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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국애 원장의 미용 에세이] 가정은 우리 삶의 분장실


오페라 제작팀들과 종종 분장실에서 지내는 기회가 있었다. 무대 뒤 분장실은 언제나 주연 조연 게스트들이 마지막 리허설을 위해 한눈팔 시간이 없이 바쁘다. 각종 장신구 의상 여러 모양의 가발들이 널려 있는 분장실은 우리 삶의 구석구석과 비슷한 것 같다.

공연을 몇 시간 앞두고 하나의 완성된 주연 배우와 조연 배우를 성공적으로 만들어 내는 작업은 쉽지 않다. 연출가가 배우들을 점검하고 섬세하게 점검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나는 가끔 “이는 곧 우리 가정과 사회의 축소판”이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무대 뒤에서는 맡은 배역이 높은 신분임을 과시하여 목을 뻣뻣이 세우는 사람도 없고 또 천하고 낮은 신분이라고 우울하거나 풀이 죽은 사람도 없다. 모두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자기 역할에 사명감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고 있다.

드디어 탄생한 에스더 왕비!
공연 시작 한 두 시간 전 극히 평범하고 왜소하던 한 여인이 왕비로 탈바꿈된다. 그 모습을 보면 누구라도 미용인의 재능과 예술적 가치를 과소평가할 수 없을 것이다.

구약성서 ‘에스더’에 기록된 대로 포로의 몸이던 에스더가 하나님의 은혜와 섭리로 빛나는 왕관을 쓴다. 화사하고 순결한 눈빛, 홍조 띤 잔잔한 두 뺨에 석류 알처럼 촉촉한 입술과 상아조각 같은 치아, 우아하고 황홀한 의상 등이 성서에 은유적으로 묘사되었다. 아무도 기억하지 않던 천한 신분이던 에스더는 권위와 덕망이 넘치는 왕비의 모습으로 재탄생된다.

이뿐이랴! 잠시 전까지 남방 차림의 평범했던 한 남성이 왕의 권위를 갖춘 근엄한 모습으로 탈바꿈된다. 그의 미소와 표정 주름은 연륜을 만들고 예리한 통찰력을 지닌 눈으로, 건강을 상징하는 홍조 띤 얼굴빛으로 바뀐다. 조각같이 우뚝 선 콧날, 정열이 담긴 두툼한 입술에 빛나는 왕관을 쓴다. 목의 금 사슬과 인장 반지를 착용한 왕의 모습은 왕후 에스더를 더욱 빛나게 한다.

무대 앞의 왕실 뜨락에 왕비 에스더가 선 것을 보며 그 아름다움에 감탄하여 왕이 금 홀을 내밀 때 관객의 우레 같은 박수가 터져 나온다. 에스더는 홀로 서 있어도 왕비로서 무대 전체를 꽉 채운다. 왕후의 권위는 객석의 모든 관객이 손에 땀을 쥐고 그의 연기에 심취할 수 있게 한다. 그녀의 모습 어느 한 부분도 소홀함이 없는 완벽한 창조적 예술성이 뒷받침하였기 때문이다.

아침마다 광야 같은 세상 무대를 향해 나갈 남편과 자녀들을 빈틈없이 가꾸어 내보내야만 하는 어머니들은 모두 미용인이며 분장사라고 할 수 있다. 부모님들의 정열과 성실의 자세 여하에 따라 성공과 실패가 결정되는 곳이 우리들의 가정이다. 때론 잔소리로 눈물의 호소로 자녀들을 권고한다. 이곳이 바로 우리 삶의 분장실, 가정이다.

◇김국애 원장은 서울 압구정 헤어포엠 대표로 국제미용기구(BCW) 명예회장이다. 스위스 국제기능올림픽 한국대표(1968), 세계 미스유니버스 대회 미용 담당(1980), 미스월드유니버시티 심사위원을 지냈으며 문예지 ‘창조문예’(2009) ‘인간과 문학’(2018)을 통해 수필가, 시인으로 등단했다. 한국기독교문인협회, 한국문인협회 회원이다.

전병선 미션영상부장 junb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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