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집이 지옥이다” 피눈물 나는 전세사기 세입자들

두 번이나 사기 당한 피해자도


아내의 출산을 앞두고 있던 2021년 인천 미추홀구 오피스텔을 전세로 계약한 박정호(37)씨는 26일 집주인의 휴대전화로 다시 전화를 걸었다. 두 달째 휴대전화에서는 “고객님의 전화기가 꺼져있어…”라는 안내음이 들릴 뿐이다. 꿈에 그리던 아파트 청약 입주를 앞두고 오피스텔 전세계약 만기인 오는 10월에 보증금을 빼서 이사할 계획이었다. 박씨는 “휴대전화가 켜질 때를 기다리며 매일 전화를 걸고 있다”고 했다.

그가 계약 만료 9개월도 더 남은 시점에서 계약 종료를 미리 알려주려 한 건 집주인이 전세보증금을 미리 준비할 수 있는 시간 여유를 주려는 차원에서였다. 박씨는 과거 이미 한 차례 ‘빌라왕’으로부터 전세사기를 당한 아픔이 있다. 그런데 현재 집주인과도 연락이 닿은 건 지난해 11월이 마지막이다. 또 사기였다.

박씨는 “내가 마치 전세사기를 쫓아다니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 첫 피해는 2019년 1세대 빌라왕 이모(66)씨와 서울 양천구 신월동 신축 빌라 전세계약을 맺으면서 시작됐다.

지금은 빌라왕으로 불리는 이씨는 당시만 해도 세입자에게 인심 좋은 집주인이었다. 박씨는 “‘전셋집이지만 못질도 하고 편하게 살라’는 이씨의 말에 안심하며 계약했다”며 당시를 떠올렸다. 하지만 묵시적 계약갱신(계약 기간 2년)을 한 달 앞두고 이씨는 돌연 연락이 끊겼다. 그 무렵 인근 강서구 화곡동에는 전봇대마다 또 다른 1세대 빌라왕 강모(56)씨에게 피해를 당한 이들을 찾는다는 전단이 붙었었다.

박씨는 “혹시나 나도 같은 상황인지 알아봤는데, 내가 사는 빌라에서만 피해자가 여럿 있었다”며 “그제야 전세사기라는 걸 알게 됐다”고 했다. 다행히 주택도시보증공사(HUG) 전세보증보험에 가입한 상태여서 대위변제는 받았지만, 신월동에서 빠져나오는 데만 2년 6개월이 걸렸다.

두 번 피해를 볼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고 한다. 믿을 만한 부동산중개업소를 소개받았고, 중개인에게 식사도 대접하면서 수차례 당부도 했다. 빌라왕들이 노리는 신축 빌라를 일부러 피해 준공 5년 된 오피스텔을 골랐다. 보증보험 가입이 안 되는 곳은 거절했다. 확인해 본 등기부등본도 깨끗했다.

하지만 박씨는 지금 서울 동대문구 휘경동 공사장 한복판으로 내용증명을 보내는 처지다. 이곳에 있던 집주인의 집은 재개발로 사라졌는데, 새로 전입 신고된 곳이 없어서다. 박씨는 “이번엔 사기가 아니라 연락이 안 되는 거라 믿고 싶다”면서도 “내년에는 경기도 오산의 아파트로 이사할 계획이다. 회사까지 2시간30분이 걸리지만 전세사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괜찮다”고 말했다.

두 번이나 전세사기를 당했다는 박정호(37)씨가 국민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최현규 기자

다른 빌라왕 피해자들의 삶도 아직 회복되지 못했다. 세 모녀 전세사기단 피해자들은 지난해 9월 형사재판에서 주범인 모친 김모(58)씨를 처음 마주했다. 증인으로 법정에 섰던 박혜진(36)씨는 “돈은 돌려받지 못하더라도 (김씨가) 처벌은 꼭 받아야 한다고 겨우 말했다”고 했다. “전세보증금 대신 집 소유권을 넘기겠다”던 세 모녀 전세사기단 주범 김모(58)씨의 수법에 어쩔 수 없이 집을 떠안은 피해자들도 있다. 황다진(34)씨도 아버지 명의로 집을 경매받았다. 황씨 명의로는 이미 청약이 당첨돼 집을 살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는 “집이 제일 편안해야 하는데 지옥 같다”고 했다.

2019년에 사실상 첫 전세사기인 1세대 빌라왕 강씨에게 피해를 입은 이들은 이후 부진했던 수사에 분통을 터트렸다. 3년간 고소인들이 받은 연락은 1년에 한두 번씩 “검사가 바뀌었다”는 내용뿐이었다. 당시 고소에 참여한 박애정(38)씨는 “우리가 처음 얘기했을 때 더 귀 기울여 들어줬으면 이런 사태가 조금은 줄어들지 않았을까 싶다. 3년 전이나 지금이나 수법이 바뀐 게 하나 없다”고 말했다.

정신영 김용현 이의재 기자 spirit@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국민일보 신문구독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