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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서해 피격’ 국정원 첩보문서, 삭제 지시에도 일부 백업

국정원 자체 생산 첩보 보고서
일부 다른 곳에서 ‘발견’
내부서 삭제 위법성 인식했을 가능성
檢, 전 국정원장 비서실장도 압수수색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이 지난 16일 오전 검찰의 압수수색을 마치고 서울 여의도 자택을 나서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2020년 9월 해양수산부 공무원 이대준씨의 서해상 피격과 관련해 국가정보원이 자체 생산했던 첩보 보고서가 수뇌부의 삭제 지시에도 불구하고 내부 컴퓨터에 일부 보존돼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국정원 내부에서 문서 삭제가 추후 문제될 것을 우려해 일종의 ‘백업 조치’를 했던 정황으로 풀이된다. 박지원 전 국정원장은 삭제를 지시한 적이 없다는 입장이지만, 국정원 내에서 그의 지시를 받은 인사로 지목된 A 전 원장 비서실장에 대해서도 법원은 주거지 압수수색영장을 발부했다.

17일 국민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1부(부장검사 이희동)는 16일 박 전 원장의 국정원 생산 첩보 보고서 삭제 지시 행위와 관련해 여러 관계자의 자택 등을 압수수색했다. 첩보 삭제와 관련한 정황이 세밀히 복원되면서 법원의 영장 발부 폭도 넓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지난달 국정원의 박 전 원장 고발을 접수한 이후 다수 참고인을 상대로 당시 국정원 내 첩보 삭제에 얽힌 사실관계를 조사해 왔다.

검찰은 국정원 내부에서 삭제 행위의 위법성을 인식했을 가능성도 주목한다. 앞서 국정원의 자체조사 결과 최상부로부터 첩보 보고서들의 삭제 지시가 하달됐지만, 일부 문건은 다른 PC에 옮겨져 보관돼 있다가 발견됐다고 한다. 국정원의 자체 생산 첩보 중에는 이씨가 자진 월북했다기보다는 단순표류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최근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이 확정된 ‘사초 폐기 사건’ 판례도 수사 과정에서 깊이 검토했다. 이는 최종 결재가 이뤄지지 않은 회의록 초안이라 해도 공문서 성립이 인정되고, 보존돼야 할 공용전자기록에 해당한다는 취지의 판례였다.

국정원 직원들이 만일에 대비해 자료를 다른 곳에 옮겨뒀던 것이 이번 수사의 단초이자 물증이 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검찰은 박 전 원장이 직속 부하를 통해 삭제를 명령했을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박 전 원장은 “비서실장에게 삭제를 지시한 적이 없고, 그런 일이 일체 없다”고 말했다. 검찰 압수수색을 두고는 “삭제했다는 서버는 국정원에 있는데 왜 우리 집을 압수수색하나”라고 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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