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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라왕’ 처음 잡아낸 수사관 “나쁜 사람이 당당한 세상 안돼”

화곡동 원조 빌라왕 담당
서울 강서경찰서 윤병운 수사관
세 모녀 전세사기 수사
서울청 강력범죄수사대 이승하 계장

화곡동 원조 빌라왕에게 처음으로 '사기' 혐의를 적용했던 서울 강서경찰서 윤병운 수사관과 '세 모녀 전세사기단' 사건을 밝혀 낸 서울청 강력범죄수사대 이승하 수사3계장

“이게 말이 됩니까. 어떻게 해서든 어디 한번 해봅시다”

2019년 8월 서울 강서경찰서 소속 윤병운 수사관은 화곡동 원조 빌라왕 강모(56)씨에 대한 고소 사건을 배당받았다. 주변에서는 “어차피 (전세사기는) 사건이 되기 어렵다”는 말들이 많았다. 당시만 해도 보증금 미반환 사고는 단순 민사 사건으로 취급되던 때다. 하지만 윤 수사관은 비슷한 또래의 사회 초년생들이 피해자가 돼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고 수사 의지를 다졌다고 한다.

그는 “신혼 부부들이 전 재산이나 다름없는 전세보증금을 날렸는데, 피해를 준 집 주인과 공인중개사는 ‘잘못한 게 없다’며 당당해 하는 모습을 보니 화가 났다”며 “처벌 선례가 없다지만 어떻게 해서든 이런 피해를 막아보려고 했다”고 말했다.

그는 1년 가까이 주말도 반납한 채 수사에 전력했다. 283채를 소유한 임대사업자 강씨와 공범 공인중개사 조모(54)씨의 거래 내역을 샅샅이 추적했다. 그리고 마침내 전세 계약을 맺을 때마다 수상한 자금들이 두 사람의 계좌로 들어오는 정황을 포착했다. 시세보다 부풀린 전세보증금을 받은 뒤 건축주에 주고 남은 돈을 나눠 가진 ‘리베이트’ 성격의 돈으로 보였다.

이런 거래 방식에 대해 윤 수사관은 “말도 안 되는 것”이라고 했다. 자기 돈을 한 푼도 들이지 않고 돈을 벌다가 임대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사고가 발생했는데도 처벌되지 않는 현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윤 수사관은 ‘사기’ 혐의를 입증하기 위해 부동산 임대사업자 제도와 부동산 관련 세법을 포함해 부동산 시장 전반에 대한 공부를 했으며, 결국 이들에게 사기 혐의를 적용해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전 재산을 날린 세입자들이 눈물을 흘리며 경찰서를 오갈 때, 피의자인 조씨는 대형 로펌을 선임해 대응했다고 한다. 윤 수사관은 “평범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에서 ‘나쁜 사람’이 당당하면 안 된다. 그런 것을 막는 게 경찰이 할 일”이라며 “법이 없다고 이들을 방치할 수는 없었다. 어떻게 해서든 한번 막아보려고 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어렵사리 사건을 송치한 뒤 전국 각지의 경찰 수사팀에서 사건 기록을 복사해갔다고 한다. 곳곳에서 비슷한 유형의 임대보증금 미반환 사고가 터질 조짐이 보였던 것이다. 윤 수사관은 “처벌하지 않으면 분명히 ‘하나의 수법’으로 자리 잡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아쉽게도 그렇게 됐다”고 말했다.

실제 ‘무자본 갭투자’ 수법은 금세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서울경찰청 강력범죄수사대도 2021년 초 비슷한 첩보를 입수했다. 임대사업자인 모친이 두 딸 명의로 빌라를 사들였는데, 전세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사고가 연이어 벌어지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국민일보 취재 결과 세 모녀가 사들인 주택 규모가 수도권에 500채가 넘는 것으로 드러나면서(국민일보 2021년 5월 10일자 1면 참조) 수사에도 탄력이 붙었다.

사건을 담당한 강력범죄수사대 이승하 수사3계장은 “선례가 없었지만 누가 봐도 주택 수백채를 사들이는 건 이상했다. 분명히 ‘뭔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며 “피해자들이 개별적으로 일선 경찰서에 고소해서는 절대 처벌할 수 없기 때문에 대대적인 수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2020년 강서경찰서에서 송치한 원조 빌라왕 강씨 사건은 서울남부지검에서 진도를 나가지 못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그래도 강수대는 수사에 속도를 올렸다. 이 계장은 “피해자가 지속적으로 양산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이대로 놔두면 도저히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어떻게 해서든지 처벌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강수대는 각 일선서에 접수된 세 모녀 피해 사건을 모아 대대적인 수사에 착수했고 이듬해 1월 세 모녀에게 사기 혐의를 적용해 검찰에 송치했다. 검찰은 세 모녀와 공모한 분양업체까지 찾아내 이들을 무더기로 기소했다. 검찰의 보강 수사를 거치며 이 사건의 피해액은 무려 800억원 규모로 늘어났다. 대부분 사회 초년생이나 신혼부부들의 전세보증금이었다.

‘세 모녀 사건’이 기소되자 대검찰청은 전세사기에 대해 엄정대응 지시를 내렸다. 경찰도 전담수사본부를 설치해 대대적인 수사에 착수했다. 원조 빌라왕 강씨 사건도 지난 4일 뒤늦게 재판에 넘겨졌다. 이 계장은 “사회적으로 전세사기에 대한 경각심이 커졌고 정부 차원의 대대적인 단속으로도 이어져 의미가 크다”며 “더 이상의 서민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강력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판 기자 pa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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