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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체탑이 된 꼴찌탑

‘킹겐’ 황성훈 인터뷰
DRX서 2022 롤드컵 우승 후 지난달 말 한화생명 입단


‘킹겐’ 황성훈을 6일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한화생명e스포츠 선수단 연습실에서 만났다. 그는 올해 DRX에서 ‘LoL 월드 챔피언십(롤드컵)’ 우승을 이루고, 지난달 말 한화생명e스포츠로 이적했다. 리그 꼴등 탑라이너에서 세계 최고의 탑라이너로, 1년간 비약적인 성장을 이룬 그의 비결은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었다.

-롤드컵에서 우승한 지 정확히 한 달이 지났다. 세계 정상에 올랐다는 게 실감 나나.
“지금이 가장 실감 나는 시기인 것 같다. 정말 잘한다고 생각하는 선수들이 모인 팀의 일원이 됐다. 유명한 건강 관련 유튜브 채널과 협업해 콘텐츠를 촬영했다. 경기장 밖에서 알아봐 주시는 분들도 늘어났다. ‘우승을 하긴 했구나’하는 느낌을 여러모로 받는다.”

-DRX의 우승을 점친 이들이 많지 않았다. 팀이 우승권 전력으로 발돋움했음을 언제 느꼈나.
“우승을 확정하는 순간까지도 그런 생각은 안 해봤다. 결승전 5세트를 앞뒀을 때도 ‘이번 한 세트만 이기면 우승이다’같은 생각을 하지 않았다. 우리가 준비해온 걸 팬들에게 오롯이 다 보여주고, 투지 넘치는 모습으로 게임에 임하고자 했다. 그러면 결과와 관계없이 후회가 남지 않을 거로 믿었다. 조금의 조급함도, 강박도 없이 편한 마음가짐으로 경기를 치렀다.”

-롤드컵 선발전부터 결승전까지 DRX는 쭉 언더도그로 평가받았다.
“그런 평가는 동기부여가 됐다. 나는 올해 e스포츠에 대한 가치관이 바뀌었다. 원래는 선수 개개인의 실력이 가장 중요하다고 봤는데, 2022시즌을 치르면서 ‘팀다운 팀’이 되는 게 더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DRX 선수들은 전부 크고 작은 결함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많이 무너지기도 했다. 올해 DRX는 누구한테도 질 수 있고, 누구한테도 이길 수 있는 팀이었다. 꼴찌였던 한화생명에 2만 골드 차이로 지기도 했다. 개개인의 실력만 놓고 보면 불안정한 부분이 많았다. 그런데 하나의 팀이 된 순간 완전해졌다. 그리고 롤드컵에서 우리의 잠재력이 만개했다.”

-8강전을 앞두고 EDG의 우위를 점친 이들이 많았다. 무엇이 승인(勝因)이었다고 보나.
“EDG는 우승 후보였고, DRX는 아니었다. 우리는 1년 동안 정말 많이 무너져 내렸고, 많이 져봤다. 패배에 익숙했지만, 그래서 패배에 큰 대미지를 받지도 않았다. 그게 강한 멘탈, 강한 다전제 실력으로 발전했다. 3세트를 역전한 순간 시리즈의 승기가 많이 넘어왔음을 직감했다.”

-4강에서는 LCK 서머 시즌 챔피언을 꺾었다. DRX가 유일하게 3대 1로 이긴 시리즈였다.
“외부의 시선으로 봤을 땐 젠지전이 EDG전이나 T1전보다 쉬워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 DRX 선수들의 잠재의식에는 올해 젠지 상대로 단 한 세트도 따내지 못했다는 사실이 남아 있었다. 경기 내용과 무관하게 ‘역시나 젠지는 상대하기가 까다롭다’는 느낌을 받았다.
우리 팀의 위닝 멘털리티가 더 강인했다고 생각한다. 1년 내내 이겨왔던 팀 상대로 세트패를 당한 순간 젠지로선 패닉이 왔을 것으로 짐작한다. 올해 젠지는 패배에 익숙하지 않은 팀이었다. 반면 우리는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멘탈의 중요성을 실감했다.”
라이엇 게임즈 제공

