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시사 > 전체기사

유태평양-김풍년의 ‘강릉서캐타령’, 미래 창극의 가늠자

10~11일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국립창극단 작창가 프로젝트 시연회

국립창극단 단원 유태평양과 극작가 겸 연출가 김풍년은 10~11일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열리는 국립창극단 작창가 프로젝트 시연회에서 ‘강릉서캐타령’을 선보인다. 이한형 기자

창극은 판소리를 기본으로 하는 한국 고유의 음악극이다. 과거에는 노인층이나 보던 고리타분한 장르로 여겨졌지만 2010년대 이후 관객들이 주목하는 핫한 장르가 됐다. 국립창극단이 판소리 다섯 바탕 외에 다양한 소재를 흡수해 끊임없이 외연을 확장한 덕분이다. 하지만 국립창극단은 창작 창극을 올릴 때마다 작창(作唱)을 맡을 작창가를 구하기 위해 늘 머리를 싸매야 했다.

창극의 음악적 토대인 작창은 한국음악의 다양한 장단과 음계를 활용해 극의 흐름에 맞게 새로운 소리를 짜는 작업을 가리킨다. 판소리 다섯 바탕은 물론 민요, 정가, 대중가요 등 다양한 음악을 알아야 하는 만큼 매우 특수하고 전문적이다. 하지만 정규 교육 과정에선 작창을 가르치지 않기 때문에 현재 창극을 맡을 수 있는 작창가는 몇 안 된다.

이에 따라 국립창극단은 새로운 작창가들을 발굴해 성장시키는 프로젝트를 올해 초 시작했다. 16명의 지원자 중에서 4명의 작창가를 선발했고, 극 창작을 위해 이들에게 4명의 중진 극작가들을 붙여줬다. 그리고 작창 멘토로는 소리꾼이자 배우인 이자람과 중앙대 전통예술학부 한승석 교수가 나섰고, 극작 멘토로는 극작가 배삼식과 고선웅이 나서 조언을 했다.

작창가와 작가로 조합된 네 팀에 멘토들 조언

국립창극단 작창가 프로젝트에 선발된 작창가 서의철, 박정수, 장서윤, 유태평양(왼쪽부터). 국립극장

작창가와 작가로 조합된 네 팀은 유실된 판소리 일곱 바탕 가운데 소재를 선택해 30분 분량의 이야기로 만들었다. 10~11일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열리는 ‘국립창극단 작창가 프로젝트 시연회’에서는 장서윤-김민정의 ‘옹처’, 유태평양-김풍년의 ‘강릉서캐타령’, 서의철-이철희의 ‘게우사’, 박정수-김민정의 ‘덴동어미 화전가’ 등 4편이 소개될 예정이다. 네 팀 가운데 ‘강릉서캐타령’의 국립창극단의 대표 주역 배우인 유태평양과 올해 백상예술대상 연극상을 받은 극작가 겸 연출가 김풍년을 만나 이번 작업의 뒷얘기를 들어봤다.

“저는 올해 국립창극단에 입단한 지 7년째에요. 단원으로서 무대에 서다 보니 작창에도 자연스럽게 관심이 갔습니다. 창극에선 작창이 정말 중요하잖아요. 가끔 재미 삼아 대본을 놓고 혼자서 작창을 해보기도 했습니다. 사실 소리꾼이라면 대부분 짧은 곡으로 작창을 해본 경험이 있어요. 하지만 하나의 스토리를 대상으로 하는 작창과는 비교할 수가 없죠. 이번 프로젝트 덕분에 작창을 깊이 배울 수 있었습니다.”(유태평양)

이번 시연회에서 선보일 예정인 ‘강릉서캐타령’은 양반 골생원이 기생 매화의 질펀한 연애 이야기인 ‘강릉매화타령’의 뒷이야기를 새롭게 창작한 것이다. 대본을 쓴 김풍년은 고선웅의 추천으로 이번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됐다. ‘강릉매화타령’의 결말은 강릉부사의 지시로 매화가 귀신인 체하는 바람에 골생원 역시 발가벗고 있다가 망신을 당하는 것으로 끝난다. 김풍년은 강릉부사와 매화에게 복수를 결심한 골생원의 조력자로 그의 겨드랑이에 붙어있던 서캐 세 마리를 등장시킨다.

