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시사 > 전체기사

[정치+북] 서로 죽일 듯이 미워하는 우리


문재인 전 대통령은 퇴임 후 ‘책 추천가’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그가 소셜미디어에서 소개하는 책은 어김없이 베스트셀러가 된다고 한다. 전직이든 현직이든 대통령이 좋은 책을 열심히 읽고 국민들에게 일독을 권하는 건 좋은 일이다.

‘문재인의 픽’으로 뜬 모든 책들이 훌륭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지난 7월 문 전 대통령이 추천한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는 정말 뛰어난 교양서다. 진화인류학자가 쓴 동물과 인류의 진화에 관한 책이지만, 정치에 관해서도 의미 있는 인사이트를 준다.

제목대로 억세고 사나운 것보다 다정하고 협력을 잘하는 것이 살아남는다는 얘기다. 개와 보노보, 인간을 보면 협력적 의사소통 능력인 친화력을 강화하는 쪽으로 진화한 종이 번성해왔다고 주장한다. 바람직하고 희망적인 이야기다. 하지만 의문점 하나가 자동적으로 튀어 나온다. 저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인간 사회의 갈등과 반목이 갈수록 줄어들어야 하는데 왜 그렇지 않느냐는 질문이다. 특히 정치인과 정치 과몰입자들이 상대 진영을 죽일 듯이 미워하며 맹렬하게 물어뜯고 있는 한국 사회를 보면 책에서 느낀 따뜻함이 금세 식어버린다.

책을 쓴 브라이언 헤어 미국 듀크대 교수는 “우리가 친화력을 지닌 동시에 잔인한 악행을 저지를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닌 종”이어서 그렇다고 설명한다. 우리에게 위협이 되는 무리를 우리와 같은 사람으로 보지 않는 경향이 있고, 이런 취급을 받은 무리도 상대 집단을 인간 이하로 여기게 된다는 것이다. 같은 인간으로 보지 않는 상대에겐 얼마든지 잔인해질 수 있다. 헤어 교수는 “소셜미디어가 우리를 연결해주는 이 현대 사회에서 (특정 상대를 같은 인간으로 보지 않는) 비인간화 경향은 오히려 가파른 속도로 증폭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우리가 매일 여의도와 온라인 세상에서 보는 그대로다.


문 전 대통령은 점잖고 인자해 보여서 지금까지도 대중적 인기가 높다. 하지만 실제 속내는 그런 이미지와 다소 달라서인지 집권 시절 국정 수행에선 좀처럼 친화력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는 페이스북에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를 소개하며 “사회와 국가의 번성도 협력적 의사소통 능력에 달려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성공하고 있을까요?”라고 적었다. 성공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일 테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지만, 남 얘기하는 듯한 ‘유체이탈 화법’으로 느껴졌다. 본인이 대통령이었을 때 협력적 의사소통 능력을 최대한 발휘해야 했었다. 지금 우리 사회가 사생결단식 진영 싸움의 전장이 돼버린 것에 그의 책임이 작지 않다고 본다.

같은 편에게는 친절하고 다정한 사람이 다른 편에겐 잔인해지는 인간 본성의 역설은 어떻게 하면 누그러뜨릴 수 있을까. 헤어 교수는 ‘위협 없는 접촉’을 해법으로 제시했다. 그는 “서로 다른 집단 사람들과 자주 접촉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면 사회적 유대감이 더 많이 형성되며 타인이 지닌 생각에 대한 감수성도 전반적으로 강화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데올로기, 문화, 인종이 다른 사람들과의 교류와 소통은 우리 모두가 같은 집단에 속하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효과적이고 보편적인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미국의 정치 분석가 에즈라 클라인은 ‘우리는 왜 서로를 미워하는가’라는 책에서 다른 해법을 내놨다. 그가 든 사례가 흥미롭다. 나이키 간부였던 에릭 헤이거먼은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된 2016년 11월 대선 결과에 너무나 실망한 나머지 트럼프에 관한 어떤 소식도 듣지 않기로 굳게 결심했다. 시골 농장에 혼자 살면서 뉴스와 소셜미디어를 절대 보지 않고, 정치에 대해 언급하는 친구들과도 결별했다. 커피숍에 갈 때는 녹음해둔 백색소음을 들었고, 상점에 갈 일이 있으면 시사 관련 이야기를 우연히라도 듣지 않으려고 아침 일찍 갔다. 이같이 세상과 단절하는 대신,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다른 일에 집중했다. 노천 광산 꼭대기의 땅을 사서 그곳을 공동체가 즐길 수 있는 장소로 바꾸는 프로젝트에 몰두한 것이다.

이 사람처럼 극단적인 방식으로 정치를 외면하라는 게 클라인의 메시지는 아니다. 클라인은 “우리는 국가 정치에 너무 많은 관심을 쏟고 있다”며 “당신의 정치적 감정과 에너지가 얼마나 전국적인 정치 뉴스와 결부돼 있는지 성찰해 보라. 만약 당신의 미디어 식단이 압도적으로 전국적인 내용에 기울어져 있다면 그것을 되돌리는 방법에 대해 생각해 보라”고 권했다. 중앙 정치에 과도하게 쏠린 감정과 에너지의 일부를 지방 정치나 다른 생산적인 사회 활동으로 분산시킬 것을 제안한 것이다.

물론 ‘다른 편과 자주 접촉하는 일’이나 ‘중앙 정치에 대한 관심을 줄이는 일’ 모두 말만 쉽지 실천하기는 너무나 어렵다. 다만 매일 별 영양가도 없는 정치 이슈들에 격분하며 증오를 발산하는 일상은 각자가 조금씩이라도 진정시킬 필요가 있다.

천지우 기자 mogul@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국민일보 신문구독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