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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람> 40여년 공직생활 마무리하는 조용진 한국광산업진흥회 상근부회장

언제나 준비하는 자세로 여생 채워갈 터


“40여 년간 지역사회 발전을 위해 나름 땀 흘려왔습니다. 인생 1, 2막을 지나 3막을 올리게 돼 어느 때보다 가슴이 설렙니다. 홀가분한 기분이지만 언제나 경단급심(綆短汲深)의 자세로 여생을 채워갈 것입니다”

한국광산업진흥회를 10년 가까이 이끌어온 조용진(70) 상근부회장이 8일 퇴임한다. 1977년 8급 기계직으로 공직에 투신한 그는 30여 년간 광주시청 ‘토종 공무원’으로 근무하면서 2급 기획조정실장까지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다.

2013년부터는 광산업진흥회를 진두지휘하면서 광산업 진흥의 발판을 깔고 비약적 발전을 일궜다. 조 부회장 취임 이후 광주를 중심으로 한 광산업체는 48개에서 320개로 6.6배 늘었다. 매출액 역시 1136억원에서 2조7000여억원으로 23.8배 급증했다.

1900명 수준이던 광산업 종사자는 8400여명으로 4.4배 몸집을 불렸다.

조 부회장은 “어릴 적 면사무소 서기가 면장님을 오토바이 뒷자리에 태워 출퇴근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어렴풋이 면장이 되고 싶다는 꿈을 품었다”며 “퇴직해도 언제나 면장 어르신으로 불렸고 동네에서 가장 찾기 쉬운 곳도 면장 집이었다”고 아스라한 공직 입문 동기를 회고했다.

고희를 앞둔 그는 “돌이켜보면 철없던 초등학교 시절 면장님처럼 되고 싶다는 소망이 40여년간의 공직생활을 이어온 동력이 되지 않았다 싶다”며 지역사회와 광융합 기업들을 위해 여한 없이 달려온 과거를 되새겼다.

“32년 넘게 봉직한 1막 광주시청과 10년간의 2막 한국광산업진흥회 시절은 참으로 값진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부산의 신발산업, 대구의 섬유산업과 함께 광주의 미래 먹거리를 책임질 광산업을 새로 만들어낸 보람은 어디에도 견줄 데가 없습니다”

인생 3막에 대한 기대감에 들뜬 조 부회장은 “큰 허물없이 오랜 공직을 마무리하게 된 것은 그동안 많은 도움과 지원을 아끼지 않은 공직사회 선후배들 덕분”이라며 “광주시와 광산업진흥회가 잘돼야 지역사회가 발전한다는 신념으로 상전벽해와 같은 변화를 창출했다”고 자부했다.

그는 광산업의 경우 국비 지원에 대한 법적 근거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 주인의식으로 무장한 진흥원 직원들이 똘똘 뭉쳐 기적과 같은 성과를 만들어냈다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조 부회장 등의 끈질긴 노력 끝에 광산업은 2018년 광융합산업 지원에 관한 법률 제정을 통해 국책사업의 틀을 유지할 수 있게 됐다. 한국광산업진흥회 직원들도 일치단결해 광융합산업전담기관으로 지정되는 성과를 거뒀다.

온화한 인품의 그는 광주시청에 근무하는 동안 광주 위생매립장과 상무소각장, 동곡동 음식물자원화시설, 무등산 중심사지구 환경 복원 사업 등 굵직한 현안을 도맡아 해결하는 ‘집단 민원 해결사’로 명성이 자자했다.

“혐오시설 유치를 둘러싼 집단 민원을 해결하려면 반대 주민들과 동고동락을 해야만 했습니다. 1998년 폐기물관리 과장 때 양과동 광역위생매립장 조성을 강력히 반대하는 주민들과 대화를 통해 사업을 무난히 진행하고 해당 주민들로부터 감사패를 받았을 때는 울컥하기도 했습니다”.

광주시청 공보관, 환경녹지국장, 자치행정국장 등에 이어 기획조정실장으로 승진해 근무하면서 그가 2010년 공직사회에 남긴 일화 한 토막.

시청 광장에 설치된 이탈리아 출신 건축가 겸 디자이너의 설치미술 작품을 계절에 맞게 보수·전시하려면 분기별로 수천만원의 예산이 추가로 필요했다.

사계절 변화에 따라 형형색색 고가의 ‘천갈이’가 3~4개월마다 뒤따라야 했다. 1995년 출범한 광주비엔날레 참여작가의 희소성이 높은 비구상 작품인 탓에 이미 수억원의 혈세가 투입된 상황이었다.

당시 기획조정실장의 중책을 맡던 그가 실무진에게 시의적절한 아이디어를 냈다.

“예산이 부담된다면 동대문시장 포목점에 가서 괜찮은 천을 떠오면 어떻습니까. 작가의 의도와 예술성만 충분히 살리면 될 것 아닙니까”

실용성을 중시하는 그의 제안에 따라 매번 3000~4000만원이 들어가던 천갈이 작업은 1000만원도 안되는 적은 금액에 차질없이 이뤄졌다.

10여 년이 흐른 지금까지 적잖은 혈세를 절약한 해당 설치미술 작품은 지금도 변함없이 시청광장에서 외부 방문객들을 맞고 있다.

항상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조 부회장이 이끄는 한국광산업진흥회 역시 해외 바이어 관리 직영체제를 과감히 도입하고 ‘365 비대면 종합상황실’을 구축하는 고객 만족 경영의 선도기관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는 광융합 분야 전문인력 양성을 위한 ‘광융합지원센터’ 건립을 마무리하지 못하고 떠나는 게 못내 아쉽다고 토로했다.

“언론인들의 도움도 컸습니다. 10여 년 전 평소 친분이 두터운 중앙지 출입기자가 ‘시민들을 위해 유익한 서류에만 결재를 하시라’는 충언과 함께 선물해준 몽블랑 만년필은 지금도 품에 간직하고 다닙니다”

조 부회장은 “공직자로 평생을 살아온 제 삶은 누구보다 영광스런 시간이었다”며 “어려운 여건에도 성과를 남기고 명예롭게 떠날 수 있도록 도와주신 박광태 전 광주시장 이하 모든 분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광주=장선욱 기자 sw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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