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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부의 겨울

담원 기아 ‘캐니언’ 김건부 인터뷰

‘캐니언’ 김건부가 9일 서울 영등포구 담원 기아 사옥에서 국민일보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유희은 PD

종로의 최상위 포식자 북극곰은 올해 그 어느 때보다도 허기진 겨울을 보냈다. 그가 처음으로 LCK 무대에 등장했던 2019년 이후 처음으로, 단 한 개의 트로피도 사냥하지 못한 채로 동면에 들어야 했다.

갑자기 달라진 주변 환경이 그를 곤란하게 했다. 서머 시즌 중 도입된 내구도 패치로 사냥감들은 전보다 질겨졌다. 줄곧 애용해온 사냥터 탑라인은 맛없는 녀석들로만 가득해졌다. 곰은 뒤늦게 바텀라인으로 발걸음을 옮겼지만, 예전만큼 만족스럽지가 않았다.

9일 서울 영등포구 담원 기아 사옥에서 ‘캐니언’ 김건부를 만났다. 역대 최다 POG 포인트(1600점)을 경신했던 스프링 시즌과 달리 개인도 팀도 많은 고민을 겪었던 서머 시즌의 뒷이야기, 새로운 멤버들과 함께할 2023년에 대한 전망을 들어봤다.

-롤드컵 8강에서 2022시즌을 마무리한 뒤로 어떻게 지냈나.
“예년보다 긴 휴가를 받아 ‘발로란트’나 칼바람 나락 같은 다른 게임을 하며 푹 쉬었다. 일주일 전 숙소로 복귀해 내년 대비 연습에 돌입했다. 현재는 프리시즌 패치에 대한 감을 잡고 있다. 정글러로 등장하는 챔피언들은 기존과 비슷한데, 정글링 난이도가 전보다 높아졌다. 아직 더 연구해야 하는 단계다.”

-2022시즌은 김 선수에게 어떤 의미인가.
“성적도 그렇고 많은 아쉬움이 남는 한 해다. 탑라이너와 바텀 듀오, 3인이 팀에 새로 합류하지 않았나. 그런 만큼 기존 멤버인 미드·정글이 팀의 중심이 돼야 했는데, 그런 경험이 처음이다 보니 많이 부족했다. 게임 내적으로도 외적으로도 미숙했다. 좋은 방향으로 팀을 이끌어나가는 힘이 모자랐다.”

-올해 가장 아쉬웠던 경기를 하나 꼽는다면.
“젠지와 대결했던 LCK 스프링 시즌 플레이오프 2라운드 5세트다. 그 경기에서 이기고 결승전에 진출했다면 아마 많은 것들이 바뀌지 않았을까. 초반에 터진 게임이었고, 우리는 전혀 조급해할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 다급하게 플레이하다가 게임을 그르쳤다. 내가 분위기를 잡고, 팀원들을 이끌어줘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LCK 스프링·서머 시즌 플레이오프와 롤드컵, 전부 다전제에서 한 끗 차이로 졌다.
“패인(敗因)은 실력 차이다. 다전제 5세트는 순수하게 실력 게임이다. 앞선 네 세트 동안 운이 따라서 이겼을지언정, 5세트로 가면 무조건 실력이 더 앞서는 팀이 이긴다. 기본을 제일 잘 지키고, 정석대로 할 줄 아는 팀이 유리하다. 올해 우리는 실력 차이로 졌다. 경쟁자들보다 한 끗이 부족했다.”

-5세트 ‘필살기’ 깜짝 픽들이 화제가 됐다. 정석 픽을 꺼냈으면 결과가 달라졌을 거란 시선도 있다.
“시즌 내내 챔피언 폭을 넓히기 위해 노력했다. 많이 연습해서 자신 있게 꺼냈던 챔피언들이다. 정석 픽에 대한 가정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 염두에 둬본 적 없다. 아마 정석 픽을 꺼냈어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을 것이다. 정석 픽도 깜짝 픽도 상대보다 실력이 앞선다면 이기고, 뒤진다면 지는 것이다.”

-김 선수도 롤드컵에서 비주류 챔피언인 케인을 꺼내 좋은 활약을 펼쳤다.
“롤드컵에 마오카이, 세주아니가 정글러로 나오는 걸 보고 카운터 픽으로 케인을 연습했다. 케인은 1레벨부터 카운터 정글링으로 변수를 만들 수 있는데, 탱커 정글러들은 1~2레벨에 약하다 보니 대처를 힘들어한다.”
라이엇 게임즈 제공

-롤드컵은 후회 없이 치르고 왔나. 도중 코로나19에 확진되기도 했다. 경기력에 영향을 끼쳤나.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는데 아쉽다. 처음 코로나19에 걸렸을 땐 단순히 몸살감기 증상이구나 싶었다. 그런데 하루가 지나니까 온몸이 아프더라. 그래도 상태가 빨리 호전돼서 다행이었다. 경기를 치르는 데 지장은 없었다.”

