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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민 납치 강제북송한 北정보원, 집행유예 선처 이유는?

국보법 위반 40대에 집유 4년 선고
2016년 탈북 후 조사 과정서 자백
“국민 일원으로 살게하는 것이 적절”

국민일보DB

북·중 접경지대인 압록강변에서 탈북민을 납치해 강제로 북송하는 범죄에 가담한 북한 주민이 탈북 이후 국내에서 재판에 넘겨졌지만 집행유예 선처를 받았다.

29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33부(재판장 노호성)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A씨(47)에게 최근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북한 양강도 출신의 A씨는 탈북자 송금 브로커로 일하던 2009년 북한 당국에 적발돼 조사를 받던 중 북 최고 정보·수사기관인 국가안전보위성 정보원으로 포섭됐다. 이듬해 3월 양강도 혜산시 보위부는 A씨에게 “십 수년 전 탈북한 B씨가 함경남도 리원군 보위부 극비 문건을 탈취하려 시도 중”이라며 납치 지령을 내렸다. “문건이 넘어갈 시 리원군 보위부가 해산해야 될 정도의 엄중한 일”이라는 설명이 뒤따랐다. B씨는 리원군 출신으로 1997년 처음 탈북해 중국서 생활하다 공안에 체포돼 두 차례나 북송된 이력이 있었다. 세 번째로 탈북한 2009년부터는 국내에 입국해 정착한 상황이었다.

북 혜산시 보위부는 B씨 납치 계획에 따라 A씨, B씨의 지인 C씨, 보위부 직원 3명으로 구성된 체포조를 짰다. 이후 C씨는 B씨에게 ‘보위부 문건을 전달하겠으니 중국 장백현으로 오라’고 유인했다. B씨는 이 문건을 국내 정보·수사기관에 제보하면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기대에 중국으로 출국했다. 미리 기다리고 있던 체포조는 B씨를 제압한 뒤 포박해 A씨가 준비한 승용차에 태워 북한으로 보냈다. 북송된 후 B씨의 행적은 알려지지 않았다. 국내로 다시 입국한 기록도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2012년까지 탈북자 색출 등 북한 주민 감시를 돕는 정보원 활동을 하다가 북한 체제에 환멸을 느끼고 2016년 9월 탈북했다. 중국 등을 거쳐 이듬해 1월 국내에 정착했다. 그는 북한이탈주민보호센터에서 조사를 받던 중 자신의 범행을 털어놓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재판에서 변호인은 A씨가 북한 보위성의 강요와 협박 탓에 범행에 가담했기 때문에 형사 책임이 면제된다고 주장했다. 또 자수했기에 형이 감경돼야 한다고도 했다.

재판부는 A씨 측 주장을 전부 받아들이지 않았다. A씨 행위는 강요에 의한 것이 아니라 북한 당국으로부터 탈북자 송금 브로커 업무·밀수입 등 자신의 경제활동 편의를 보장 받기 위해 스스로 선택한 것이라고 봤다. ‘자수’라는 주장에 대해서도 “자수는 범인이 스스로 수사책임이 있는 관서에 범행을 자발적으로 신고하고 그 처분을 구하는 의사 표시”라며 “수사기관의 질문 또는 조사에 응해 범죄사실을 진술하는 것은 자백일 뿐 자수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재판부는 “북송된 자의 자유와 인권을 심각하게 침해한 반인륜적 범죄로 그 죄질이 가볍지 않다”고 지적했다.

다만 재판부는 A씨 범행이 국내 입국 시점 기준으로 7년 전에 벌어졌고, 승용차 준비 수준으로 그 가담 정도가 낮으며, 현재 대한민국에서 직장을 얻어 성실히 살아가고자 노력하고 있는 점 등을 유리한 감형 사유로 봤다.

재판부는 “B씨가 심각한 인권침해를 당했을 가능성이 있지만 이는 북한 당국의 반인권적 시스템에 의한 것으로 오로지 피고인에게만 책임을 돌릴 수 없다”며 “사회로부터 격리하는 엄중한 처벌을 하기보다 집행유예 선처를 베풀어 건전한 대한민국 국민의 일원으로 살아가도록 하는 게 적절하다”고 밝혔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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