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호주 화석연료 심장부, 수소 생산 기지 탈바꿈 준비…각국 ‘군침’

[리셋! 에너지 안보<16>]
화석연료, 수소가 되다

호주 빅토리아주의 로이 양 A 석탄화력발전소 전경. 멜버른=신준섭

호주 멜버른에서 차로 2시간 정도 떨어진 거리에 위치한 라트로브(Latrobe) 계곡은 호주가 자랑하는 천연 자원의 보고 중 한 곳이다. 땅을 파기만 해도 석탄의 한 종류인 ‘갈탄’이 나온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생산과 동시에 전력으로 변환하는 작업이 진행되는 곳이란 점도 특징적이다. 갈탄 광산 바로 옆에는 호주 최대 전력회사인 AGL에너지 소유의 ‘로이 양(Loy Yang) A’ 석탄화력발전소가 들어서 있다. 멜버른이 위치한 호주 빅토리아주 전체 전력 공급량의 약 30%가 이곳에서 생산된다.

이 시설은 악명도 높다. 로이 양 A 화력발전은 단일 시설 기준으로 호주 내에서 가장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한다. 지난 11일(현지시간) 찾은 로이 양 A 화력발전 시설은 거대한 굴뚝마냥 우뚝 선 채 쉴 새 없이 하얀 증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이산화탄소를 포함한 이 증기는 지구 온난화를 부추긴다는 비판을 부르는 핵심 요인이기도 하다.

이러한 비판은 로이 양 A 화력발전의 폐쇄 결정으로 이어졌다. 지난 5월 선거를 통해 집권한 호주 노동당은 2050년까지 온실가스 실질 배출량을 ‘0’으로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화력발전이 설 자리가 없어지는 것이다. 정부 기조 변화와 맞물려 AGL에너지는 지난달 29일 이 시설을 당초 예정보다 10년이나 앞당긴 2035년에 폐쇄하겠다고 밝혔다.

호주 정부 입장에서는 전향적인 결정이지만 난제가 남았다. 갈탄 광산을 더 이상 활용하지 않으려면 환경오염을 막기 위해서라도 복구 작업이 필요하다. 이 작업에는 천문학적인 비용이 소요된다고 한다. 사라질 예정인 화력발전 일자리 역시 걱정해야 될 부분이다.

이런 가운데 일본 가와사키중공업과 일본 전력회사인 제이파워(Jpower)가 중심이 된 컨소시엄이 ‘수소 생산’이라는 대안을 제시했다. 갈탄으로 수소를 생산해 액화천연가스(LNG)처럼 수출하는 방식이다. 호주 입장에서는 갈탄을 활용할 수 있고 일본은 온실가스를 저감할 수 있는 수소 자원을 확보할 수 있다. 이 구상에 호응한 호주 정부가 전폭적인 지원에 나섰다. 5억 호주 달러(약 4470억원)를 투입하는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수소에너지공급망(HESC)이라는 명칭을 내건 이 프로젝트는 지난 3월 세계 최초로 액화수소를 해상을 통해 운송하는 최종 결과물을 이끌어냈다.

로이 양 A 석탄화력발전소 부지 내 위치한 HESC 프로젝트 수소 생산 시설. 제공=HESC

실험 성공한 ‘갈탄 수소’ 생산·운송
HESC 프로젝트는 기술적으로 이미 검증된 공정을 토대로 실험을 진행했다. 호주산 갈탄 구성 성분의 62%에 달하는 수분을 증기로 열을 가해 말리면서 합성가스를 생성해내는 게 첫 단계다. 합성가스를 구성하는 일산화탄소(CO)와 수소는 다음 단계에서 분리된다. 이 단계에서 일산화탄소는 압축을 통해 이산화탄소(CO₂)로 변한 후 포집된다. 탄소 포집·저장(CCS)이라는 기술이 활용된다. 갈탄에서 생성하는 수소가 이산화탄소 발생이 거의 없다고 강조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공정을 거쳐 남은 수소는 순도가 99.999%에 달한다. 제이파워(Jpower)의 크리스 존스톤 현장 담당은 “99.9% 수준의 순도를 99.999%로 끌어올리는 작업이 전체 작업의 절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수소 순도가 높아야 하는 이유는 기체인 수소를 액체로 바꾸는 ‘액화’ 공정 때문이다. 이중으로 밀봉된 수소 전용 저장 용기에 실려 차로 1시간20분 정도 떨어진 헤이스팅스(hastings) 항구 인근 액화 시설로 이동한 수소는 다음 공정에 돌입한다. 일본 카와사키 중공업이 운영 중인 이 시설은 가스 상태인 수소를 영하 253도에 노출시켜 액화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고순도여야만 영하 253도라는 온도에 정확히 반응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는 수송 경제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다. 기체 상태인 수소는 액화할 경우 부피가 800분의 1로 줄어든다. 한 번에 더 많은 양을 수송하려면 액화는 필수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헤이스팅스 항구 인근에 위치한 카와사키 중공업의 수소 액화 시설 전경. 제공=HESC

