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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윤상의 세상만사] 반지하 옥탑방 고시원


서울 길동에 있던 다가구주택 반지하가 대학졸업 후 첫 번째 보금자리였다. 보증금 200만원에 월세가 10만원이었던 것 같다. 가진 돈이 없으니 선택할 여지가 없었다. 건축된 지 몇 년 되지 않은 건물이어서 비교적 깨끗하기는 했으나, 아무리 쓸고 닦아도 음습하고 축축해서 조금만 소홀히 해도 쉽게 곰팡이가 피었다. 비나 눈이 오는 날에는 더욱 눅눅해진 방 공기에 젖어 기분까지 우울해지기도 했다. 큰 비가 와도 침수되는 일이 없었다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으나, 20대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항상 골골댔다.

드디어 반지하에서 벗어날 기회가 왔다. 결혼을 하게 된 것이다. 다행히 교사인 아내가 모아 놓은 돈 2000만원이 있었다. 그러나 그 돈으로 얻을 수 있는 전세는 많지 않았다. 반지하 경험에 대한 반작용과 하늘을 마음껏 볼 수 있다는 낭만적인 이유로 옥탑방을 얻었다. 옥탑방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옥탑방은 전혀 낭만적이지 않았다. 선풍기로 여름을 나기에는 너무 더웠고, 겨울에는 너무 추워서 옷을 몇 겹으로 껴서 입어야 했다. 게다가 보일러가 얼어 파열되기 일쑤였다.

임신까지 한 아내가 견디기에는 너무 가혹한 환경이어서 결국, 마을버스 종점 옆에 있던 서울 신림동 산꼭대기 10평짜리 다가구주택으로 이사했다. 장인·장모님이 ‘행여나 이번에는 조금 나은 곳으로 이사했나’라는 기대로 오셨지만, 하룻밤도 주무시지 못하시고 당일 내려가셨다. 내려가기 전에 딸이 안쓰러워 많이 우시기는 하셨지만, 그나마 나아진 환경이었다.

첫째 아이가 태어나면서부터는 따로 고시원을 얻어 낮에는 고시원에서 공부하고 밤에 집으로 돌아오는 생활을 해야 했다. 고시원은 한 평 남짓했다. 고시원에서는 누구를 이웃으로 맞느냐가 중요하다. 방음이 전혀 되지 않고 공동으로 취사를 해야 해서 무질서한 이웃이 들어오면 생활 리듬이 그대로 깨지기 때문이다. 그렇게 수년 동안 고시원 생활을 했다. 가난했던 10여 년을 그렇게 반지하, 옥탑, 고시원에서 보냈음에도 운 좋게 살아남았다.

기록적인 폭우가 내리던 지난 8월 8일, 서울 신림동 반지하에서 40대 여동생과 발달장애를 가진 언니, 조카 등 일가족 3명 불어난 물에 갇혀 참변을 당했다. 서울 동작구 반지하에서 살던 또 다른 여성도 주택 침수로 생을 달리했다. 이 여성은 기초생활수급자로 등록돼있었는데, 고령의 어머니, 여동생과 함께 살았다고 한다. 재난은 사회적 약자를 가정 먼저 덮친다는 사실을 이번 폭우가 다시 한번 증명했다.

2010년 9월 태풍 곤파스가 수도권을 덮쳤을 때도 6명이 사망하고 1300명이 집을 잃었다. 특히 반지하 주택의 피해가 컸다. 당시 정부는 상습침수구역에 주거용 반지하 주택을 짓지 못하도록 건축법을 고쳤다. 그러자 반지하를 대신할 주거지로 고시원이 많이 늘었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반지하 주택은 4만 호 이상 건설됐다. 관악구가 2만 가구로 가장 많고, 중랑구, 광진구, 강북구, 은평구, 송파구, 강동구도 1만 가구가 넘는다. 가난한 세입자들이 많은 지역이다.

이번에도 정부와 서울시는 단세포적인 ‘사후 약방문’식 대책을 내놨다. 지하·반지하 주택을 10년에서 20년 안에 차례로 없애겠다고. “반지하 없애면 옥탑방으로 가겠죠” 이 대책에 대해 반지하 거주자는 이렇게 시큰둥하게 반응했다.

“솔직히 비 좀 왔으면 좋겠다, 사진 잘 나오게” 국민을 대표하여 정책을 결정하는 집권 여당의 국회의원이라는 사람이 이번 재난 현장에 자원봉사를 가서 한 말이다.

이런 사람이 국민을 대표하고 정책을 결정하는 한, 2010년 태풍 곤파스 이후 이번 폭우까지 12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사회적 약자의 지위에 별다른 변화가 없었던 것처럼 앞으로 닥칠 다음 재난 때까지도 사회적 약자의 목숨은 그저 운에 맡기는 수밖에 없어 보인다.

*외부 필자의 기고 및 칼럼은 국민일보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엄윤상(법무법인 드림)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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