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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육아휴직 후 임금·권한 적은 보직으로 이동은 부당

업무 성격·내용·범위·권한·책임 불이익 고려해야


회사가 육아휴직 이후 직원을 형식적 직급은 같지만 실질적 권한·임금이 적은 보직으로 인사이동 시켰다면 부당전직에 해당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전직의 필요성, 임금 등 전체적인 근로수준의 변동 여부, 직원과의 협의 여부 등 차별적인 전직인지를 판단하기 위한 구체적인 기준도 처음으로 제시됐다.

대법원 2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롯데쇼핑이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낸 부당전직구제 재심판정 취소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4일 밝혔다.

1999년 롯데쇼핑에 입사한 A씨(47)는 2013년부터 롯데마트 한 지점에서 발탁매니저로 일했다. A씨는 2015년 6월 회사의 승인을 얻어 1년간 육아휴직에 들어갔지만 6개월 뒤 육아활동을 계속하기 어렵다며 복직을 신청했다. 그런데 이미 대체근무자가 발탁매니저로 발령을 받은 상태라 바로 복직하지 못했고, 내용증명이 오간 끝에 A씨는 2016년 3월 복귀하게 됐다.

회사는 대체근무자가 있다는 이유로 A씨를 기존 보직이 아닌 냉장냉동 영업담당으로 발령 냈다. A씨는 부당전직을 당했다며 구제신청을 했고, 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는 부당전직이 맞다는 판단을 내렸다. 롯데쇼핑은 이에 불복해 소송을 제기했다.

1심과 2심은 적법한 전직이라며 회사의 손을 들어줬다. 회사 세칙상 발탁매니저는 임시 직책에 불과하기 때문에 복직 후 다른 업무를 맡게 했다고 해서 부당하다고 볼 수 없다는 취지였다. A씨는 육아휴직에서 복귀한 뒤 발탁매니저에게 주어지는 월 27만원의 수당을 못 받게 됐지만, 이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월 급여 차이는 4.23%에 불과하며, 수당 중 사택수당 5만원은 임금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원심 판단을 뒤집었다. 사업주가 육아휴직을 마친 근로자를 다른 보직에 복귀 시켰다면, 형식적 직급뿐만 아니라 실질적인 업무의 성격과 내용, 권한과 책임 등에 차이가 없어야 한다는 게 대법원의 결론이었다. 대법원은 “원심은 복귀 후 받는 임금이 휴직 전과 같은 수준이기만 하면 사업주가 남녀고용평등법 제19조4항에 따른 의무를 다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잘못된 전제 아래 회사가 A씨에게 실질적으로 불리한 직무를 부여하는 것인지에 대해선 판단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부당한 전직인지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구체적인 조건도 제시했다. 근로조건, 업무의 성격·내용·범위 및 권한·책임 등에서의 불이익 유무 및 정도를 따져봐야 한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또 “기존에 누리던 업무·생활상 이익이 박탈되었는지 여부, 회사가 직원에게 동등하거나 더 유사한 직무를 부여하기 위해 협의 등 노력을 했는지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임주언 기자 e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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