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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인에게 ‘점자 생리대’가 쉽게 닿을 수 있도록

[모두가 생리대를 ‘읽을 수’ 있다면] ③ ‘반보’ 전진한 제도…나아가야 할 곳은

여의도 한 대형 마트의 생리대 판매 코너. 143종의 생리대가 판매되고 있었지만,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 생리대는 단 1종도 없었다. 박성영 인턴기자

‘월경권’이란 단어를 아시나요? 월경권은 월경(생리)하는 모두가 안전한 환경에서 건강하게 생리할 권리를 말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생리용품에는 점자가 없어 여성 시각장애인들은 월경권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마침 지난 4일은 ‘점자의 날’이었는데요. 이날을 기념해 질문을 하나 던져보고자 합니다.

“생리대, 보이지 않아도 고를 수 있나요?” 국민일보 인턴기자들은 이 물음에서 출발해 ‘모두를 위한 생리’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여성 시각장애인들도 비장애인 여성처럼 ‘안전하게’ 월경에 대비하길 원한다. 시각장애인들이 읽을 수 있는 ‘대안의 언어’가 새겨진 생리용품을 쉽게 접하고 구매할 수 있길 바라는 것이다.

국민일보 인턴기자들이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 생리대’를 찾아 서울 여의도 일대를 직접 다녀봤다. 먼저 약국에 들렀다. 점자 표기가 되어있는 의약품을 7종 이상 찾아볼 수 있었지만, 점자 생리대는 없었다.

편의점으로 발길을 돌렸다. 총 4곳의 편의점이 각각 10~30여 종의 생리대를 판매하고 있었지만 역시나 점자 생리대는 찾을 수 없었다. 직원에게 문의해도 “점자 생리대는 잘 모르겠다”는 답이 돌아왔다.

대형마트는 어떨까.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방문한 한 대형마트엔 총 143종의 생리대가 진열돼 있었다. 그러나 이 많은 생리용품 중 시각장애인이 ‘읽고 고를 수 있는’ 제품은 단 1종도 없었다.

점자 생리대를 찾아다니다보니 대다수 제품이 비닐포장재를 사용한 점이 새삼 눈에 띄었다. 점자를 표기하는 기술은 주로 종이에 적용되며 비닐에는 적용이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종이 패키지에 담긴 탐폰도 점자 표기가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결국 답은 제도… 어디까지 왔나

현재 생리용품 제조업체 중 점자 생리대를 생산하고 있는 곳은 단 2개 업체(허그몬·더스킨팩토리)뿐이다. 이 업체들의 제품은 오프라인에서 구매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 오프라인 판매처가 있는 업체는 허그몬뿐인데, 이마저도 백화점과 약국을 비롯해 전국 12곳에만 공급되고 있어 소비자와의 접점이 충분히 마련되지 못한 실정이다.

더스킨팩토리의 브랜드 '쿤달' 생리대. 제품용기에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 표기가 되어있다. 더스킨팩토리 홈페이지.

무엇보다 점자 및 음성·수어영상변환코드를 제품에 표기하는 것과 관련해 정부의 지원은 전무한 상태여서 업체들이 느끼는 부담은 더욱 크다. 생리용품 생산업체들은 국민일보에 14일 “(점자 생리대) 생산에 대한 정부의 지원은 받고 있지 않다”고 전했다. 여성 시각장애인의 건강과 이용편의를 위한 대안 마련을 사실상 개별 기업체의 선의에 기댈 수 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추후 시각장애인을 위한 생리대 생산 계획을 밝힌 업체로는 유한킴벌리가 있다. 유한킴벌리는 국내 생리대 시장에서 가장 높은 점유율을 차지한 기업이다. 현재 유니버셜 디자인(장애 유무 등에 관계없이 누구나 손쉽게 쓸 수 있는 제품) 생리대 출시를 검토 중이다. 유한킴벌리는 생리대 처리가 쉽지 않은 발달장애인과 어린 여성들을 위해 ‘처음생리팬티’ 등 다양한 상품을 개발해왔다.

