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정신과전문의 최의헌

대한기독정신과의사회 회장 “탈북자 진료지원도”

최의헌 박사가 지난 1일 서울 마포구 연세로뎀정신건강의학과의원에서 코로나 기간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신석현 포토그래퍼

“어떻게 지냈냐고요? (웃음) 이렇게 오랜 기간 감염의 우려를 지닌 채로 지낸 경험이 평생 처음이다 싶게 불편하게 지냈다.” 최의헌(55) 대한기독정신과의사회 회장은 지난 1일 서울 마포구 연세로뎀정신건강의학과의원에서 가진 국민일보와 인터뷰에서 안부를 묻자 이렇게 답했다. 2000년부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로 환자를 만나온 최 박사는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에서 신학을 공부한 목사이기도 하다.

국민일보 칼럼(2014~2015)에서 간혹 위악적인 재치를 뽐냈던 최 박사의 과장 섞인 답처럼 느껴졌다. 코로나 기간 환자들이 가장 많이 호소한 어려움부터 물어봤다. 그는 “무기력을 많이 호소했다. 나도 그랬다. 활동이 제한되고 사람들을 자유롭게 만나지 못하는 것이 얼마나 우리를 심리적으로 위축시키는지 절실하게 겪었다. ‘할 수 있으나 안 하는’ 것과 ‘하고 싶어도 못 하는’ 상황의 차이는 참 크다”고 했다.

코로나 팬데믹이 엔데믹으로 전환되는 시점의 특이점은 없을까. 최 박사는 “사실 코로나로 덕을 본 부분들도 있다. 형식적인 인간관계를 안 해도 됐으니까. 마스크를 쓰고 있으니 표정 관리도 편하고. 그런데 이제 코로나 영향이 줄어들면서 일상 회복이 이뤄지다 보니 코로나 기간 이런 점에 안도감을 느꼈던 분들은 오히려 걱정을 한다. 이런 스트레스로 힘들어하는 분들이 많다”고 했다

아이러니다. 요즘 목회자 등 교회 중직자들은 코로나 기간 교회 발길을 끊은 뒤 교회로 아직 나오지 않는 성도들을 걱정한다. 그는 “독일 신학자 본 회퍼는 모이려고만 하는 사람은 혼자 있는 훈련이 필요하고, 혼자 있으려고만 하는 사람은 모이는 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코로나 이전 교회는 후자를 강조했는데 코로나는 전자를 훈련시켜준 셈이 됐다”고 했다.

최의헌 박사가 지난 1일 서울 마포구 연세로뎀정신건강의학과의원에서 한국교회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신석현 포토그래퍼

이어 “공동체 안에서 교제하지 못하는 성도들의 영적 허기를 안타까워하는 지도자라면 그는 그에 따른 고통을 피할 수 없다. 또 그 고통은 값지다. 반면 지도자 자신이 홀로 있지 못해 혹시 불안에 빠지는 것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건 자신의 취약성으로 인정하고 직면해야 할 부분이다. 교회 재정 등 현실적인 문제에 대한 걱정을 영적으로 해석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냉철한 현실 인식을 강조했다. “코로나가 종식되어도 교회는 이전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이제는 목회 패러다임의 다양한 전환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이끌어주신 하나님의 선한 영향력이 앞으로도 계속될 것을 믿고 다시 일어서되, ‘새로운 길’을 열어주실 수 있으니 열린 마음으로 주님의 인도를 따라가고 유연하게 사고하자. 임지만을 생각할 게 아니라 이중직 등 다양한 형태의 목회를 고민할 때”라고 했다.

탈종교화라는 시대적 흐름 속에 한국교회도 위축되고 있다. 정신과 의사로서 기독교의 가능성을 물었다. 최 박사는 “이제 영성이라는 단어는 종교인의 전유물이 아니다. 종교가 없어도 영성을 인정하고 이를 발전시키려는 사람들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교회는 영성을 추구하는 사람에게 영성의 이해를 풍요롭게 하는 교육의 장이 될 수 있고 ‘가나안’ 성도에게 가끔 기대어 쉴 고향이 될 수 있다”고 했다.

대한기독정신과의사회 회장 임기 2년동안 어디에 주안점을 두고 활동할까. “회원이 130여명 정도 되는데 지역별 소그룹을 확대하려고 한다. 대외적으로는 기독상담사들의 교육을 적극 지원하고 싶다. 탈북자 진료지원 등 우리가 직접 도울 수 있는 네트워크를 강화하려고 한다. 인간복제 등 생명윤리 논의와 같이 우리 목소리를 내고 싶다”고 했다.


최 박사는 여유가 있을 때 작사·작곡을 한다. 인터뷰 중 그가 잠시 들려준 노래는 ‘우리는 친구’란 곡이었다. “아내와 나는 2014년 아이를 입양했고 민유라는 이름을 지었다. 어느 정도 자란 딸, 아들과 함께 결정한 것이었다. 그런데 민유가 우리집에 온지 한달도 안 돼 갑자기 숨졌다. 우리 가족에게 매우 큰 충격이자 아픔이었다. 민유를 잃은 후 우리 가족은 ‘우리는 친구’를 함께 불렀다.”

가사는 이랬다. ‘우리 다시 한 번만 생각해요 우리는 친구예요~ 우리 사는 것이 너무나도 서럽게 느껴져요~ 우리 한 번만 생각해요 우리는 친구 사랑하며 지내야죠~.’ “민유를 그렇게 보낸 후 수목장 공원에 대해서도 계속 구상한다. 어쩌면 내가 태어나 겪은 가장 큰 상실이다. 민유가 우리집에 온 해는 ‘세월호 사건’이 있었다. 긴 시간 나는 죽음을 애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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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주화 기자 rul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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