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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미국 마약시장에 뛰어들자 생긴 일 [썰로벌]

미국에 좀비랜드가 생긴 진짜 이유


허리를 반으로 꺾고 흐느적거리는 사람. 기도하듯 무릎을 꿇은 사람. 고개를 숙인 채 몸을 흔들고, 같은 자리를 맴돌고, 혼자 중얼대고, 아예 바닥에 널브러진 사람. 공포영화 속 좀비 같은 이 사람들은 모두 마약에 취한 중독자들입니다. 그리고 해골처럼 비쩍 마른 중독자들이 대낮부터 허우적대는 여기는 미국 필라델피아의 켄싱턴 애비뉴입니다.

대략 3마일 길이의 이 거리는 미국 전역에서 마약 중독자들이 몰려드는 동부 최대의 마약시장입니다. 마약상들이 고작 몇 달러에 마약을 뿌려대서 ‘좀비랜드’ ‘헤로인 월마트’라고도 불리는 악명높은 우범지대입니다. 역시 미국이구나, 혹시 이렇게 생각하셨나요? 솔직히 미국의 마약 문제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닙니다.


영화 ‘스카페이스’(1983년)부터 ‘펄프 픽션’(1994년), ‘더 울프 오프 월스트리트’(2013년) 까지 이 많은 할리우드 마약 영화가 그냥 나왔을리가 없죠. 1960년대에는 히피들의 마리화나와 LSD가, 1980년대에는 흑인사회의 코카인과 크랙이 큰 사회문제가 됐고, 지금도 마약은 총기와 함께 미국 사회의 최대 약점 중 하나입니다. 마릴린 먼로, 마이클 잭슨, 히스 레저, 주디 갈란드, 프린스. 이 수많은 스타들이 목숨을 잃은 이유. 역시 약물남용입니다.

그런데 최근 마약시장에 중국이 혜성처럼 등장하면서 중남미가 꽉 잡고 있던 미국 마약시장의 판도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그 충격적인 결과가 보여드린 이 풍경, 좀비랜드의 으스스한 모습입니다. 게임체인저는 중국산 펜타닐이었습니다.



중국이 시장에 뛰어든 뒤 20 10년대 중반부터 미국에서는 펜타닐 위기가 폭발했습니다. 이건 미국 CDC가 만든 미국 지도입니다. 붉은 색은 증가인데 미국 전역이 새빨갛습니다. 캘리포니아 140%, 오리건 160%, 네브라스카는 171%나 늘어난 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


대체 펜타닐이 뭐길래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요. 펜타닐은 헤로인보다 50배가 강한 초강력 마약입니다. 하지만 효과보다 더 중요한 특징은, 대량생산이 가능한 초저가 합성 마약이라는 점이죠. 아주 싼데 효과는 강력하고 치사량은 2㎎밖에 안될 정도로 작아서 테러용으로 쓰일 만큼 아주 위험한 약물입니다.

펜타닐은 이렇게 작은 실험실에서 만들 수 있는데, 원료가 되는 화학약품만 있으면 무제한 생산이 가능합니다. 일단 만들어지면 산지를 확인해 유통루트를 역추적하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소량이니 배송도 너무 간편하죠. 미국에서 온라인으로 주문하면 편지봉투에 담겨 우편으로 집앞까지 배달됩니다. 가히 혁명입니다. 마진도 엄청나서 3000달러를 투자하면 150만 달러, 그러니까 400만원쯤 투자하면 20억원을 벌 수 있습니다. 공급자 입장에서는 로또입니다.


물론 과거에도 LSD나 필로폰 같은 합성마약이 있긴 했습니다. 차이를 만든 건 바로 이 나라, 중국입니다. 세계의 공장인 중국의 공급망이 마약 공급의 고속도로를 뚫었습니다. 중국은 원료의약품의 40%를 만드는 세계 최대 생산기지인데, 대략 16만곳의 화학회사가 한해 350억 달러의 원료 약물을 전세계에 수출합니다. 물론 합법적인 의약품인데요, 이런 대규모 화학 인프라가 잠재적으로 펜타닐의 불법 생산기지로 활용된 겁니다.

