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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왕처럼 “반성” 말한 일왕… 총리는 야스쿠니 공물료 납부

나루히토 일왕, 패전 77주기 추도식
“깊은 반성, 전쟁 참화 반복 않길”
기시다 총리, 야스쿠니 공물료 납부

나루히토(가운데) 일왕 내외가 15일 수도 도쿄 치요다구 무도관에서 일본 정부 주최로 열린 패전일(일본 명칭 종전일) 77주년 기념 전몰자 추도식에서 기시다 후미오 총리를 바라보고 있다. EPA연합뉴스

일본의 패전 77주기 추도식에서 나루히토 일왕은 선왕처럼 “깊은 반성”을 말했지만,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제2차 세계대전의 A급 전범을 합사한 야스쿠니신사로 공물 대금을 냈다.

나루히토 일왕은 15일 수도 도쿄 치요다구 무도관에서 일본 정부 주최로 열린 패전일(일본 명칭 종전일) 77주년 기념 전몰자 추도식에서 “지난 대전에서 둘도 없는 목숨을 잃은 수많은 사람들, 유족들을 생각하며 깊은 슬픔을 새롭게 한다. 종전 이후 77년간 꾸준한 노력으로 오늘날 평화와 번영을 이뤘다. 많은 고난이 가득한 국민의 발걸음을 생각할 때 감회가 새롭다”고 말했다.

이어 “코로나19 확산으로 여러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모두가 한마음으로 힘을 합쳐 극복하고, 행복과 평화를 계속 희구하길 진심으로 바란다”며 ‘깊은 반성’을 말했다.

그는 “전후 오랜 평화로운 세월을 생각하며 과거를 돌아보고 깊은 반성 위에 서서 다시 전쟁의 참화가 반복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전진에 흩어져 전화에 쓰러진 사람들에 대해 온 국민과 함께 진심으로 추도의 뜻을 표하며 세계 평화와 일본의 발전을 기원한다”고 했다.

나루히토 일왕의 ‘깊은 반성’(深い反省)은 선왕 아키히토의 패전일 추도사에서 이어진 표현이다. 아키히토는 일본에서 ‘평화헌법’으로 불리는 헌법 9조 수호를 주장하는 반전주의자다.

일본의 제국주의 시절을 경험했던 그는 침략의 피해를 입은 주변국에 대해 반성의 의사를 에둘러 표하기도 했다. 1990년 방일한 노태우 전 대통령을 만나 한일 과거사를 놓고 이야기하면서 “통석(痛惜)의 염(念)을 금할 길이 없다”고 말했다. 반성을 직접 표현하지 않았지만 ‘몹시 안타깝게 생각한다’는 뜻이었다.

아키히토는 2015년부터 패전일 추도식마다 ‘깊은 반성’을 언급했다. 그의 장남으로 2019년 5월 즉위한 나루히토 일왕도 같은 표현을 사용했다.

나루히토 일왕의 선왕 아키히토(왼쪽)가 재위 시절인 2017년 8월 15일 도쿄 무도관에서 열린 제72주기 패전일 전몰자 추도식에서 단상에 오른 당시 총리 아베 신조를 바라보고 있다. AP뉴시스

하지만 일본 정부의 태도는 달랐다. 기시다 총리는 이날 야스쿠니신사에 ‘자민당 총재’ 명의로 공물의 일종인 다마구시(흰 종이를 매단 물푸레나무가지) 대금을 납부했다. 야스쿠니 신사를 직접 찾진 않았지만 공물대금을 내 참배를 대리했다.

기시다 총리는 이날 추도식에서 “전쟁의 참화를 두 번 다시 되풀이하지 않겠다. 이 결연한 다짐을 앞으로도 관철해 나갈 것”이라며 “다툼이 끊이지 않는 세계에서 우리는 적극적 평화주의의 깃발 아래 국제사회와 힘을 합쳐 세계가 직면한 다양한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나루히토 일왕처럼 ‘반성’이나 침략국으로서의 ‘책임’은 언급하지 않았다.

다카이치 사나에 경제안전보장 담당상, 아키바 겐야 부흥상은 이날 오전 야스쿠니신사를 직접 찾아가 참배했다. 일본 각료의 야스쿠니신사 참배는 2020년부터 3년 연속으로 이뤄졌다.

우리 외교부는 대변인 논평을 내고 “일본의 과거 침략전쟁을 미화하고 전쟁범죄자를 합사한 야스쿠니신사에 일본 정부와 의회의 책임 있는 지도자들이 또다시 공물료를 봉납하거나 참배를 되풀이한 데 대해 깊은 실망과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이어 “우리 정부는 일본의 책임 있는 인사들이 역사를 직시하고, 과거사에 대한 겸허한 성찰과 진정한 반성을 행동으로 보여줄 것을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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