨의 이름이었고 자동차 양도증명서에 적힌 이름 및 업체와 똑같았다. 양씨는 김씨 소속 업체의 법인 통장이라고 생각하고 3670만원을 송금했다.

하지만 약속했던 4500만원은 곧바로 입금되지 않았다. 김씨는 ‘회사가 바빠서 입금이 늦나보다’ ‘장모님 되실 분을 예비 신부와 저녁에 만나기로 했는데 늦을 것 같다’며 하소연을 했다. 김씨가 가족까지 언급하니 양씨는 마음이 약해졌다. 내일 다시 얘기해보자며 일단 헤어졌다.

돈이 입금 되지 않자 불안해진 양씨는 중고차 사기 사례 등을 검색해봤다. 하지만 기존에 알려져 있는 중고차 3자 사기는 양씨가 겪은 사례와는 다소 달랐다. 중고차 거래 경험이 많지 않았던 양씨로서는 직접 만나 카페에서 얼굴까지 본 사람이 매매 대금을 ‘먹튀’할 사기꾼이라고 쉽게 생각하기가 어려웠다.

양씨와 헤어진 김씨는 전화 통화에서 늦어도 다음날 오후 1시까지는 송금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다음날 오전 11시부터 김씨와 잘 연락이 닿지 않았다. 가까스로 김씨와 오후에 통화가 됐지만 김씨는 송금이 되지 않는 것에 대해 핑계만 늘어놨다. 양씨는 속았다는 생각에 입이 마르고 온 몸이 떨렸다.

‘눈 뜨고 코 베였다’…사기꾼 잡고보니 피해자만 11명

차량 위치 확인 기능을 통해 찾아보니 카니발은 매도용 인감증명서에 적힌 매매 상사 ‘XX모터스’ 주차장에 있었다. 양씨는 바로 업체로 달려갔지만 토요일이라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백주 대낮에 카니발과 매매 대금을 둘 다 날린 것이다.

양씨는 곧바로 경찰서로 향했고 김씨를 고소했다. 하지만 김씨를 붙잡지 않는 이상은 매매 대금을 돌려받을 길이 없었다. 매매 대금을 치르고 카니발을 받은 XX모터스로부터 차를 돌려받을 수도 없었다. XX모터스 입장에서는 김씨가 매도인인줄 알고 돈을 송금했던 것이다.

김씨가 감쪽같이 양씨를 속일 수 있었던 이유는 뭘까. 김씨는 XX모터스에 접근해 자신이 ‘양◯◯’이며 자기 차량인 카니발을 3670만원에 판다고 거짓말을 했다. 탁송 기사를 이용해 카니발을 업체에 넘겼고 업체가 송금한 3670만원을 양씨로부터 빼낸 후 잠적했다. 매도용 인감증명서가 있으니 XX모터스도 거래를 진행했다.

XX모터스 입장에선 돈을 송금했고 매도용 인감, 차량등록증 등을 넘겨받은 상태라 차량 이전 등록도 마칠 수 있었다. 양씨는 결국 XX모터스에 자신의 돈 3670만원을 건네고 카니발을 다시 돌려받았다. 양씨 입장에선 ‘눈 뜨고 코 베인’ 것 같은 황당한 상황이다.

다행히 김씨의 범행은 오래가지 못했다. 사건이 벌어진지 약 2개월 만에 덜미가 잡혔다. 잡고 보니 사기 범행 피해자는 양씨를 포함해 11명, 피해 액수만 약 3억5000만원이었다. 김씨는 사기와 사문서위조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사문서위조는 자동차 양도증명서를 허위로 작성한 혐의다. 김씨는 사기 친 돈을 모두 도박자금이나 유흥에 탕진한 것으로 드러났다.

청주지법 형사5단독 박종원 판사는 지난달 김씨에 대해 징역 5년을 선고했다. 박 판사는 “피고인이 유흥비 마련을 위해 범행을 했고 계획 범행인 점, 피해자 수와 피해액을 고려할 때 무거운 형벌을 피할 수 없다. 피고인은 피해자들로부터 용서받지도 못했다”며 양형 이유를 밝혔다. 김씨는 법원에 범행을 인정하고 반성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전과도 없었다.

G80, 벤츠, BMW, 렉스턴, K9 중고차 범행 대상돼

김씨는 마치 피해자들이 쉽게 속아 넘어갈 것을 예상이라도 한 듯 2개월 만에 여러 건의 범행을 저질렀다. 양씨를 만나 범행을 저지르기 전날에도 다른 렉스턴 차량 소유자를 상대로 사기를 쳤다. 범행 장소도 경기도 김포시, 수원시, 천안시, 서울 강남구, 서울 강서구 등 다양했다.

