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 부리듯…초인종 채우고 잔반만 먹인 사우디 외교관

가정부 착취…英서 세계 최초로 외교관 면책특권 불인정 판결

국민일보 DB

영국 대법원이 면책특권을 부여받은 외교관이라도 사법적 특권 뒤에 숨어 노동자들을 착취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영국 BBC에 따르면 영국 대법원은 6일(현지시간) 런던 주재 사우디아라비아 외교관 칼리드 바스파르가 지난 2016년부터 2년여간 필리핀 가사 도우미 조세핀 웡(30)에게 폭언과 착취를 일삼았다는 혐의에 대해 “외교관의 면책특권을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외교관들은 파견된 국가에서 부여되는 형사 고발과 민사 사건으로부터 보호받는 면책특권이 부여되지만, 이번 사건과 관련해서 이 특권을 박탈한 것이다.

이 같은 판결에 따라 착취당한 필리핀 가사 노동자는 보상을 요구할 수 있게 됐다. 변호사들은 이것이 외교관들의 면책특권을 인정하지 않은 세계 최초의 판결이라고 말했다.

영국 가디언지 보도 캡처

재판은 외교관 바스파르의 집에서 가사도우미로 일하면서 “현대판 노예로서 일할 것을 강요받았다”고 주장하는 웡(30)에 의해서 제기됐다.

웡의 변호인 측은 웡이 항상 집 안에 갇혀 있었고, 폭언에 시달렸으며, 고용주들이 집에 있을 때에만 그들이 먹다 남긴 음식을 먹어야만 했다고 말했다. 웡이 집 밖에 나갈 수 있도록 허용된 때는 집안의 쓰레기를 버리러 나갈 때뿐이었다고 한다.

웡은 쉬는 날 없이 매일 아침 7시부터 밤 11시 반까지 16시간 30분 동안 일해야 했다. 또 고용주들이 언제라도 그녀를 부를 수 있도록 초인종을 차고 있어야 했다.

놀랍게도 웡은 이런 노동에도 무급에 가까운 급여 만을 받았다고 한다. 웡은 2016년 사우디에서 영국으로 온 후 7개월 동안 급여도 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그녀는 그 후 6개월간 일한 대가로 1800파운드(약 280만원)를 일시금으로 받았지만, 그 이후 또 급여를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웡은 2018년 가까스로 탈출에 성공, 바스파르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바스파르는 자신에 대한 외교적 면책특권을 근거로 웡의 제소는 기각돼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영국 대법원은 웡에 대한 바스파르의 착취 혐의는 상업 활동에 해당하기 때문에 외교 면책특권을 인정할 수 없다고 3대 2로 판결했다.


외교 관계에 관한 빈협약 제31조에 따르면, 외교관들은 형사 기소에서 면제된다. 그러나 외교관의 전문적인 업무 이외의 상업적 활동은 민사소송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영국 대법원은 또 “바스파르가 거의 2년 동안 급여도 주지 않고 웡의 노동을 계획적이고 조직적으로 착취함으로써 상당한 재정적 이익을 얻은 행위는 개인의 이익을 위한 상업적 활동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노예제도 반대 운동가들은 이 판결을 크게 환영했다. 웡의 변호사 누스라트 우딘은 “우리의 의뢰인을 위한 정의가 바로 세워졌다. 이번 판결은 외교관들에게 착취당할 위험에 처한 모든 잠재적 피해자들을 위한 것으로, 법적 조치를 취할 수 있는 의지력을 허용해주고, 매우 큰 힘을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바스파르의 변호사들은 판결에 대한 언급을 피했다. 런던주재 사우디 대사관도 즉각적인 반응을 내놓지 않고 있다.

김용현 기자 fac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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