-T1과의 결승전, 대다수 관계자와 팬들은 ‘제우스’ 최우제의 탑라인전 우세를 점쳤다.
“4강전을 준비하면서부터 내가 잘할 수 있을 거란 느낌을 받았다. 나는 나 자신을 믿을 수만 있다면 누구에게도 지지 않고, 누구든 이길 수 있는 선수다. 그런 확신을 늘 갖고 있다. 결승전 미디어데이 인터뷰에서 ‘세체탑 자리를 놓고 겨뤄보자’고 한 건 빈말이 아니었다. 당시 내게 그만한 실력이 있다고 확신을 가진 상태였다.
나 자신과 내가 가진 데이터를 믿었다. 탑라이너라면 누구나 챔피언 간 대결 구도에 대한 자신만의 해석이 있다. 당시 나는 내 데이터가 절대적으로 맞는다는 믿음이 있었다. 상대가 특정 구도에서 블러핑을 해도 ‘너는 그렇게 해라, 나는 내가 해석한 대로 플레이하겠다’는 자세로 게임에 임했다. 그런 확신이 좋은 경기력으로 이어졌다.”

-4강전과 결승전에서 연이어 라인전 솔로 킬을 따냈다.
“전부 앞서 얘기한 라인전 데이터와 연관되는 것들이다. ‘제우스’ 선수도 그만의 근거가 있어서 그런 챔피언 픽을 했을 것이다. 나 역시 그랬다. 롤드컵은 누구의 근거가 더 확실한지를 증명하는 자리다. 그리고 내가 가장 옳다는 것을 증명해 보였다. 스스로를 믿은 게 주효했다.”

-아트록스가 결승전에서 계륵 취급을 받았는데, 막판에 황 선수가 챔피언을 잘 활용했다.
“밴이 되지 않는다면 픽할 생각은 있었지만, 사실 플레이할 일이 없을 거로 예상했다. T1이 JDG전에서 아트록스에 밴 카드를 투자했다. 결승전에서도 그럴 거로 짐작했다. 실제로 10일 넘게 아트록스를 연습하지 않은 채로 결승 무대에 올랐다. 아마 T1도 그점을 이용해 밴픽을 짰던 것 같다.
오히려 상대가 아트록스를 하길 바랐다. 잘 상대할 자신이 있었다. 아트록스는 OP 챔피언이지만 한계 또한 명확했다. 카밀, 요네처럼 트루 대미지 스킬이 있는 챔피언으로 라인전만 잘 버텨내면 이후부터는 챔피언 밸류 차이로 역전할 수 있었다. 강팀 간 맞대결에선 장기전이 자주 나오므로 아트록스의 힘이 빠질 가능성도 컸다. 양 팀이 눈치 싸움을 벌였다.”

-아트록스 상대법으로 최우제는 요네, 황 선수는 카밀을 제시했다.
“카밀이 CS 15~20개 정도 뒤진 상태에서 ‘신성한 파괴자’를 사올 수 있다면 카밀이 라인전을 이긴 것이다. 반대로 아트록스로 카밀을 상대할 땐 CS 30개를 벌리고, 팀에 협곡의 전령을 안기고, 포탑 방패 1개를 부숴야 한다. 그래야 이겼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구도마다 나만의 기준이 있고, 이것을 달성하면 라인전을 이겼다고 평가한다.”

-롤드컵 결승전 MVP로 선정돼 ‘큰 게임에 강하다’는 이미지가 생겼다. 마음에 드나.
“프로게이머에게 양날의 검 같은 이미지다. 나는 꾸준히 잘하는 선수가 좋은 선수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런 평가가 마음에 드느냐는 질문에 답을 드리자면, 그렇지 않다. 특정 상황에서 잘한다는 건 기복이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건 앞으로 내가 증명해나가야 할, 결과로 보여드려야 할 부분이다. 그럴 자신이 있으니 내년을 지켜봐 달라.”

-한타 능력이 부족하단 지적을 받아왔는데, 올해 롤드컵에서 크게 개선된 모습을 보였다.
“신동욱 코치님께서 ‘넌 라인전은 늘 이기는데 한타가 맛이 없다’고 하시더라. 신 코치님께 감사한 점이 많다. 해주신 지적 덕분에 한타 포지셔닝 실력이 늘었다. 내 예전 경기를 복기하면 봐주기가 힘든 수준이다. 항상 딜러진 옆에 자리를 잡고 있다. 이러면 상대로선 스킬을 쓰기가 편하다.
지금은 내가 LCK 탑라이너들 중에 가장 한타 포지셔닝을 잘한다고 자신한다. 롤드컵 4강전부터 내가 포지셔닝에 눈을 떴다는 느낌을 받았다. 최근 스크림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앞으로 더 잘할 자신이 있으니 경기력으로 증명해 보이겠다.”

