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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수 둔 FBI, 트럼프 압색 영장에 ‘방첩’ 혐의 적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에 대한 연방수사국(FBI) 강제수사는 방첩법(Espionage Act) 위반 혐의 등을 전제로 진행된 것으로 나타났다. 단순 기밀문건 반출 수준을 뛰어넘는 것이어서 재판 결과에 따라 재선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 수사는 여야 지지자들을 결집하며 정치권 핵으로 떠올랐다.

미 플로리다주 연방법원은 지난 12일(현지시간) 플로리다주 마러라고 리조트 내 트럼프 전 대통령 자택 등에 대해 FBI가 집행한 압수수색 영장을 공개했다. 이번 영장 공개는 수사 정당성을 놓고 법무부와 트럼프 전 대통령이 공개 설전을 펼치는 과정에서 양측 모두가 공개를 요청해 진행됐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지난 8일 압수수색을 ‘정치 수사’라고 비난하자 법무부가 법원에 공개를 청구했고, 트럼프 측이 동의해 공개됐다.

영장에 적시된 범죄 혐의는 섹션 ‘793’ ‘2071’ ‘1519’ 3가지다. 섹션 793은 방첩법 위반 행위와 관련한 것으로 ‘국방 정보 수집, 전송, 손실’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미국에 피해를 주거나 외국의 이익을 위해 사용될 수 있는 국방정보를 수집하거나 전송하는 것은 물론 의도적으로 보유했을 때도 혐의가 적용된다. 최대 징역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할 수 있다.

FBI는 공무원이 기밀문서나 자료를 무단 삭제하거나 보관했을 때 일반적으로 적용하는 혐의인 ‘섹션 1924’ 대신 처벌 강도가 센 ‘2071’과 ‘1519’를 적용했다. 섹션 2071은 “기밀 문건의 고의·불법적인 은닉, 제거, 절단, 말소, 파괴나 이에 대한 시도” 행위를 다루고 있다. 섹션 1519는 사법적 조사 등을 방해하거나 영향을 줄 의도로 문건을 변경, 파괴, 절단, 은폐, 위조한 혐의를 다루고 있다.


섹션 2071 혐의에 따른 유죄를 받으면 공무원 직위가 박탈되고, 미국에서 어떤 공직도 맡을 수 없게 된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2024년 대선 출마가 불가능할 수 있다는 의미다. 섹션 1519 혐의도 최대 징역 20년 형까지 받을 수 있는 중범죄다.

FBI는 이런 혐의에 따라 비밀 표시가 있거나 ‘국방 정보 또는 비밀 자료 전송’과 관련한 모든 문서 또는 기록을 압수하겠다고 법원에 요청했다. 또 정부 및 대통령 기록 또는 비밀 표시가 있는 모든 문서의 변경, 파괴, 은폐 증거를 확보하겠다고 설명했다.

법원이 이에 대한 영장을 발부한 것은 FBI의 문제 제기가 상당 부분 타당하다고 인정한 것이어서 파장이 크다. 스티브 블라덱 텍사스대 법학 교수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기밀) 문서를 단순히 보유하는 것 이상의 일을 했다고 믿을 만한 이유가 있음을 시사한다”고 말했다.

FBI가 실제 국방정보를 다룬 문건을 마러라고 자택에서 압수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법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FBI는 1급 비밀(Top Secret) 문건 4개, 2급 비밀(Secret) 및 3급 비밀(Confidential) 문건 각 3개, 민감한 특수정보(SCI) 문건 1개 등 모두 11개의 기밀 문건을 확보했다. 또 사진첩과 직접 수기한 메모, 트럼프 전 대통령의 측근인 로저 스톤에 대한 사면 관련 문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에 대한 문서 등 33개 품목 약 20상자 분량의 자료를 확보했다. 이런 비밀 문건은 특정 요건을 갖춘 정부 시설(SCIF)에서만 열람이 가능하다.

정치전문매체 더힐은 “수색 과정에서 핵무기 관련 정보가 포함된 문건을 찾으려 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FBI가 이를 확보했는지는 불분명하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FBI의 압수수색은 트럼프 전 대통령의 거짓말을 입증하는 자료이기도 하다. 뉴욕타임스(NYT)는 이 사안에 대해 잘 아는 4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트럼프 전 대통령 변호인이 두 달여 전 기밀 자료를 모두 반납했음을 확인하는 문서에 서명했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퇴임 후 백악관에서 무단 반출한 자료 15상자 분량을 지난 1월 반납했다. 법무부는 그러나 트럼프 전 대통령이 기밀 자료를 더 보유하고 있다고 보고 조사를 진행해 왔다. 이 과정에서 법무부 국가안보부 방첩 담당 최고위 관료인 제이 브랫이 지난 6월 마러라고를 찾아 창고에 보관 중이던 추가 자료를 확보했고, 트럼프 전 대통령의 변호인 중 한 명이 당시 “기밀로 표시된 모든 자료를 반납했다”는 확인서에 서명했다.

FBI 수사는 정치권 핵으로 부상하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자신의 SNS ‘트루스소셜’에서 “모든 것은 비밀문서에서 해제됐고, 압수수색이 필요치 않았다. 권모술수”라고 비난했다. 퇴임 전 기밀 해제한 문건이어서 불법반출이 아니라는 논리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번 수사에 대해 ‘정치적 박해’ 프레임을 짜고 지지층 결집을 노리고 있다.


실제 트루스소셜에는 “무기를 들고 반격하지 않는 한 미국은 공산주의 국가가 될 것” “우리는 전쟁 중” 등 지지자들의 과격한 선동 글이 작성됐다. 극우 단체 프라우드 보이스 텔레그램 채널에도 “내전이 임박했다”는 글이 올라왔다. 트위터에도 압수수색 직후 내전을 언급하는 글이 하루 만에 10배 증가했다.

정파적 갈등도 확인됐다. 유거브 여론조사에서는 미국인 62%가 트럼프 전 대통령의 기밀문서 보유에 대해 문제라고 답했다. 민주당 지지자 76%가 이에 동의했지만, 공화당 지지자 중에서는 12%만 이를 인정했다. 모닝컨설트 여론조사에서 민주당 지지 유권자 81%는 “FBI가 트럼프 전 대통령이 범죄를 저질렀다는 증거를 기반으로 압수수색을 진행했다”고 답했다. 하지만 공화당 지지 유권자는 16%만 이에 동의했다.

워싱턴=전웅빈 특파원 im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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