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허가 받고도 9년간 못 짓던 풍력단지…랜드마크 됐다

[리셋 에너지 안보] <13> 랜드마크된 재생에너지

30% 근접한 평균 이용률
재생에너지 간헐성 극복
육상풍력보다 소음 문제 적어
지역 곳곳에 ‘풍차’ 등 관광상품화
발전 수익 지역과 나누는 상생 기금도


지난 16일 제주공항에서 해안일주도로를 따라 서쪽으로 차를 한 시간쯤 몰았을까. 도로 오른편 ‘해거름전망대’ 너머 푸른 바다 한가운데에 하얀 바람개비 같은 풍력발전기들이 힘차게 돌아가고 있었다.

제주시 한경면 두모리에서 금등리 일대에 있는 이곳은 국내 최초의 상업용 해상풍력 단지인 ‘탐라해상풍력발전단지’로 한국남동발전이 운영하고 있다. 전체 설비용량은 30MW(메가와트)로 3MW짜리 발전기 10기가 전체 8만1062㎡(약 2만5000평) 면적의 바다에 300m 간격으로 일렬횡대를 이루고 있었다.

육지에서 약 500m~1.2㎞ 떨어진 바다에 설치된 발전기는 자켓(풍력발전 타워를 지지하는 하부 구조물)에서 상부 나셀(날개 회전으로 얻어진 회전력을 전기에너지로 변환하기 위한 장치들이 담긴 중심부)까지 높이가 80m에 이른다. 날개(블레이드) 지름은 91.3m다.

지난 2017년 9월 첫 운전을 시작한 이 풍력발전소에서는 지난 5년간 총 37만8819MWh(메가와트시)의 전력을 생산해냈다. 생산량을 연평균으로 환산하면 약 7만5763.8MWh로 4인 가구 월평균 전력사용량 350kWh(킬로와트시)를 적용하면 21만6468만 가구의 전력사용량에 해당한다. 계통 문제 등으로 실제 전력 판매량은 생산량보다 적지만, 지난해 제주도 전체 가구 수가 30만7529가구임을 고려하면 제주도 전체 가구의 70.4%가 사용할 수 있는 전력을 생산한 셈이다.



넉넉한 생산량의 배경은 풍부한 바람이다. 제주지방기상청에 따르면 이날 오전 제주 지역의 평균 풍속은 초당 3.6m로 비교적 온화한 편이었지만 해상의 발전기는 정비 중인 한두 대를 제외하고는 전부 힘차게 돌아가고 있었다.

탐라해상풍력 종합상황실에 있는 모니터에 찍힌 단지 내 풍속은 초당 8.9m로 제주 시내보다 두 배 이상 빨랐다. 남동발전에 따르면 초속 3m의 바람만 불어도 발전기는 돌 수 있고, 풍속이 초속 13m가 되면 최고 출력을 낼 수 있다.

한국남동발전이 운영하는 탐라해상풍력의 종합상황실 모습. 발전기별 전력 생산량과 현재 풍속 등이 표시돼 있다. 이종선 기자

이곳에 설치된 3MW짜리 풍력발전기는 100% 국내 기술로 만들어졌다. 두산에너빌리티가 산업통상자원부 지원으로 연구·개발(R&D)을 거쳐 개발했다. 국내 기술이다 보니 운영 도중 문제가 생겨도 해외 기술에 의존한 발전시설보다 빠르게 대처할 수 있다는 것이 강점이다.

지난 5년간 탐라해상풍력의 이용률은 지난해를 제외하면 모두 목표 이용률인 28.9%를 넘겼다. 이용률이란 전체 설비용량 대비 실제 발전량을 의미한다. 목표 이용률은 상업 발전의 수익 분기점이기도 하다. 탐라해상풍력단지의 이용률은 기기 고장이 있었던 4차연도(2020년 9월~2021년 9월)를 제외하면 모두 목표이용률을 넘겨 29~32%를 찍었다. 같은 재생에너지인 태양광 발전의 이용률이 10%대 초반에 머무는 것을 고려하면 전력 생산 효율이 상당히 높은 셈이다. 남동발전은 6차연도에 접어드는 올해부터는 목표 이용률을 30% 수준으로 높인다는 계획이다.