유한킴벌리는 관계자는 “관련 비용을 명확히 산출하기는 어려우나, 포장 방식을 바꾸거나 (점자 인쇄 등을 위해) 기계투자 등이 필요하므로 관련 투자 및 현재 포장 소진까지 고려하면 상당한 비용이 발생할 것으로 예측한다. (정부의) 재정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비교적 자원 투입이 용이한 기업마저도 정부의 재정 지원이 있어야만 원활한 제품 생산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또한 유한킴벌리 측은 “포장재 혹은 포장방식 변경에 따른 각 매장·채널에서의 협업도 필요하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한 정책적 지원도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진전은 있으나 갈 길 멀어

다행히 진전을 위한 단초는 마련된 상태다. 지난해 6월 약사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며 의약품과 의약외품에 점자 및 음성·수어영상변환코드를 표기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법제화됐다. 법안은 제조업체가 변경된 제도에 적응할 수 있도록 정부가 행정적 지원을 하는 내용도 담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생리용품의 경우 이 법안에서 규정하는 의무표기대상이 아니라는 점이다. 법안은 타이레놀 등 편의점에서 구매 가능한 ‘안전상비의약품’은 의무표기대상으로 규정했지만, 그외 의약품과 의약외품의 경우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이 정하는 바에 따라 표기하도록 해 ‘반쪽짜리’ 대안에 그칠 우려를 안고 있다.

공포된 법안은 3년의 유예기간을 거쳐 2024년 7월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법안 통과로부터 17개월의 시간이 지난 지금, 식약처는 어떤 의약(외)품을 시각장애인에게 허용할 계획일까.

국민일보가 식약처에 문의하자 “내부 논의 중이며 내년 중 행정예고가 나오면 알 수 있을 것”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법안 시행까지 시간이 남은만큼 당장 급할 것은 없다는 태도다.

그러나 제조업체들의 의견을 종합해보면, 주어진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업체 관계자에 따르면 생리용품에 점자 표기 등을 하기 위해서는 현재 폴리(비닐) 소재인 포장재를 종이로 변경하거나 폴리 소재에 관련 기술을 적용할 수 있게끔 하는 장치 등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최소 6개월에서 최장 1년 이상이 소요될 전망이다.

법안 시행까지 1년 반을 조금 넘게 남겨둔 지금, 식약처가 아무런 가이드라인을 주지 않는 것은 업체의 대응마저도 어렵게 만드는 측면이 있다.

식약처의 대처와 비교해 참고해볼 만한 움직임이 하나 있다. 지난해 6월 권인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약사법 개정안이다. 이 의안은 안전상비의약품뿐 아니라 ‘생리혈 위생처리 제품’에도 점자 및 음성·수어영상변환코드를 의무 표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생리혈 위생처리 제품에 점자 및 음성·수어영상변환코드를 의무 표시하도록 하는 내용의 약사법 개정안을 발의한 권인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모습. 권인숙의원실

권 의원은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여성에게 생리대는 건강과 직결되는 생활필수품이지만, 시각장애인들에게는 기본적인 정보 제공조차 이루어지지 못해 오용과 불편이 지속되고 있다는 현장의 목소리가 있었다”며 “장애인들을 위한 필수 정보 표기와 이를 위한 정부의 행정·재정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입법을 추진하게 됐다”고 법안 발의 배경을 설명했다.

이 개정안은 앞서 언급했듯 ‘식약처장이 정하는 의약외품’과 ‘생리혈 위생처리 제품’을 별도로 명시해 생리대 용기 또는 포장에 점자 및 음성·수어영상변환코드 등이 표기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권 의원은 “여성의 생필품인 생리대의 기본 정보가 장애인들에게도 반드시 제공되어야 한다는 취지를 보다 명확히 담은 것”이라며 현재 공포된 약사법과의 차이를 강조했다.

