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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안 오고 외국인 못 오고”… 벼랑에 선 사장님들

사진은 기사와 무관합니다. 국민일보DB

26일 경기도 하남시의 한 고무제품 제조공장. 사장인 안모(53)씨와 그의 아내, 사촌동생 두 명과 외국인 근로자 한 명이 바쁘게 원단을 자르고 염색 작업을 하고 있었다. 업무가 서툰 네팔인 A씨는 짐 나르는 일 위주로 하고, 나머지 네 사람은 정교한 작업에 투입됐다. 안씨는 “납품일자가 얼마 안 남아서 바쁘게 일하는 중”이라며 “코로나 전에는 7~8명이 하던 일을 지금 5명이 하고 있다”고 했다.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직원 일곱 명이 안씨 회사를 그만뒀다. 외국인 직원 두 명은 본국으로 떠났고, 내국인 직원 다섯 명 중 세 명은 배달 일을 한다며 나갔다. 팬데믹을 지나오면서 안씨의 회사 매출은 평균 15%가량 줄었다. 팬데믹 초기인 2019년에는 주문이 급감한 게 컸다. 최근 2년 동안 업황은 나아졌는데 일 할 사람을 구하지 못해서 매출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안씨는 “발주가 들어와도 다 소화할 수가 없었다. 10명이 하던 일을 대여섯 명이 하면 아무리 주말 없이 근무해도 마감을 맞추기 힘들다”며 “납기일 맞추려고 일가친척 동원하는 게 영세 공장에서는 흔한 일이 됐다”고 말했다.

중소기업계가 벼랑 끝에 서 있다. 수입 원자재 가격이 오르고, 환율이 상승하고, 물류비가 뛰고, 에너지 비용까지 급등하면서 수익성 악화에 시달리고 있다. 코로나19 대유행을 지나오면서 인력난까지 더해졌다. 팬데믹 기간 동안 외국인 근로자 수가 줄고, 배달 등 플랫폼 업계로 인력 유출이 발생하면서다.

26일 중소기업계에 따르면 현장에서는 “근로자가 없어서 생산을 포기한다”는 탄식이 나온다. 불법체류자 고용도 암암리에 늘었다.

섬유가공업계에 몸담고 있는 한모 대표는 “1년 내내 구해도 직원이 구해지지 않는다”며 “중소기업이 돈을 적게 줘서 인력난에 시달리는 게 아니다. 외국인은 보통 한 달에 350만원씩 주는데도 구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섬유업계에서는 수작업으로 염색을 하는 곳이 많다. 원단은 무겁고 염색 작업은 고되다. 내국인 근로자들은 기피하는 업종이다. 외국인이라고 다르지 않다. 적잖은 인력이 일을 시작했다가 힘들다는 이유로 금세 사업장을 이동한다. 외국 인력을 고용해도 신뢰관계를 쌓지 못하며 마음만 상하는 일이 허다하다.

한 대표는 “최소 1년은 일을 해야 숙달이 되는데 그전까지 일은 제대로 못 하고 임금만 나가는 셈”이라며 “외국인 근로자들이 근무를 시작하면 적어도 1년은 사업장을 옮기지 못하도록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 정부에도 여러번 얘기했는데 답이 없어 답답하다”고 말했다.

중소기업 가운데 특히 제조업 분야에서는 한국인 근로자 구하기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오랫동안 중소기업의 구인난은 외국인 근로자 고용으로 메워왔다. 그러다 2019년 팬데믹이 터지면서 외국인 근로자 인력 풀(Pool)도 쪼그라들었다.

법무부에 따르면 국내에 유입된 외국인 근로자 수는 2018년 59만4991명으로 정점을 이뤘다. 이듬해 다소 줄어서 56만7531명의 외국인이 산업 현장에 투입됐다. 그러다 2020년 팬데믹 발생으로 외국인 근로자 수가 빠르게 빠져나갔다. 2020년 외국인 근로자 수는 45만2297명으로 전년 대비 20.3% 감소했다. 2021년에는 40만6669명으로 더 줄었다. 외국인 근로자 수 40만명대는 2000년대 초반 규모다.

외국인 근로자 풀이 줄어들면서 불법체류자를 고용하는 사례도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누구도 대놓고 말하지 않지만 지금 같은 인력난에서는 불법체류 외국인 고용을 ‘어쩔 수 없는 일’ 정도로 여기는 분위기다.

영세 소기업을 운영하는 윤모(58)씨는 “불체자는 인건비가 더 비싸다. 위험을 감수하고 일을 하는 거니까 인건비를 높게 부르는 것”이라며 “여러모로 달갑지 않지만 아르바이트생 구하기는 힘들고 납기일은 급하게 맞춰야 하면 불체자 인력시장을 찾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 중소기업 대표는 “사람이 너무 급할 때는 학생으로 입국하거나 비자가 없는 사람들을 알음알음으로 구한다. 외국인들도 불법으로 일을 하면 돈을 빨리 많이 벌 수 있으니까 그쪽에는 어쨌든 사람을 구할 방도가 있다”고 말했다.

부득이한 상황이라고 해도 불법은 달갑지 않다. 중소기업계에서는 안정적인 고용환경이 만들어지려면 더 많은 외국인 근로자가 더 오래 우리나라에서 일 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는 게 낫다고 본다. 최근 중소기업중앙회가 발표한 ‘외국인력 고용 관련 종합애로 실태조사’를 보면 외국인 근로자 추가 고용 희망 인원수가 평균 5.4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외국인 근로자 체류기간은 ‘5년 이상 추가 연장’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39.4%로 가장 많았다.

중소기업학회장을 지낸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는 “일자리 미스매칭 문제는 어제오늘 일은 아닌데 제조업의 경우 숙련된 일손이 많이 부족해져서 큰일”이라며 “외국인 근로자 수요가 많은 게 현실이다. 산업 연수생 유입을 좀 더 원활하게 하는 식으로 숨통을 틔워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하남=문수정 기자, 구정하 기자 thursda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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