-팀이 서머 시즌 후반부터 노골적인 바텀 게임을 시도했다. 기존 팀 컬러와 전혀 다른 전략이었다.
“처음에는 적응에 어려움을 겪었다. 서머 시즌 중반까지만 해도 많이 흔들렸다. 다른 라인에 비해 바텀에 대한 이해도가 낮았다. 바텀은 두 명이 함께 게임을 한다. 두 사람(원거리 딜러와 서포터)이 모두 편해야 하더라. 둘과 같은 생각을 공유하기까지의 과정이 예상보다 오래 걸렸고, 가장 까다로웠다. 그래도 서머 시즌 후반부터는 팀이 바텀 게임에 잘 적응했다고 생각한다.”

-봄에 정글러 중 역대 최고의 활약을 펼쳤단 평가를 받았다. 반면 여름엔 상대적으로 부진했다.
“팀이 스프링 시즌 결승전에 진출했다면 그런 평가에 동의하겠지만, 그 전에 탈락했으니 엄청난 활약을 했다고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정규 리그 동안은 스스로 잘했다고 생각한다. 서머 시즌엔 스프링 시즌 대비 부진했다고 생각한다.”

-서머 시즌에 상대적으로 부진했던 이유가 있나.
“서머 시즌 개막과 함께 내구도 패치가 적용되고, 바텀의 중요성이 올라갔다. 이 때문에 (담원 기아가 기존에 잘했던) 초반 다이브를 통해 이득을 보는 상황을 만들기가 어려워졌다. 새로운 메타에서 정글러가 잘해야 하는 플레이들을 내가 늦게 터득했던 것 같아 아쉽다.”

-내구도 패치 이후 게임이 완전히 달라졌다고 보는 선수들이 많다.
“내구도 패치의 골자는 두 가지였다. 타워 대미지가 증가하고, 챔피언 체력이 늘어났다. 이 때문에 ‘너구리’ (장)하권이 형의 특기였던 초반 딜 교환을 통한 탑 다이브 압박이 어려워졌다. 시도할 수 있는 플레이의 가짓수가 줄어든 것이다. 탑에서는 변수 창출이 어려워졌는데 반대로 바텀 중요도는 높아지다 보니 적응하는 데 오래 걸렸다.”

-모든 라인에 같은 패치가 적용됐는데, 왜 탑 다이브는 어려워지고 바텀 중요도는 올라갔나.
“탑은 제이스·케넨 류의 챔피언이 절대 나올 수 없는 탱커 메타였다. 탱커들은 내구도 패치를 등에 업고 다이브에 쉽게 대처할 수 있었다. 반면 캐리력이 높은 바텀에선 예민한 구도가 자주 형성됐다. 바텀에서 다이브를 시도·대처한다기보다는 바텀 듀오가 딜 교환을 하기 편하게끔 정글러가 뒤를 봐주는 플레이를 해야 했다.”
LCK 제공

-팀이 리빌딩됐다. 장하권 대신 ‘칸나’ 김창동이, ‘덕담’ 서대길 대신 ‘데프트’ 김혁규가 합류했다.
“‘창동이 형은 하권이 형과 비슷하게 라인전을 세게 하는 걸 선호하는 것 같다. 지난 몇 년 동안 맞붙어본 혁규 형은 라인전에서 초반 주도권을 잡기 위해 노력하고, 이를 통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싶어하는 선수로 느껴졌다. 함께 생활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솔로 랭크를 열심히 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김 선수가 카카오톡으로 김혁규에게 담원 기아 합류를 제안한 게 화제가 됐다.
“원래는 혁규 형이 DRX에 잔류할 거로 짐작했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자유 계약(FA) 시장에 나오더라. 혁규 형에게 계약 상황을 물어보고, 내년에 같이 할 의사가 있는지 제안했다. 혁규 형과는 올해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국가대표 합숙에서 연락처를 교환했다. ‘어사(어색한 사이)’여서 이모티콘은 안 붙였다.”

-LCK 10개 팀의 로스터가 완성되어가는 단계다. 까다로울 것으로 예상하는 상대가 있나.
“올해 좋은 기량을 발휘했고, 멤버 변화가 없는 T1은 내년에도 잘할 것으로 전망한다. 젠지와 한화생명e스포츠의 게임이 가장 궁금하다. 젠지는 실력 좋은 상체 3인이 올해보다 더 좋은 호흡으로 돌아올 것이다. 한화생명엔 롤드컵 우승자만 3인이다. ‘클리드’ 김태민 선수와 ‘라이프’ 김정민 선수는 이미 젠지에서 호흡을 맞춰본 적이 있다. 어떤 게임을 선보일지 궁금하다.”

-김 선수만의 개인적인 차기 시즌 목표는 무엇인가.
“팀원들로부터 완벽한 신뢰를 얻고 싶다. 팀원들에게 늘 든든한 존재가 되고 싶다.”

윤민섭 기자 flam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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