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형 합리화, 현주소와 과제는…” 양형위 국제 콘퍼런스

양형위원회는 지난 28일 '양형의 합리화 방안'이라는 주제로 세계 석학들이 참석한 가운데 국제 콘퍼런스를 개최했다. 양형위원회 제공

지난 28일 대법원 4층 대회의실에는 다노이 구라토 일본 최고재판소 형사국원(판사), 매튜 클레이만 미국 펜실베니아 양형위원회 부국장, 외르크 킨지히 독일 튀빙겐대 교수, 멜리사 해밀턴 영국 서레이대 교수, 브랜든 개럿 미국 듀크대 교수 등 양형 전문가로 손꼽히는 석학들이 모여들었다. 이들은 양형위원회(위원장 김영란 전 대법관)가 출범 15주년을 맞이해 처음으로 개최한 국제 콘퍼런스에 참석하기 위해 대법원을 찾은 이들이었다. 김 위원장은 “양형의 합리화를 위한 지난 여정을 객관적으로 돌이켜보고,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과제들을 발견하는 소중한 계기가 될 것”이라고 개회사를 했다.

국제 콘퍼런스는 ‘앙형의 합리화 방안-현황과 과제’라는 주제로 진행됐다. 손철우 양형위 상임위원의 사회로 진행된 제1주제는 세계 각국의 양형 합리화 방안을 듣고 토론하는 시간이었다. 최승원 고법판사가 우선 한국 양형위 및 양형기준의 주요 내용을 소개했다. 그는 양형 과정의 투명성과 예측가능성 제고를 성과로 제시했다. 그러면서도 양형기준의 체계적 일관성 확보, 집행유예 기준의 보완, 양형기준 적용 현황의 지속적 분석 등을 향후 필요 과제라고 했다.

이어 줄리안 로버츠 영국 옥스퍼드대 교수가 영국의 양형기준의 주요 성과와 과제를 소개했다. 그는 “양형기준은 양형 결정의 투명성과 양형의 일관성을 향상시키지만, 실형률과 재범률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했다. 클레이만 부국장은 “성공적인 양형위는 양형 편차를 줄이고, 예측가능성을 높이며, 책임의 비례성을 증진시키기 위한 ‘데이터 기반의 양형 정책과 실무’에 중점을 둔 객관적 기관”이라고 했다.

토론에 나선 구라토 판사는 한국의 국민참여재판과 유사한 일본의 ‘재판원 재판’ 제도를 양형실무의 최신 동향으로 소개했다. 일본에서는 시민이 판사와 함께 형사재판에 참여해 유무죄와 형량을 결정할 때 ‘양형 참고 시스템’ ‘양형 통계 그래프’를 이용한다는 내용이었다. 요하네스 카스파 독일 아우크스부르크대 교수는 “독일 양형 체계는 형벌 예측 가능성이 아닌, 사법적 재량과 유연성에 중점을 둔다”고 발표했다. 독일 학계는 양형 데이터베이스 도입을 지지하지만 인공지능의 도입에는 불투명성과 편향 등의 이유로 반대하는 견해가 있다고도 그는 소개했다.

제2주제 발표와 토론은 국내외 전문가들이 양형 합리화를 위한 주요 과제를 논의하는 순서였다. 김선화 대검찰청 공판송무부장이 진행한 제2주제 콘퍼런스에서는 어떻게 객관적으로 ‘재범의 위험성’을 판단할 것인지 등 보다 구체적인 의문들이 오갔다. 천대엽 대법관은 “재범 위험성 판단은 법관의 개인적 경험과 직관에만 의존하고 있다는 오해를 지속적으로 받아 왔다”고 토로했다. 킨지히 교수는 독일의 형사재판 때 피고인의 재범 위험성 평가 과정에 정신과 의사나 심리학자 등의 전문가 의견이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했다. 그는 그러면서도 “실증적 연구들 중에는 이 재범 위험성이 과대평가되는 경향이 있다”고 밝혔다.

재범 위험성 평가 도구에 오류가 존재한다는 발표는 해밀턴 교수의 발표에서도 이어졌다. 해밀턴 교수는 “개인 또는 집단의 재범 위험성 수준을 과대 또는 과소 예측하도록 하는 편향을 경계해야 한다”고 했다. 고용과 교육 수준에는 인종 및 계층적 편향이 내재돼 있다는 점을 그는 사례로 들었다. 재범위험성 평가 결과는 그 자체로 특정한 중요성을 갖거나 권고되는 것이 아니라, 법관이 고려할 증거의 하나라는 것이 해밀턴 교수의 주제였다.

이어진 토론에는 권미연 사법정책연구원 연구위원(판사), 김도희 광주지검 검사, 장진환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이 참여했다. 권 연구위원은 “통계적 방식에 기초한 위험성 평가도구는 양형에 관한 의견을 뒷받침할 자료 중 하나”라며 “법관의 판단 그 자체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다”고 했다.

김 검사는 최근 한국에서 아동 성범죄자들의 출소가 연이어져 국민들의 우려가 높고, 심지어 출소 2일 전 구속영장이 발부된 일이 있다는 점을 재범 위험성 통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요구의 현주소로 제시해 눈길을 끌었다. 김 검사는 “아동 성범죄와 스토킹 범죄를 저지른 이들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가 큰 과제”라며 세계 각국의 형집행 이후 재범 위험성 판단에 대해 질의했다. 장 부연구위원은 “전문가의 평가가 법관의 평가를 완전히 대체하거나, 전문가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은 채 법관의 직관적인 판단에 의해서만 재범위험성이 판단되면 안 된다”고 짚었다.

이후 강수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사회로 ‘법인 형사처벌’과 관련한 양형 논의가 이어졌다. 이 주제는 사회 전반의 심각한 피해를 야기하는 기업범죄의 진화에 따라 선정됐다. 개럿 교수는 미 연방 양형위원회의 법인에 대한 양형기준은 ‘법인 사형 조항’을 두고 있으며, 한편으로는 형을 감경받을 길을 열어두는 ‘당근과 채찍’ 접근 방식이 채택되고 있다고 소개했다. 김웅재 서울대 법전원 교수는 법인 형사처벌의 근거가 매우 제한적인 내용만을 담고 있다고 지적했고, “‘행위책임’과 ‘감독책임’을 차별 취급할 것인지 향후 논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날 김명수 대법원장은 “우리나라는 대륙법계 국가로서는 처음으로 대법원 산하에 양형위원회를 설치하고 양형기준제를 시행했다” “양형기준은 권고적 효력만을 가지지만 전국 법원의 양형기준 준수율은 90%를 상회한다”고 축사를 했다. 양형위는 심도 있는 콘퍼런스 내용을 향후 양형 정책의 개선과 발전에 활용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양형위는 향후 비교법적 자료 수집 및 연구를 위해 해외 양형위‧사법부와의 교류를 지속할 예정이라고 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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