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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오늘] “바쁘다 바빠”...워라밸 없는 조선 왕의 여름휴가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이다.” -E.H. 카(Edward Hallett Carr)

삽화 = 이유민 인턴기자

전국적인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본격적인 휴가철을 맞아 공항은 피서를 떠나는 여행객들로 북적인다. 올해 여름 휴가철 인천국제공항 이용객 수는 작년보다 700% 넘게 증가할 전망이다. 지난 주말 김포공항 국내선을 이용한 여행객은 25만 8천여 명으로 집계됐다.

전·현직 대통령들의 여름휴가 소식들도 화제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일부터 5일까지 취임 후 첫 여름휴가를 보냈다. 역대 대통령이 여름 휴가지로 즐겨 찾았던 경남 거제로 떠날 것이라는 추측이 많았으나 윤 대통령은 서울 자택에 머무르기로 결정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최근 SNS를 통해 여름휴가 소식을 전했다.

조선의 최고 권력자인 왕의 여름휴가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에는 대비의 생일을 맞아 열었던 여름철 잔치에 대한 기록이 있다.

“궁궐 뜰에서 잔치하느라고 천막을 설치하여 비에 대비했는데, 밤낮으로 일을 독촉하고 공력도 적지 않았으며, 잔치 뒤엔 곧 헐었다. 잔치에 쓸 물건을 모든 도에서 독촉하여 들이니, 모두가 두려워하여 분주히 진상했다… 마침 한더위라 큰 얼음 쟁반을 설치하되 구리 놋으로 만들었는데 무게가 각각 천 근이며, 상으로 내리는 물건도 이루 셀 수 없었거니와…”.
-「연산군일기」 연산 10년 6월 25일

어마어마한 양의 얼음을 사용해 천 근짜리 얼음 쟁반을 만들어 잔치를 벌였다는 내용이다. 다른 기록에 따르면 연산군은 뱀 우리 위에 대나무 틀을 놓고 그 위에 앉아서 더위를 식혔다고 한다. 냉혈 파충류인 뱀과 대나무의 냉기를 이용한 다소 엽기적인 피서법이었다.

이 기록만 보면 조선시대 왕들은 사치스러운 방식으로 더위를 피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는 조선의 대표 폭군이었던 연산군에 한정된 이야기다.

조선 왕의 여름휴가는 의외로 소박했다. 사실상 휴가가 없었다고 해도 무방하다. 병 치료를 위해 온천에 가는 경우를 제외하면 장기간 궁궐을 벗어나는 일은 드물었다.

왕은 국가의 제사·의식을 관장하고 국정과 관련된 중대 사안을 신료들과 논의해야 했다. 중요한 판결, 외교 문제도 해결해야 했기 때문에 사시사철 바쁜 일상을 보냈다. 왕이 궁 밖으로 행차하면 수많은 군사와 신하들이 동행해야 했는데, 규모가 큰 만큼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경회루 전경. 국민일보DB

궁궐 밖으로 피서할 수 없었던 왕은 경복궁 경회루와 창덕궁 후원 등에서 무더위를 피하곤 했다. 시원한 얼음물에 담가 뒀던 수박이나 참외를 먹기도 했다. 태종실록에 따르면 “임금이 상왕전에 나갔으니 대비를 문병하기 위해서였다. 드디어 경회루에 가서 더위를 피하고 해가 기울어 환궁했다”고 기록돼 있다. 단종실록에는 “피서할 별실을 광연루(창덕궁 후원의 누각) 옛터에 세웠다”는 기록이 있다.

경복궁 안에 위치한 경회루는 연못으로 둘러싸여 있고 바람이 잘 통하기 때문에 피서에 안성맞춤이었다. 나무 아래 드리워진 그늘과 흐르는 물이 있는 창덕궁 후원 역시 왕이 더위를 피하는 장소 중 하나였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나라를 보살펴야 했던 왕의 ‘여름맞이 홈캉스’를 엿볼 수 있다.

배규빈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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