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못 참아” 분노 터졌다…中 ‘백지 시위’ 확산

봉쇄·검열 항의 의미로 빈 종이 들고 시위
2030·SNS 통해 빠르게 확산
中 “제로 코로나 견지, 반드시 성공할 것”

3년째 계속되고 있는 제로 코로나 정책과 이로 인한 봉쇄에 반대하는 중국 시민들이 28일 베이징에서 흰 종이를 들고 항의 시위를 벌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중국에서 ‘제로 코로나’에 반대하는 시위가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시위에 참가한 시민들이 손에 든 흰색 종이는 방역을 이유로 봉쇄를 고수하는 중국 정부를 겨냥한 저항의 상징이 됐다. 중국 전역으로 확산하고 있는 ‘백지(白纸) 시위’는 집권 3기를 시작한 시진핑 국가주석에 대한 정면 도전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3년째 계속되고 있는 제로 코로나 정책과 이로 인한 봉쇄에 반대하는 중국 시민들이 28일 베이징에서 흰 종이를 들고 항의 시위를 벌이고 있다. AFP연합뉴스

지난 27일 밤 베이징시 차오양구의 량마차오 거리. 각국 대사관이 모여 있는 이곳에 A4 용지를 든 사람들이 모였다. 종이에는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았다. 시위에 참가한 한 시민은 “제로 코로나 반대, 봉쇄 해제 같은 문구를 쓰면 공안에 압수당할 것이 불 보듯 뻔하다”며 “굳이 쓰지 않아도 우리가 왜 모였는지 누구나 다 알 것”이라고 말했다. 시위에 참가한 사람들은 대부분 20, 30대였다. 이들은 함께 구호를 외치고 거리를 행진하면서 스마트폰으로 현장의 모습을 담았다. 이렇게 찍힌 영상이 트위터 등 해외 SNS를 통해 빠른 속도로 퍼지고 있다. ‘만리방화벽’으로 불리는 중국 당국의 검열도 시위 소식이 전 세계로 퍼지는 걸 막지 못했다.

백지 시위는 검열에 저항하는 의미가 담겼다. 2020년 홍콩에서 국가보안법 반대 시위가 일었을 때도 등장했다. 코로나19 확산 이래 상하이와 광둥성, 광저우 등 곳곳에서 산발적으로 봉쇄 반대 시위가 벌어졌지만 수도 베이징에서 수백명이 모여 정부 정책을 비판한 건 처음이다. CNN은 중국의 시위 소식을 전하면서 “시 주석에 대한 도전”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달 23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공산당 중앙위원회 신임 정치국 상무위원 소개 기자회견에서 손을 흔들고 있다. AP연합뉴스

시위 현장을 찍은 영상을 보면 시민들은 흰색 종이를 흔들며 “봉쇄를 해제하라” “PCR(유전자증폭) 검사 대신 자유를 달라”고 소리쳤다. 또 “문화혁명 말고 개혁이 필요하다” “영수 말고 선거권을 요구한다”는 구호도 나왔다. 지난달 중국 공산당 20차 전국대표대회(당 대회) 전 베이징 도심의 고가도로 쓰퉁차오에 내걸렸던 시 주석 비난 현수막에 나오는 내용이다. 당시 중국 정부는 비난 현수막을 황급히 철거하고 온라인상의 관련 내용을 모두 삭제했지만 시민 대다수가 현수막 게재를 알고 있었던 셈이다. 이날 시위에서도 “중국에 황제는 필요 없다”며 시 주석과 공산당 퇴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다만 한쪽에선 문제를 키우지 말자며 정치적 발언을 자제하는 모습도 보였다.

중국 경찰이 27일 상하이 우루무치 거리에서 신장 우루무치 화재 참사 추모 및 제로 코로나 반대 시위에 참가한 시민들을 연행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현장에 출동한 경찰은 “집에 가서 월드컵 경기를 보라”며 해산을 시도하다가 자정이 지나자 시위대를 연행하기 시작했다. 시위를 취재하던 영국 BBC방송 기자가 공안에 붙잡혀 구타 당하다 풀려나는 일도 벌어졌다. BBC는 성명을 내고 “취재 도중 수갑에 채워진 채 연행된 기자는 몇 시간 동안 붙잡혀 있었고, 공안이 그를 구타했다. 당국의 대우는 극히 우려스러운 수준”이라고 밝혔다. 시위대는 다음 날 새벽 3시 30분쯤 해산했다. 홍콩 사우스차니아모닝포스트(SCMP)는 베이징뿐 아니라 상하이와 후베이성 우한, 쓰촨성 청두에서도 비슷한 시위가 벌어졌다고 보도했다.

백지 시위의 기폭제가 된 건 지난 24일 신장위구르자치구 우루무치시에서 발생한 화재 사고다. 불이 난 아파트가 봉쇄돼 소방차 진입이 늦어져 10명이 사망하는 참사로 이어졌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지난 3년간 쌓인 불만이 폭발했다. 중국에선 코로나19 확산을 막는다며 주거 단지와 회사 건물 등이 갑자기 봉쇄되고 출근, 등교가 중단되는 일이 일상처럼 벌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카타르월드컵의 노마스크 관중을 본 중국인들은 허탈함과 분노를 쏟아내고 있다.

대학가에서는 당국의 검열을 피하기 위해 낙서와 방정식까지 등장했다. 시 주석의 모교인 칭화대에서는 여러 학생이 프리드먼 방정식(Friedmann Equations)이 적힌 하얀 종이를 들고 시위에 참여했다. 학생들이 어떤 의도로 이 방정식을 끄집어냈는지는 불분명하지만 우주 팽창과 관련된 공식을 통해 지금의 시위와 민심 이반이 더 커질 것이라는 경고의 뜻을 담았다는 평가가 나왔다. 프리드먼의 발음이 노예 신분에서 해방된 자유민을 뜻하는 프리드맨(freedman)과 유사하다는 해석도 있다. 베이징대에선 쓰퉁차오 현수막 시위 때 쓰인 구호가 낙서 형태로 나타났다.

중국 베이징의 봉쇄된 주거 단지 앞에 배달 음식과 택배가 놓여 있다. EPA연합뉴스

이런 상황에서도 중국 정부는 제로 코로나 방침을 고수한다고 밝혔다. 자오리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28일 정례 브리핑에서 시위가 확산하고 있는데 제로 코로나 종료를 고려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당신이 거론한 관련 상황은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중국은 다이내믹 제로 코로나의 전반적 방침을 일관되게 견지하며 현실 상황에 맞춰 방역 정책을 조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중국 공산당의 영도가 있고 전체 인민의 협력과 지지가 있기에 중국은 바이러스와의 싸움에서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중국의 일일 코로나19 감염자는 4만명을 넘어서며 최고치를 기록했다.

중국의 코로나19 재확산과 반정부 시위 등의 영향으로 아시아 증시와 국제 유가가 모두 하락세를 보였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이날 상하이종합지수와 선전성분지수는 각각 0.75%, 0.51% 하락 마감했다. 위안화 가치도 떨어졌다. 역내 위안화 환율은 달러당 7.1949 위안으로 전장보다 0.0299위안(0.6%) 올랐다. 국제 유가도 중국의 수요 둔화 우려 등으로 배럴당 2달러 넘게 급락했다. 뉴욕상업거래소에서 내년 1월물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은 이날 오후 4시 2.69달러 빠진 73.60달러까지 하락하면서 지난해 12월 이후 11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베이징=권지혜 특파원, 백재연 기자 jh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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