김씨는 과거 중고차 매매 중개업에 종사해 매매 과정을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 자동차 소유자, 실제 매수인인 중고차 매매업자, 탁송 기사를 모두 속이는 범행 구조를 설계하는 게 가능했던 이유다. 중고거래에 익숙하지 않은 피해자들은 홀린 듯 거액을 사기 당할 수밖에 없었다.

피해자들의 차량도 G80, 벤츠, BMW, 렉스턴 등으로 다양했다. 주로 중고 가격대가 3000만~5000만원인 차량이 범행 대상이 됐다. 김씨는 피해자들이 중고차 거래 카페, SK엔카 등에 거래 게시글을 올린지 당일 혹은 늦어도 수일 안에 연락했고 신속하게 약속 날짜를 잡고 범행을 저질렀다.

과거 일반적인 중고차 3자 사기는 사기꾼이 매도자와 매수자 양쪽을 속여 서로 거래하게 하고 현장에 등장하지는 않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김씨의 경우 대담하게 직접 매도자와 만난 후 차량을 탁송으로 실제 매수자에게 보내는 식으로 범행을 저질렀다.

매도인들은 눈앞에 있는 김씨 관련 업체가 차를 사는 것으로 믿었다. 실제로는 전혀 연관이 없는 다른 중고차 매매업체가 자신의 차를 산다는 것은 짐작도 하지 못했다. 짧은 기간에 많은 피해자들이 발생한 이유다.

수상한 자동차 양도증명서…피해자들 “공범 의심”

위쪽 첫번째 두번째 자동차 양도증명서는 징역형을 선고받은 김모(29)씨가 사용했던 것. 맨 아래 양도증명서는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에 중고차 사기 피해를 호소하는 피해자가 올린 사진. 양도증명서의 매도 일련번호가 모두 일치한다는 점에서 피해자들은 조직적 범행을 의심하고 있다. 피해자 제공

김씨는 붙잡혔지만 이처럼 탁송을 이용한 자동차 3자 사기 범행은 최근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지난주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자동차 3자 사기를 당했다는 글이 올라왔는데 김씨의 수법과 매우 흡사하다. 사기꾼이 직접 매도자를 만나러 오고 탁송을 이용해 차를 매매 업체에 보내는 식이다.

과거 유행했던 자동차 3자 사기가 교묘하게 다른 수법으로 기승을 부리는 것에 대해 피해자들은 김씨의 공범이 있는 것 같다는 의심을 하고 있다. 양씨의 경우 그에게 최초로 전화를 했던 사람은 김씨가 아니었고 김씨에게 돈을 재촉하는 과정에서 다른 인물이 전화를 받기도 했다. 그는 “김 실장님이 지금 전화를 못 받아 제가 받는다”고 했다. 하지만 경찰 수사 과정에서 공범이 드러나지는 않았다.

최근 자동차 3자 사기 피해자들에게 접근한 인물은 ‘YY모터스 장◯◯’이라는 명함을 사용했다. 그런데 이는 앞서 김씨가 거래할 때 사용했던 자동차 양도증명서에 적힌 매도 일련번호 ‘인천 31-18-709667’과 완전히 똑같았다. 이 양도증명서는 피해자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작성된 것일 뿐 실질적으로는 아무 효력이 없는 문서였다.

피해자가 직접 발급받은 매도용 인감증명서에는 실제 매수인인 업체가 적혀 있지만 사람의 이름이 적히지는 않았다. 김씨는 양도증명서의 매수인에 자신 혹은 사칭하는 사람의 이름을 적어 정상적인 거래처럼 보이게 한 것이다. 이 같은 수법도 최근 발생한 피해 사례와 유사했다.

양씨는 계약서 매도 번호가 같은 것을 보니 조직적인 범죄 같다며 최근 경찰에 추가 수사를 요청했다. 하지만 경찰은 계약서 번호가 같은 것 하나만으로는 공범으로 단정하기 어렵다고 답했다고 한다.

양씨는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에 새로 올라오고 있는 피해 호소글의 사기꾼도 김씨의 공범인 것 같다. 계약서 양식과 사기 패턴이 같다”며 “일망타진하지 않으면 새로운 피해자가 계속 생겨 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경찰에 추가 수사를 요청했지만 위 사항만으로는 공범이 있다고 판단하기 어렵다고 한다”며 답답해했다.

국민일보 ‘검은 사기’는 교묘한 수법으로 서민들을 울리는 각종 사기 사건을 파헤칩니다. 중고거래, 자동차, 전세, 금융, 보이스피싱 등 사기를 당하신 피해자 분들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기자 이메일로 피해 사례를 제보해주세요.


나성원 기자 naa@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국민일보 신문구독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