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 방향 바뀐 재생에너지, ‘속도전’에서 ‘합리성’으로 선회

<7>재생에너지, 새정부 방향보니


윤석열정부의 에너지 정책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실용주의’다. 정부가 지난달 발표한 ‘새정부 에너지 정책 방향’은 공급 측면에서는 원전을 중심으로 하는 실현 가능하고 합리적인 에너지 믹스(발전원 구성 비율)를, 수요 측면에서는 시장원리에 기반한 에너지 수요 효율화를 강조하고 있다.

전 정부와 가장 차별화될 지점 중 하나로는 재생에너지 부문이 꼽힌다. 문재인정부는 원자력발전 비중을 축소하고 재생에너지를 확대하는 데 방점을 찍었다. ‘재생에너지 확대’라는 에너지 보급 수단이 에너지 정책의 목적이 됐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반면 윤석열정부는 특정 에너지원의 과도한 속도전은 지양하고 합리성에 기반해 에너지 믹스를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이에 따라 전 정부가 설정했던 2030년 재생에너지 비중 목표치도 수정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정부는 지난해 발표한 ’2030 NDC(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 달성을 전제로 한 탄소중립 시나리오’에서 재생에너지 30.2%, 원전 23.9%, 석탄 21.8%, 액화천연가스(LNG) 19.5% 순으로 비중과 우선순위를 정했었다.

2030년 신재생 에너지 새로운 목표치는


8일 산업통상자원부 등에 따르면 정부는 올해 4분기 발표될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수정한 에너지 믹스 내용을 담을 예정이다. 원전과 화력발전, 재생에너지 비중 등을 확정·공개하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이미 2030년까지 원전 비중을 전 정부가 제시했던 23.9%에서 30% 이상으로 확대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원전으로 추가 전력이 확보되는 만큼 전 정부가 목표로 한 재생에너지 비중(30.2%)이 줄어드는 것은 불가피하다. 에너지 업계에서는 재생에너지 비율이 20~25% 사이에서 결정될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는 재생에너지 보급 여건을 고려해 재생에너지 보급 목표를 합리적으로 재정립하겠다는 뜻을 여러 차례 밝혀왔다. 재생에너지 보급률 확대에 급급하기보다는 간헐성, 입지·수용성 문제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속도 조절’에 나서겠다는 의미로 읽힌다.

다만 이 방향성이 정부가 전 세계적인 재생에너지 전환 흐름을 아예 외면하고 독자적 방향성을 가겠다는 의미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일단 재생에너지가 탄소중립을 위한 주요 이행 수단이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기 때문이다. RE100 도입과 탄소국경세 등 글로벌 탄소 규제가 강화되는 상황에서 재생에너지 발전량을 지나치게 낮게 가져가면 수출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실제 정부도 신재생에너지 보급을 지속적으로 확대해나갈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산업부는 지난달 말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재생에너지가 원전과 함께 탄소중립 실현, 에너지 안보 등을 위한 중요한 에너지원이라고 인식하고 있다. 합리적이고 실현 가능한 수준에서 보급을 지속 추진해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렇더라도 갈 길은 여전히 멀다. 국제 에너지 연구기관인 엠버(EMBER)의 ‘국제 전력 리뷰 2022’에 따르면 한국의 태양광·풍력 발전 비중은 2021년 기준 4.7%로 세계 평균(10.0%)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재생에너지 실현 가능성·주민 수용성 우선순위


재생에너지를 에너지 정책의 핵심 요소로는 두지만 ‘현실성·합리성’을 우선하겠다는 게 정부 방향성이다. 전 정부가 재생에너지 보급률을 빠르게 끌어올리는 ‘결과’(보급률)에만 초점을 둔 것과 달리 현실적인 어려움을 신중히 고려하겠다는 것이다.

가장 먼저 재생에너지 전력계통의 유연성을 확보하는 게 주요 과제가 될 전망이다. 재생에너지의 단점은 불확실성과 변동성이 높다는 점이다. 다른 에너지원에 비해 공급량을 예측하기 어렵다. 또 간헐적인 출력 특성 때문에 시간대에 따라 생산하는 전력량도 들쭉날쭉하다. 대규모 재생에너지를 안정적으로 활용하려면 이 문제부터 해결할 필요가 있다.

구체적으로는 계통 연결과 계통 운영 문제를 해결해야만 한다.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 발전원은 주로 수도권 외 지역에 입지해 있다. 이를 전력 소비 비중이 높은 수도권으로 안정적으로 옮겨 올 공급망이 현재로서는 부족한 실정이다. 운영 측면에서는 일정 시간대에 따라 출력이 서로 다른 점을 감안한 ‘운용의 묘’가 필요하다. 정부 관계자는 “이제 신재생에너지 출력량이 많아져서, 계통 문제를 고려하지 않은 채로 무작정 확대 추진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주민 수용성’도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주민 수용성이란 지역 주민들이 재생에너지 발전소가 들어서는 것을 얼마나 수용할 수 있는 지를 의미한다. 사실 한국은 좁은 국 토면적, 높은 인구밀도 등 특성 때문에 재생에너지를 무작정 확대하기가 적합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이런 상황에서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 시설을 설치할 때마다 지역 주민과 마찰까지 빚는다. 이 문제 해결을 위해 정부는 시설 인·허가 단계에서 주민 의견을 수용할 수 있는 일종의 협의체를 만들도록 하는 등 사업자에게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방안을 고심 중이다.

또 정부는 재생에너지 보급과 연계한 산업 육성에도 관심을 기울일 계획이다. 전 정부 때는 ‘선 보급, 후 산업 육성’에 강조점을 두다 보니 보급률 확대 과정에서 태양광 내수시장이 중국산 제품에 잠식됐다는 비판이 제기됐었다. 정부 관계자는 “재생에너지 비중을 높이면서 동시에 재생에너지 관련 국내 제조업체들도 함께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집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신재희 기자 jsh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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