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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국가가 성매매 방조…미군 기지촌 여성에 배상 책임”

기지촌여성인권연대 등 단체 관계자들이 지난 6월2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기지촌 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1950년대 주한미군 주둔지에서 성매매에 종사한 여성들에게 국가가 배상 책임이 있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국가가 성매매를 조장하고 묵인했다는 게 대법원의 판단이다.

대법원 2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29일 이모씨 등 116명이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이씨 등은 1957년부터 1990년대까지 국내 미군기지 인근 기지촌에서 미군을 상대로 성매매를 한 여성들이다. 이들은 ‘미군 위안부’로 불리기도 했다.

1957년 당시 우리 정부 총무처는 성병 관리 문제 등을 이유로 UN군 출입 성매매 업소에서 근무하는 여성들을 미군 위안 시설, 이른바 기지촌을 조성해 성병을 관리했다.

당시 정부는 서울에 10곳, 인천에 12곳, 부산에 2곳을 미군 위안 시설로 지정했다. 같은 해 전염병 예방법 시행령에는 성병 검진을 받아야 할 대상으로 위안부를 명시하기도 하는 등 기지촌 여성들의 성병을 조직적으로 관리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후 관련법은 개정됐지만 1970년대에는 ‘토벌’로 불리는 단속과 ‘컨택’으로 불리는 접촉자 추적조사가 진행되는 등 여전히 성병 검진 대상이 됐다. ‘컨택’은 성병에 걸린 미군이 자신과 성매매를 한 여성을 지목하는 것으로, 해당 여성은 강제 격리조치 됐다.

이들은 정부가 성매매를 조장하고 조직적인 성병 관리 업무를 통해 불법 격리 수용치료를 해 신체적·정신적 손해를 입었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국가가 성매매를 지원하거나 최소한 방조했고, 여성들을 보호하지 않은 의무 위반도 주장했다.

경찰이 성매매 알선업자와 유착했을 뿐 아니라 도망친 여성들을 잡아서 다시 알선업자들에 넘겼다는 취지로 주장했다. 정부가 면세 주류를 제공한 것 역시 성매매를 방조 혹은 지원한 것의 일환이라고 주장했다.

미군이 지목한 여성을 강제격리한 ‘컨택’ 역시 근거 법령도 없는 강제구금이나 마찬가지라며 국가의 불법행위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1심 재판부는 이들의 주장 중 강제격리로 인한 불법행위 주장만 받아들였다. 당시 시행된 전염병 예방법과 시행규칙에는 강제격리 대상자로 성병 환자를 규정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었다. 재판부는 격리 수용된 여성 57명에 대해서만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다만 정부가 기지촌을 설치하고 환경개선정책 등을 펼친 것은 이들에 대한 불법행위라고 보긴 어렵다고 판단했다. 개인의 성매매 종사를 강요하거나 촉진·고양하기 위한 목적은 아니라는 것이다.

1심 재판부는 “국가 권력기관의 국민에 대한 불법 수용 등 가혹 행위는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되는 중대한 인권침해”라며 “정부는 이씨 등 57명에게 각 5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2심은 국가의 배상 책임을 더욱 넓게 인정했다. 2심 재판부는 국가가 성매매 중간매개·방조 역할을 하거나, 성매매를 정당화·조장했다는 주장을 받아들였다.

복지부와 경기도, 경찰, 춘천시가 작성한 공문을 통해 위안부의 성매매를 관리하는 등 기지촌 운영·관리에 국가가 개입한 것이 파악됐다.

2심 재판부는 강제격리 경험이 있는 74명에게는 1인당 700만원씩, 강제격리 경험이 없는 43명에게는 1인당 300만원씩 국가가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대법원 역시 2심 판단에 문제가 없다고 보고 국가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원심을 확정했다.

이가현 기자 hyu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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