지역 주민과의 화합 모델…9년간 못 지었던 과거도

실적보다 이곳이 돋보이는 건 인근 지역과의 성공적 화합 모델을 만들어냈다는 점이다. 실제 발전단지 인근 두모리 일대에는 ‘풍차’ ‘윈드밀’ 등의 상호가 들어간 카페나 풀빌라(수영장을 갖춘 숙박업소)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먼발치에 있는 풍력 발전기가 일종의 포토존이 되면서 지역에 관광 수요를 창출한 것이다. 남동발전 관계자는 “2025년 말까지 발전설비를 현재보다 3배 이상 많은 102MW까지 증설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는데 두모리나 금등리 주민들이 오히려 적극적으로 증설을 요청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물론 처음부터 사업 진행이 순탄했던 건 아니다. 여느 발전 시설과 마찬가지로 이곳 풍력발전단지는 2006년 8월 개발사업 시행을 승인받고도 지역 주민 반대 등으로 2015년 4월에야 착공할 수 있었다. 무려 9년 가까이 인허가를 받고도 착공하지 못했던 것이다. 무공해 발전임에도 인근 해역의 어족 자원 손실과 발전 소음 등에 대한 우려가 가장 큰 반발 거리였다.

이에 정부와 발전사는 착공 때부터 매년 어족 자원에 미치는 영향 등을 해양환경공단 등의 협조를 통해 모니터링하기로 했다. 실제 착공 기간 중 어족 자원이 일부 감소하기도 했지만, 준공 이후부터 달라졌다고 한다. 해저 그물 모양의 자켓이 인공어초와 같은 역할을 하면서 일대 어족 자원이 오히려 풍부해졌다. 실제 기자가 풍력단지를 방문했을 때에도 발전소와 가장 가까운 두모리 방파제에서 낚시하는 사람들을 어렵잖게 볼 수 있었다.

해상풍력발전기가 보이는 두모리 방파제에서 낚시꾼들이 낚시를 하고 있다. 풍력발전단지가 들어선 이후에도 고기들이 어느 정도 잡힌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종선 기자

한 금등리 주민은 “풍력 발전기가 들어서기 전에는 발전 소음에 대한 걱정이 가장 컸는데, 걱정했던 만큼 소음이 거의 없어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해상 풍력발전은 육상 풍력발전보다 바닷바람과 파도 소리 덕에 발전 소음이 덜하다는 점이 강점이다. 남동발전 관계자는 “간혹 연휴 기간에 인근에서 어로 작업을 하던 지역 주민들이 먼저 연락을 줘서 ‘5호기가 이상해’ 하는 식으로 제보를 해주기도 한다”고 말했다.

인근 어민들의 수입 감소 걱정을 잠재우기 위해 연간 수백억원에 이르는 발전 수익 일부를 지역과 공유하는 상생 기금을 마련한 것도 보탬이 됐다. 제주 지역은 해녀의 어로 작업이 활발하지만, 해녀들이 점점 고령화되면서 ‘물질(채취)’에 의존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있다.

탐라해상풍력단지에는 정부 관계자부터 외국 관련 기관의 관계자까지 운영 노하우 등을 견학하기 위한 발걸음이 줄을 잇는다. 지난 5년간 국내외에서 5000여명이 견학을 다녀갔다. 이날도 개발도상국의 기후변화 대응을 돕는 ‘P4G’ 관계자들이 다녀갔다.


아직 먼 해상풍력 강국의 길…지역 친화적 모델 확대 필요

문제는 탐라해상풍력 다음의 성공 모델을 만드는 일이다. 산업부에 따르면 국내 상업용 해상 풍력발전 단지는 아직 이곳과 전남 영광, 서남해(전북 부안·고창)까지 3곳(설비용량 124.5MW)에 불과하다.

정부는 지난해 2030년까지 한국이 ‘해상풍력 5대 강국’으로 우뚝 설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공언해왔다. 이에 따라 제주 지역에서만 추자도와 한림읍, 구좌읍, 서귀포 대정읍 등 인근 해역에 대규모 해상풍력단지 조성이 추진되고 있다. 제주 외에도 울산, 경남 통영, 전남 여수, 충남 보령 등에서 상업용 풍력발전 건설을 추진하고 있는 지역이 많다. 탐라해상풍력과 같은 고정식 외에 부유식(물 위에 떠 있는 형태) 풍력발전 등 다양한 모델이 검토되고 있다.

국내 현재 운전 중인 상업용 해상풍력발전 현황. 산업통상자원부 제공.

하지만 단기간에 우후죽순식으로 해상풍력단지 조성이 추진되면서 곳곳에서 인근 어민이나 지자체와의 갈등이 불거졌다. 한 에너지 전문가는 “재생에너지 보급을 확대한다며 군사 작전을 전개하듯 단시간에 사업을 추진하기보다는 지역 주민의 이해와 동의를 구한 뒤 사업을 추진하는 지역 친화적 방식을 택해야 한다”고 말했다.

제주=이종선 기자 remember@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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