그렇게 ‘오피오이드 위기’가 폭발하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017년 비상사태를 선포하기에 이르렀고, 2019년에는 시진핑 주석을 비난하면서 미중간 외교분쟁까지 벌어졌습니다. 이 지도를 보면 미국이 중국에 화를 낸 이유가 조금은 이해됩니다. 여기 중국 동부에서 대량생산된 펜타닐 가루와 캡슐, 그리고 펜타닐을 만들 수 있는 원료 약품들이 이렇게 미국과 캐나다로 팔려나갑니다.



이건 미국 언론이 찾아낸 중국내 펜타닐 생산 거점들입니다. 여기 스좌장과 상하이, 그리고 코로나 때문에 유명해진 그 도시 우한도 눈에 띕니다.

여기서 두번째 연결고리가 등장합니다. 마약하면 빠지지 않는 이 나라, 멕시코의 마약 카르텔입니다. 그중 미국 당국이 핵심 플레이어로 지목한 건 CJNG(신세대 할리스코카르텔)와 시날로아 카르텔, 두 조직이죠.


이 거대 마약상들이 중국산 펜타닐에 손을 대기 시작한 겁니다. 아까 지도를 다시 보면, 중국에서 떠난 화살표가 여기 멕시코로 향하는 걸 확인할 수 있죠. 펜타닐 가루는 멕시코에서 캡슐로 제작된 뒤 다시 미국으로 들어갑니다. 이 과정에서 카르텔은 중국산 펜타닐 가루에 코카인과 헤로인을 섞어서 신종마약을 만들기도 합니다.


흥미로운 건 2018년 이후 등장한 인도입니다. 미국의 압박에 중국 당국의 감시가 심해지자 중국의 생산시설 일부가 인도로 옮겨간 징후가 포착된 겁니다. 이렇게 인도에서 멕시코로, 혹은 중국에서 인도를 거쳐 다시 멕시코로 가는 펜타닐 루트가 계속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이쯤에서 한가지 확인할 게 있는데, 그렇다고 펜타닐이 불법이냐 하면 펜타닐은 완벽하게 합법적인 의약품입니다. 바로 그 점이 상황을 악화시켰다고 할 수 있죠. 사실 펜타닐은 말기 암환자에게 처방하는 매우 효과적인 진통제입니다. 그리고 미국의 펜타닐 중독 문제를 만든 시작도 병원, 더 정확히 말하자면 미국의 대형 제약회사들과 의사들이었습니다.



1990년대 중반부터 돈에 눈이 먼 제약사들은 마약성 진통제에 대한 공격적인 마케팅을 시작했고, 이들의 권유를 받은, 역시 돈에 눈이 먼 의사들이 경미한 증상의 환자에게 처방을 남발하면서 이 거대한 중독이 시작됐습니다. 얼마 뒤부터 사람들은 병원밖에서 약물을 찾기 시작했는데, 이런 기회를 중국과 멕시코 마약상들이 놓치지 않고 파고든 거죠.

제약사가 대가를 치르지 않은 건 아닙니다. 2021년 존슨앤존슨, 테바제약, 퍼듀파머같은 제약사들, 또 2022년에는 CVS와 월그린스, 월마트 같은 약국체인이 약물 관리를 잘못한 책임을 인정하고 미국 주정부에 수십조원의 배상을 약속했습니다.




책임을 지지 않는 것보다는 낫지만, 이게 진짜 해피엔딩일까요? 이미 수많은 사람이 죽고 더 많은 사람은 펜타닐에 중독된 채 이렇게 거리를 떠돌고 있는데도요?

죽어야 끝나는 게 마약 중독이란 말이 있습니다. 그만큼 한번 빠지면 헤어나오기 어렵다는 뜻일 겁니다. 근데 그게 의사 탓이라면요? 얼마나 끔찍하고 억울하겠습니까? 그게 바로 오늘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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