시범사업 단계인 만큼 생산 가능한 양이 많지는 않다. 카와사키 중공업 멜버른 지사 책임자인 히로후미 카와조 매니저는 “하루에 250㎏ 정도를 액화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완충 시 6㎏의 수소가 들어가는 수소차 넥쏘를 예로 들면 41대 정도를 충전할 수 있는 물량이다. 다만 상용화 단계로 들어가게 되면 얘기가 달라진다. 카와조 매니저는 “상용화 시 일일 5t 이상 액화 가능한 설비도 구동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일자리 창출 가능성도 확인했다. HESC 프로젝트가 가동되는 동안 모두 410개의 일자리가 만들어졌다. 시범 사업 수준의 결과물인 만큼 상용화 단계가 되면 더 많은 일자리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화력발전 폐쇄로 사라지는 일자리가 일정 부분 상쇄될 수 있다.

日 외에 韓·獨·印도 눈독…관건은 경제성
로이 양 A 화력발전 시설 부지와 헤이스팅스 항구 인근 액화 시설은 시범 사업 성공이라는 목표를 달성한 뒤 사실상 가동을 중지한 상태다. 그럼에도 이곳을 찾는 발길은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 11일의 경우 인도 정부 관계자들이 시설을 견학했고, 조만간 한국 울산시 관계자들도 HESC 프로젝트 시설을 견학할 예정이다. 독일 정부 역시 이 프로젝트에 관심을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각국이 관심을 내비치는 이면에는 에너지 안보 차원에서 호주산 수소를 선점해야 한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라트로브 계곡에 있는 갈탄에서 생산할 수 있는 수소의 양이 적지 않다. 이 수소를 모두 발전용으로만 쓴다고 가정했을 때 총량은 일본 전체 전력 수요를 240년간 충당할 수 있는 규모에 달한다.

제공=HESC

러시아가 유럽 가스 공급을 차단한 이후 공급 대비 수요 우위 시장으로 변모한 LNG 시장 상황을 고려하면 매력적일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수소는 LNG에 혼합해 발전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원이다. LNG 발전을 사용하는 국가들의 경우 LNG 수입량을 일정 부분 대체할 수 있는 것이다. 독일이 HESC 프로젝트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이 상황과 연관이 있어 보인다.

세계 최초로 수소법을 만들고 수소경제 진흥에 팔을 걷어붙인 한국도 호주산 수소 확보에 관심이 클 수밖에 없다. 한국 정부는 2050년까지 수소 사용량의 20%를 국내에서 생산하고 80%는 해외에서 수입하겠다는 구상을 밝힌 바 있다. 수소 수요를 국내 생산량만으로 충당할 수 없는 현실을 고려했다. 한국 정부가 내년 중 해외 청정 수소 도입 기반 구축 사업을 신설하겠다는 계획을 세운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첨병으로는 한국가스공사를 내세울 전망이다. 가스공사의 LNG 수입·공급 경험을 수소 수입에도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정부 관계자는 16일 “지난 정부까지만 해도 수소를 친환경 에너지 확대 및 새로운 먹거리 확보 차원에서 접근했지만 최근에는 에너지 안보 차원의 중요성도 커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변수는 경제성이다. 카와조 매니저는 “(생산하는) 수소 가격이 ㎏ 당 2달러 이하여야만 경제성이 확보된다. 이를 위해서는 충분한 수요층이 있는 ‘규모의 경제’가 뒷받침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현 시점에서는 수소 가격이 2달러/㎏를 상회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상용화 시설을 짓기 위한 대규모 투자도 필요하다. 존스톤 현장 담당은 “투자가 있다면 당장에도 상용화에 돌입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멜버른=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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