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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윤상의 세상만사] 배드파더스와 명예


“애들 아빠가 바람이 나서 이혼했는데, 양육비를 두어 달 준 다음에 아예 연락을 끊었습니다. 애들이 초등학교, 중학교에 다니고 있어서 돈도 많이 드는데, 걱정입니다. 제가 알바로 버는 돈으로는 두 아이를 키우는 게 너무 버겁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우연히 애들 아빠 친구를 만났는데, 애들 아빠가 어떤 여자와 함께 제네시스를 몰고 다니면서 잘살고 있다는 소리를 듣고 그만 제가 화가 나서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여기저기에 공개적으로 ‘양육비 안 주고 도망가서 너만 잘살고 있으니 좋더냐’라고 올려버렸습니다. 그랬더니 애들 아빠가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겠다고 문자를 보냈네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아이들의 생존보다 자신의 명예가 더 중요한가 보다. 정말 못난 아빠다.

실제로 양육비를 못 받아온 부모들을 대신해서 나쁜 부모의 신상을 공개해온 사이트인 ‘배드파더스’가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당하여 재판을 받고 있다. 1심은 ‘양육비 미지급은 공적 관심 사항이기 때문에 신상 공개만으로 비방 목적을 인정할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으나, 2심에서는 ‘신상을 무제한으로 공개하는 것은 개인의 사생활과 인격권을 침해하는 것’이라며 유죄로 판단했다. 이 사건은 현재 대법원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2022년 5월 발표된 한부모가족 실태조사를 보면 양육비 미지급율이 80% 이상이고 피해 아동의 숫자가 100만명이 넘는다고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배드파더스’는 2022년 6월 15일까지 무려 223건의 양육비 미지급 문제를 해결했고, 이들의 용기있는 ‘자력구제’는 2021년 7월에 양육비 이행확보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는 결과로 돌아왔다. 이제 국가도 개인의 명예보다 아이들의 생존을 더 중요시하게 된 것이다.

여기서 ‘자신의 이익을 포기하고 남을 위해 헌신해서 얻는 것이 명예 아닌가? 그런데, 자기 자식의 양육비도 주지 않는 사람이 남을 위해 무슨 헌신을 했다고 그 사람의 명예를 보호하나?’라고 의아해할 수 있다.

그러나 명예훼손죄에서 말하는 명예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명예와는 그 의미가 상당히 다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명예가 ‘도덕적 또는 인격적으로 두루 인정받아 스스로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공적이나 성과’를 의미한다면, 명예훼손죄에서의 명예는 ‘사람의 인격적 가치에 대한 사회적 평가’, 즉 ‘자신이 살아오면서 정당하게 쌓아온 삶의 발자취로 인해서 정당하게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사회 안에서 정당하게 자신을 내세울 수 있는 권리’ 정도로 이해하면 되겠다.

이런 ‘명예’의 의미에 대한 법과 상식의 불일치가 많은 사람을 전과자로 만들고 있다. 정의의 이름(?)으로 나쁜 짓을 저지른 사람을 공개적으로 저격하면 어김없이 돌아오는 것이 명예훼손 고소와 형사처벌이다. 나쁜 사람들은 남아있는 한 줌의 명예(?)를 지키거나 합의금을 받기 위해 고소를 남발한다.

‘배드파더스’가 이 깊은 수렁에 빠져있다. 과연 대법원은 배드파더스를 수렁에서 건질 것인가, 아니면 더 깊은 수렁에 던져 넣을 것인가. 이번 기회에 대법원이 ‘보호할 가치가 있는 명예만을 보호한다’는 명확한 기준을 세워보면 어떨까.

*외부 필자의 기고 및 칼럼은 국민일보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엄윤상(법무법인 드림)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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