그런데 이 의안은 현재 ‘법안의 취지와 목적이 이미 달성’되었다는 이유로 계류 중이다. 같은 달 통과된 현행 약사법 개정안이 시각·청각장애인을 위한 의약외품의 표시 사항을 규정하고 있으므로 대안이 마련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권 의원은 “생리대, 탐폰, 생리컵 등 ‘생리혈 위생처리제품’이 약사법에 따른 의약외품으로 이미 지정되어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통과된 현행안에 관련 내용이 포괄적으로 담겼다고 볼 수는 있다”고 일부 동의하면서도 “‘식약처장이 정하는 의약외품’의 범위에 생리대 등이 포함될 것인지는 아직 불확실하기 때문에 법의 취지와 목적이 완전히 달성되었다고 보기는 어려운 상황”이라 지적했다.

이어 그는 “2024년 시행될 총리령 범위에 생리혈 위생처리 제품이 포함된다면 발의한 개정안의 입법 취지가 온전히 달성되었다고 볼 수 있고 추가 개정의 필요성 또한 사라질 것”이라 말했다. 지난 6월 약사법 개정으로 공이 식약처에 넘어간만큼, 당장 국회 차원에서의 추가 개정을 목표로 하기보다 식약처의 적극적 대응을 촉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식약처가 제대로 대응할 수 있도록 “생리대가 (의무표기 대상에) 포함되어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확대될 필요가 있다”며 생리용품이 여성 시각장애인의 필수품이라는 사실이 폭넓게 알려져야 한다고 주문했다.

생리대 바깥의 세계

‘여성 시각장애인의 안전한 생리’를 이야기하는 목소리가 조금씩 나오고 있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멀다. 개선의 불씨가 마련된 상황을 마주한 시각장애인 여성 당사자들의 심정은 어떨까.

20대 유튜버 고수빈씨는 “오래 걸리더라도 언젠가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표시사항 기입이) 시행됐으면 좋겠다”며 “시각장애인들이 살아가면서 겪는 불편함에 대해서는 그 누구보다 우리가 잘 알기 때문에 ‘이런 법을 시행하겠습니다’라고 하기 전에 우리에게도 의견을 물어봐주고, 그것이 정책 결정 과정에 반영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동안 유튜브 채널을 통해 시각장애인 여성의 생리 문제를 제기해온 20대 허우령씨도 시각장애인을 위한 표시사항 기입을 촉구했다. 허씨는 그러면서 “‘점자’ 박았으니까 끝!’ 이렇게 끝나선 안 된다”고 힘주어 말했다. ‘점자 표기’는 점자를 읽을 수 있는 시각장애인들에게 가장 기본적인 권리이긴 하지만 점자가 낯선 시각장애인을 위해 음성·수어영상변환코드 등의 방안도 함께 마련돼야 한다고 것이다.

40대 후반의 시각장애인 A씨는 “점자를 모르는 저시력자를 위한 방안(음성·수어영상변환코드)이 점자 표기와 ‘동시에’ 마련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현재 개정된 안은 시각·청각장애인을 위한 의약외품의 표시 사항을 총리령으로 정하게끔 되어있는데 제품에 점자를 표시할 것인지, 음성·수어영상변환코드를 표시할 것인지조차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이들은 여전히 비장애인들이 모르는 장애여성의 세계에 대해 앞으로고 계속 말하고 싶다고 했다. 비장애인의 시각에서 마련된, 지나치게 협소했던 공론장의 문을 열고 더 깊이, 더 널리 이들의 목소리가 전해지도록 해야 한다. 비단 월경권 뿐만 아니라 일상에서 이들이 공동체 구성원으로 인정받는 권리인 ‘성원권’을 찾아가는 장애여성들의 투쟁은 현재진행형이다.

김은초, 류동환, 박성영, 서지영, 이지민 인턴기자 onlinenews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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