국립창극단 작창가 프로젝트에 참여한 작가 이철희, 김민정(옹처), 김민정(덴동어미), 김풍년(왼쪽부터). 국립극장

“문학성과 음악성을 가진 창극은 작가라면 도전하고 싶은 분야입니다. 제 경우 마당놀이로 유명했던 극단 미추 출신이기 때문에 더 그런 것 같습니다. 다만 미추 연출부 시절엔 제가 작가로서 준비가 안 됐었죠. 이번에 너무 좋은 기회를 얻어서 뜨겁게 작업했습니다.”(김풍년)

‘강릉매화타령’에서 느낀 서캐 정신

‘강릉서캐타령’은 ‘강릉매화타령’ 주인공 골생원의 몸에 살던 서캐(머릿니의 알) 가족을 등장시킨 작품이다. 제목부터 판소리 특유의 해학미가 느껴진다. 극단 작당모의를 2016년부터 이끄는 김풍년의 경우 연극 ‘터키행진곡’으로 지난 5월 백상예술대상 연극상을 받을 때도 “제 머릿속엔 서캐가 있기 때문에 복잡해요”로 시작하는 기상천외한 소감을 통해 서캐를 언급한 바 있다.

“제가 서캐에 대한 특별한 감정이 생긴 계기가 있습니다. 2019년 남편(안무가 금배섭), 두 딸과 함께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한 달간 러시아를 여행했었는데요. 당시 딸이 이(머릿니)를 옮아온 상태에서 네 식구가 좁은 기차 객실에 계속 같이 있다 보니 모두 옮았어요. 아무리 이를 죽이고 서캐를 뽑아내도 그 번식 속도를 따라갈 수가 없었어요. 그때 힘없는 작은 것들이 할 수 있는 건 이가 서캐를 끊임없이 낳아 살아남는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원금 못 받아도 소극장에서 계속 연극 만드는 우리 모습 같잖아요. 일종의 ‘서캐 정신’이죠. 국립창극단이 보내준 ‘강릉매화타령’을 읽던 중 매화가 골생원의 이를 잡아주던 모습에서 ‘아, 이거다’ 싶었죠.”(김풍년)

국립창극단 작창가 프로젝트의 멘토링 장면. 국립극장

김풍년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던 유태평양은 “서캐 정신에 대한 김 작가님의 철학은 처음 들었지만, 무엇보다 대본 자체가 정말 재밌다”면서 “협업 콤비로 결정된 이후 처음 만났을 때 작가님은 이미 작품 구상을 마친 상태였다. 당시 골생원과 서캐의 관계에 대해 인간과 쥐가 서로 돕는 애니메이션 ‘라따뚜이’를 참고하라고 알려주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어 “대본을 읽다 보니 자연스럽게 작창 아이디어가 나왔다. 창본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작가님이 바로바로 수정해주신 덕분에 작업이 수월했다”면서 “게다가 대본과 작창 멘토로 참여한 선생님들의 성향이 각각 매우 달랐던 것이 배우는 입장에선 더 도움이 됐다”고 덧붙였다.

창본은 창극에 사용할 수 있도록 대본에 사설과 장단 등을 넣은 것이다. 창극 경험이 없는 작가에겐 대본의 창본화가 쉽지 않다. 그래서 국립창극단의 작창가 프로젝트는 작창가만이 아니라 창극 작가를 발굴해 육성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김풍년은 “판소리는 이야기꾼을 위한 장르라는 것을 이번에 깨달았다. 대사와 지문이 쓰인 대본과 창을 위한 창본은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많이 배웠다”며 “특히 이번 프로젝트의 두 작가 멘토가 작가로서 저의 성향을 잘 아셨기 때문에 트리트먼트부터 조언을 많이 해주셨다. 앞으로 다시 창극을 쓸 기회가 있기를 바란다”고 피력했다.

한편 이번 작품에는 골생원 역에 이시웅, 서캐할미 역에 왕윤정, 서캐손주 역에 김준수, 서캐손녀 역에 민은경이 출연한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국민일보 신문구독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