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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100’ 생존·경제 문제인데… “한국에 재생에너지가 없다”

[리셋! 에너지 안보] <8>산업계서 바라보는 재생에너지


한국의 기업들은 재생에너지 도입을 선택이 아닌 필수로 본다. 기업들에 재생에너지는 더 이상 환경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새로운 무역장벽으로 떠오른 것은 물론 생존을 좌우하는 사안으로 확산한 지 오래다. 글로벌 신용평가기관 및 투자기관은 기업에서 기후변화 대응에 어느 정도 노력하는지 평가할 때 ‘RE100’(재생에너지 100% 사용) 등을 주요 기준으로 삼고 있다. 기준을 맞추지 못하면 투자를 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다국적 기업들은 협력사에 RE100 참여를 적극적으로 요구할 정도다.

기업들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해외 사업장에서 차츰 RE100을 달성하는 중이다. 하지만 한국 내 사업장이 걸림돌이다. 한국에선 기업들이 필요로 하는 만큼의 재생에너지가 충분하지 않다. 정부가 ‘재생에너지 전환’ ‘원전 확대’를 두고 고민하는 사이 국내와 국외 재생에너지 전환율 격차는 더 벌어졌다.

새로운 무역장벽 RE100
2014년 13곳에 불과하던 RE100 가입 기업은 지난달 기준 376곳으로 늘었다. 한국 기업은 2020년 6곳에서 2년 만에 21곳으로 증가했다. 미국 96곳, 일본 72곳, 영국 48곳에 이어 네 번째로 많다. SK그룹을 시작으로 미래에셋증권, KB금융그룹, LG에너지솔루션 등이 동참했고 올해 들어 현대자동차, 기아, 현대모비스, KT, LG이노텍 등이 합류했다. 삼성전자도 올해 말 RE100 가입을 고려하고 있다.

기업에 RE100 참여는 생산비용 상승으로 직결한다. 다만, 살아남으려면 피할 수 없는 국제적 흐름이기도 하다. 재계 관계자는 “해외에 있는 고객사들이 RE100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긴다. RE100에 제대로 대응하지 않으면, 수출 산업의 경쟁력에 상당한 타격을 입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KDI공공정책대학원과 에너지경제연구원은 한국 기업이 재생에너지 전환 흐름에 동참하지 않았을 때 자동차, 반도체, 디스플레이 패널 산업의 수출액이 각각 15%, 31%, 40% 감소한다고 추산했다. 실제 코트라가 글로벌 제조기업 61곳의 RE100 추진 내용을 분석한 결과, 30곳은 기존의 협력업체를 대상으로 규제성 조치를 마련하기도 했다.

단적인 사례로 BMW그룹은 삼성SDI에 ‘젠5’ 배터리를 제조할 때 친환경 전력만 사용하도록 계약상 의무를 부여했다. 세계 최대 반도체 위탁생산 업체인 대만 TSMC는 협력업체에 ‘2030년까지 에너지 절약 30% 달성’ 등의 환경 관련 의무사항을 적용한다. 기준에 못 미치면 구매 평가에서 불이익을 준다. 산업계 관계자는 “RE100이 이미 새로운 무역장벽이 됐다. 아직 가입하지 않은 기업도 앞으로 동참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


그런데 재생에너지가 없다
RE100에 가입한 기업을 포함해 한국 기업들의 재생에너지 사용량은 증가 추세다. 지난해 총 1.4테라와트시(TWh)에서 올해 4.7TWh로 증가했다. 다만, 이 숫자는 해외 사업장과 비교하면 미미한 수준이다.

최근 삼성전자에서 발표한 ‘2022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삼성전자의 재생에너지 사용량은 5278기가와트시(GWh)였다. 2020년(4030GWh) 대비 31%나 늘었다. 이 가운데 한국에서 확보했다고 밝힌 재생에너지 규모는 약 500GWh에 불과하다.


삼성전자의 국내외 사업장에서 재생에너지 전환율은 16.3%지만, 한국으로만 한정하면 2.7%(추정치)로 떨어진다. 재생에너지 전환율의 평균값을 한국 사업장이 다 깎아 먹고 있는 셈이다. 삼성전자는 이미 2020년 미국·유럽·중국 사업장의 사용 전력을 100% 재생에너지로 전환했다. 중남미와 서남아 지역은 2025년이면 100% 전환될 것으로 보인다. 멕시코의 경우 2020년 4.3%였던 재생에너지 전환율을 지난해 71%까지 끌어 올렸다.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2라인 전경. 삼성전자 제공

삼성전자의 해외와 국내 사업장에서 재생에너지 전환율이 큰 차이를 보이는 배경에는 반도체 생산기지가 있다. 핵심 생산기자가 한국에 밀집해 있어 전력 사용량이 다른 해외 사업장보다 많은 것이다.

그러나 근본적 원인은 기업들이 필요로 하는 만큼의 재생에너지가 한국에 없다는 데 있다. 삼성전자를 비롯해 한국의 전력 사용량 상위 30개 기업에서 지난해 사용한 산업용 전력은 102.92TWh였다. 한국의 전체 재생에너지 발전량이 43.09TWh였으니, 이들 기업이 RE100을 달성하려면 태양광·풍력 발전설비를 배 이상 늘려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기업들이 RE100을 달성하고 싶어도 “재생에너지가 없다”고 호소하는 이유다.

업계 관계자는 “한국 기업의 해외 사업장에서 RE100 달성률이 상대적으로 높은 건 그만큼 해외의 재생에너지 발전 비율이 높기 때문이다. 한국에선 재생에너지 효율도 잘 안 나온다”고 말했다.


RE100 기업만 해선 안 된다
기업 재생에너지 이니셔티브(CoREi)에서 올해 4월 26일부터 6월 15일까지 61개 기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재생 에너지 조달 장애물 가운데 개선이 가장 시급한 것은 ‘정부의 재정·제도적 지원 확대’(38%)였다. 재생에너지 가격 현실화(24%), 재생에너지 공급 확대(21%)보다 높았다.


또한 설문 대상 기업 중 96%는 재생에너지 조달 제도가 비효율적이라고 지적했다. 재생에너지 조달에 있어 기업이 가장 중요하게 보는 고려사항은 ‘가격’인데, 너무 비싸다는 게 공통 의견이었다. CoREi는 “충분한 재생에너지가 합리적인 가격에 공급되는 데 있어 정부의 역할이 중요함을 시사한다”고 분석했다. 산업계 관계자는 “해외 주요국과 비교해 한국의 재생에너지 발전 비용이 상대적으로 높다. RE100 이행에 따른 높은 비용 부담 완화를 위해선 세제 지원 등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황인호 기자 inhovator@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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