-올해 롤드컵을 치르면서 깨달은 바가 있나.
“쉬우면서도 어려운 것을 깨달았다. ‘나 자신을 믿어야 한다’는 것이다. 힘든 상황이 오면 스스로를 불신하게 되는 위기가 온다. 그럴 때 자신을 믿을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나는 찾았다. 프로게이머인 나와 평소의 나, 두 개의 자아를 분리했다. 연습이나 대회에서 부진해도 마음에 담아두지 않고 훌훌 털어버렸다. 앞으로 뭘 해야 할지에만 집중했다. 게임에 대한 고민거리가 생기면 혼자서만 끙끙 앓지 않고 팀원들과 바로 공유했다.”

-롤드컵 우승 뒤 자유계약(FA) 선수가 됐고, 한화생명으로 이적했다.
“과정을 자세히 말씀드릴 순 없지만, 한화생명에서 좋은 선수들과 좋은 성적을 낼 수 있겠단 확신이 들어서 입단을 결심했다. ‘데프트’ (김)혁규 형을 포함해 한화생명 출신 동료들이 하나같이 ‘한화생명은 모든 게 갖춰진 팀이다. 네가 게임을 잘한다면 최고의 환경이다’라고 입을 모아 말하더라. 실제로 와보니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휴식 환경이 정말 뛰어나다.”

-전제인 ‘게임을 잘한다면’이 가장 중요하겠다.
“잘한 자신이 있다. 높은 커리어를 달성했으니, 그 감각이 사라지지 않게끔 마인드세팅을 하겠다.”

-한화생명과 황 선수의 내년 목표는 무엇인가.
“나는 이 멤버라면 우승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선수들이 하나같이 호전적이다. 호전적이라는 건 잘한다는 의미다. 수비적이면서 잘하는 선수는 없다는 게 내 지론이다. 최근 스크림을 해보니 예상했던 것처럼 다들 공격적으로 게임을 잘하더라. 개개인의 체급이 높다. 호흡을 맞춘 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콜의 조직력이 좋다. 앞으로 어떤 팀으로 변할지 나도 기대에 차 있다.”

-LCK 팀들의 리빌딩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가장 경계되는 팀을 꼽는다면.
“단연 T1이 경계된다. 그 다음은 젠지와 담원 기아다. 여전히 선수들의 네임 밸류가 높다.”

-팀이 아닌 탑라이너 중에 유달리 경계하는 선수가 있나.
“‘너구리’ 장하권 선수가 은퇴해 아쉽고 마음이 좋지 않다. 그와 계속 붙어보고 싶었다. 그는 나의 롤모델이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실력도 좋고, 배울 게 많았고, 인격적으로도 나무랄 게 없는 사람이었다. 가장 닮아가고 싶었던 선수였던지라 은퇴 소식이 아쉬웠다.
리그에서 대결할 선수 중에는 ‘라스칼’ 김광희 선수가 가장 경계된다. ‘라스칼’ 선수는 교과서적인 플레이를 하는데도 그만의 ‘플러스알파’가 있다. 보통 교과서적인 플레이를 하면 추가적인 득점을 올리기가 쉽지 않은데, ‘라스칼’ 선수는 그런 걸 잘 해낸다. 솔로 킬 횟수로도 잘 드러난다. 다방면으로 뛰어난 선수다.”

-내달 중 스프링 시즌이 개막할 것으로 전망된다. 남은 시간을 어떻게 활용할 계획인가.
“연습에 매진하고, 자기 관리를 철저하게 해서 건강한 마음가짐으로 시즌 첫 경기에 임하는 게 당장의 목표다. 매일매일 최선을 다하면, 하루하루 열심히 살면 마음이 건강해질 것이다. 앞으로는 팬들과 소통할 기회도 늘리고 싶다. 개인 SNS나 팀 차원의 콘텐츠에 열심히 참여해 팬들과의 소통 접점을 늘리겠다. 내년에도 멋진 모습을 보여드리겠다. 많은 기대와 응원을 부탁드린다.”

윤민섭 기자 flam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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