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가진 뇌에서 ‘죽어라’ 명령… 극단선택 부르는 마약

[중독된 사람들, 비틀대는 한국]
<2> 순간의 쾌락, 반복되는 고통
“마약 반대급부, 공허함·고독함 극심”


10여년간 필로폰 등 각성제류 마약을 투약하던 50대 남성 A씨는 지난해 자택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A씨는 마약을 하면서도 우울감과 불면증 등 부작용으로 고통스러워했다. 불면증 탓에 병원에서 처방받은 수면유도제 졸피뎀을 마약과 함께 복용하기도 했다. 이에 더해 함께 살던 여성과 헤어지고 혼자 지내게 됐고, 마약에서 깨어날 때의 공허함이 겹쳐지면서 결국 필로폰을 투약한 상태로 극단적 선택을 했다.

전문가들은 마약이 단순히 중독되는 것을 넘어 생명까지 위협할 수 있는 ‘죽음의 약물’이라고 경고한다. 과다투약으로 인한 심정지, 호흡마비 등으로 죽음에 이르기도 하지만, 가장 무서운 부작용은 목숨을 버리게 하는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마약 치료를 전문으로 하는 천영훈 인천참사랑병원 원장은 4일 “일반적인 자살도 가족들이 쉬쉬하는데 마약으로 자살하거나 부작용으로 죽으면 더욱 감추려는 경향이 강해 드러나지 않는 죽음이 많다”고 말했다. 병원 진료비 미수금 등 문제로 연락하면 ‘이미 사망했다’는 답이 돌아오는 경우도 흔하다고 했다.

천 원장은 “마약 중독 상태에서는 전두엽 기능이 마비된다”며 “전두엽은 자기 행동을 통제하고 결과를 예측해 위험을 피하게 하는 중앙컴퓨터같은 역할을 하는데, 약에 취한 상태에서는 ‘죽어’라는 명령 환청을 듣거나 작은 감정 동요에도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마약을 투약한 상태에서 충동적으로 자살 시도를 하는 것도 약물 중독에 의한 부작용으로 봐야 한다는 얘기다.

환각에서 깬 뒤에 몰려오는 공허함과 우울감 등이 투약자들을 벼랑 끝으로 내몰기도 한다. A씨를 지켜봐 온 소망을나누는사람들 대표 신용원 목사는 “마약이 흥분물질을 한꺼번에 퍼내다 보니 그 반대급부의 공허함과 고독함도 더욱 극심하게 다가온다”며 “중독자들은 그 감정을 더 많은 약으로 달래려고 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중독의 늪으로 빠지는 것이다.

마약 중독을 이겨내고 출소한 마약 사범들을 돕는 일을 해왔지만, 계속되는 부작용에 괴로워하다 세상을 등지는 경우도 있다. 출소자들의 사회 복귀를 돕는 일을 해온 한 중독재활센터 대표 B씨는 지난 8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B씨는 한때 마약에 빠져 살던 중독자였지만, 어렵게 회복 과정을 거친 뒤 재활공동체를 만들어 후원금과 정부 보조금으로 이들을 돕는 일을 해왔다.

그러나 그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 마약 중독자들과 함께 지내는 과정에서 극심한 스트레스를 겪었다고 한다.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이들이 금단 현상을 못 이겨 재범을 저질렀고, B씨는 위태로운 상태의 중독자들을 돌보기 위해 하루 24시간 내내 그들과 붙어서 지내는 생활을 반복해야 했다.

그는 불면증에 시달리면서 마약이 아닌 졸피뎀 등 또 다른 약물이나 술에 의존하는 생활을 이어가게 됐다. 무기력함을 이겨내지 못한 B씨는 어느날 재활센터에서 늦은 시간까지 일하고 귀가하던 길에 삶을 버렸다.

B씨를 잘 아는 다른 재활센터 관계자는 “결국 마약 중독에 빠졌던 사람들은 이후에도 잠을 못 자는 등 여러 가지 문제에 시달리다가 다시 마약에 손을 대거나, 다른 약물을 접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며 “약과 알코올이 함께 들어간 상황에서 여러 문제가 겹치다 보니 결국 잘못된 생각을 했던 것 같다”고 안타까움을 표했다.

양한주 기자 1wee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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