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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코로나로 한국 못 온 사이, ‘수배자’ 날벼락

베트남 사업가, 귀국 비행기서 곤혹
자신도 모르게 지명통보 내려져
인권위에 ‘수배 남발’ 진정
“경찰력 낭비, 인권침해 소지” 지적

연합뉴스

베트남에서 사업을 하는 40대 여성 조모씨는 몇 달 전 귀국길에서 가슴 철렁한 일을 겪었다. 지난 2월 10일 새벽 4시30분 그가 탄 하노이발 비행기가 인천국제공항에 착륙했는데, 공항경찰 2명이 기내로 들어서더니 곧장 자신의 좌석 앞까지 걸어온 것이다.

공항경찰은 조씨 얼굴을 확인한 뒤 “따라오라”고 했다. 짐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공항 로비까지 따라간 조씨가 겁에 질려 눈물을 흘리자 경찰은 그에게 ‘지명통보 사실 통지서’를 건넸다. 왜 수배 대상이 됐는지는 설명하지 않았다. 조씨는 코로나19로 2년여 만에 귀국하는 길이었다.

지명수배 등에 관한 규칙에 따르면 수배자는 A~C급으로 나뉜다. A급은 지명수배자로 구속·체포영장이 발부된 경우다. 이들은 현장에서 체포된다. B급은 벌금 미납자이고 C급은 조씨처럼 벌금형 등이 의심되는 경우다. B·C급수배자는 지명통보 대상자다.

일주일 뒤 서울 종로경찰서에 출석하고 나서야 조씨는 상표권 도용 혐의를 받고 있고, 귀국에 맞춰 수사가 재개됐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는 2020년 하노이에 머물 때 한국 경찰로부터 받은 “상표권법 위반으로 고소를 당했다”는 전화를 떠올렸다. 구매대행 사업 홈페이지 테스트 과정에서 다른 상품 이미지를 잘못 게재한 게 문제였다.

당시 경찰은 소명 자료 제출을 요청했다. 조씨는 한국에 있는 회사 직원에게 자료 제출을 부탁했고, 경찰이 이를 전달 받았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이후 연락이 없어 일이 원만히 마무리된 것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조씨가 지명통보 대상이 된 건 사건이 기소중지됐기 때문이었다. 기소중지는 피의자 조사가 불가능할 때 수사를 멈추는 절차다. 소재를 파악할 수 없는 경우 지명수배나 지명통보가 내려진다. 경찰은 조씨가 해외에 있었고, 코로나19로 대면 조사가 힘들다는 이유 등으로 이런 처분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씨는 “경찰에 적극 협조했기 때문에 문제가 없는 줄 알았다”며 “코로나로 한국에 못 온 것뿐인데, 경찰이 지명통보 사실을 알려줬거나 귀국 후 조사 일정을 미리 조율했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달 경찰을 상대로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접수했다.

전문가들은 수배가 남발되면 경찰 인력이 낭비되고, 인권침해 소지도 크다고 지적한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은 “C급수배자 중에는 사소한 고소·고발을 당한 평범한 시민이 많다”며 “이사하면서 소환장을 놓쳤거나, 경찰 전화를 못 받은 경우도 있는데 일괄적으로 수배를 내리는 건 행정 편의주의”라고 지적했다. 조씨처럼 코로나19로 대면 조사가 힘들어 수배된 경우도 많을 것으로 오 국장은 관측했다.

경찰통계에 따르면 지명수배·통보자는 2015년 6만1063명에서 2019년 3만3886명으로 꾸준히 줄었으나 코로나19 사태 이후인 2020년에는 4만3965명으로 크게 늘었다. 한 경찰 관계자는 “경찰 내부에서도 혐의가 가벼운 경우 수배에 따른 항의나 민원으로 인한 부담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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