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길원·청란교회 목사, 동서대학교 석좌교수(가족생태학), 하이패밀리 대표

리더십 투어를 위해 하이패밀리를 찾아오는 이들에게 제일 먼저 보여주는 곳이 있다. 화장실이다. 화장실 앞에 영어 안내문이 있다. 남성을 나타내는 MEN은 왼쪽을 가리키는 화살표(←)와 함께 ‘to the LEFT’라고 쓰여있다. 이어 여성의 WOMEN은 오른쪽(→)을 가리킨다. ‘are always RIGHT’라 적혀있다. 물론 한 가운데 ‘BECAUSE’가 있다. 해석을 덧붙인다. “남자는 왼쪽, 여자는 오른쪽. 왜냐하면 여자는 항상 옳으니까.” 순간 웃음이 빵 터진다.

실제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탈의실이든 화장실이든 여성용은 항상 우측에 있다. 남녀 표식이 없을 때라도 남성은 왼쪽, 여성은 오른쪽이 기본이다. 이런 규칙을 일상의 표준화라 부른다. 서양 속담에는 ‘왼쪽에 있는 숙녀는 숙녀가 아니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당연히 국가 정상회담이나 부부가 동반하는 자리에서 여성은 언제나 오른편이다. 한국 대통령들이 외국에 나가서 종종 실수하는 것이 이 대목이다.

이것만이 아니다. 우리는 아직도 ‘일본 위안부 피해자’란 말을 너무 쉽게 쓴다. 그러다 보니 보상금에 시선이 머문다. 피해자에게 보상 말고 뭐가 있겠는가? 어떤 정신 나간 공직자는 ‘화대 청구’라고 해서 여성계의 분노를 자아냈다. 이를 ‘일본 위안부 생존자’라고 해보라. 우리는 그들을 존경 어린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다.

하지만 이것도 아니다. 그들을 ‘전쟁 성폭력 피해 인권 운동가’라고 지칭할 때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전 세계 여성들을 대변하는 일이 된다. 2018년 노벨평화상 위원회는 나디아 무라드(25)에게 노벨평화상을 수여했다. 성폭력 피해자가 아니라 세계평화에 기여한 인권 운동가여서다. 이들을 지지하고 치료하는데 앞장선 콩고민주공화국 의사 드니 쿠퀘게(63)도 공동수상의 영예를 누렸다.

최근 나는 또 한 번 화들짝 놀란 일이 있다. 최태원⸱노소영 이혼 소송의 결과 앞에 보인 여성계의 길고 긴 침묵이다. 한때 가정폭력을 ‘부부싸움’으로 방치했던 프레임에 아직도 갇혀있어서일까? 남편의 유책 사유에도 불구하고 힘없이 쫓겨난 ‘불행한 공주’로 보아서일까? 그도 아니라면 보상액이 적다고 투정하는 ‘피해 호소인’으로 치부해서일까? 이래서 여성의 적은 여성 자신이라는 말이 나온 것일게다.

미투운동 때의 잔 다르크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희한한 일이다. 침묵을 넘어선 방조에도 불구하고 가냘픈 목소리가 하나 있었다.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김은미 교수였다.
“이러한 시점에서 이번 판결이 가정을 돌보고 가꾸는 일의 가치에 대해 어떤 사회적 메시지를 내었는가 생각해보자. 후하게 쳐주어도 그냥 후려친 셈이다.” 그리고 이렇게 지적한다. “그동안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징하게 질긴 가부장제의 그림자는 남녀 모두의 삶을 여전히 짓누르고 있다. 통계청 집계에 따르면 2023년 1인 가구 추계치는 약 734만 가구로서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으며 이미 전체 가구의 약 33.6%가 1인 가구이다. 저출산 대책을 세운다고 난리들이지만 저결혼이 있기에 저출산이 있다.”(‘1.2%’라는 제목의 칼럼) 왜 김 교수는 이혼재판을 두고 뜬금없이 ‘저결혼’을 꺼내든 것일까?

2019년 10월 처음으로 인구 자연증가율이 0%에 그쳤다. 이는 예고편이다. 2022년 2분기 합계출산율은 사상 최저치(0.7명대)를 기록했다. 이대로라면 100년쯤 후엔 대한민국이 지구상에서 가장 먼저 소멸하게 된다. 최악의 시나리오다. 이래서 ‘민족의 자살’이 시작되었다는 말이 나온다. 북핵보다 무서운 것이 저출산이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나 관계자들은 출산을 언제나 보상의 문제로 접근하고 있다.

나경원 전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이 신혼부부 전세·주택구입자금 저리대출에 더해 출산과 연계해 원금을 탕감하는 방안을 언급했을 때 나는 경악했다. 이게 한국 여성들에 대한 대체적 시각이다. 이러니 나라의 장래가 어떻게 될 것인가?

마침 흥미 있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다. 일본의 사사노 미사에(이바라키대학) 교수는 ‘한국과 일본의 저출산 원인’을 비교 분석했다. 그 핵심이 가치관의 문제였다. 실제로 한국은 일본보다 저출산 예산을 훨씬 많이 투입했다. 하지만 효과가 없었다. 사사노 교수의 연구에 의하면 한국 남성들은 부모 세대와 자녀 세대 간 대학 교육 차이가 30% 포인트 정도인 반면 여성들은 60% 가까이나 된다. 세계에서 유례가 없을 정도로 딸 세대의 고학력화가 이뤄진 것이다. 그런데 고학력자만 늘었지 가치관이 이를 따르지 못했다는 거다. 이와 같은 차이가 좁혀지지 않는 한 젊은 여성들은 결혼이나 출산을 미룰 수밖에 없다. 저출산 관련 예산을 폭탄처럼 투입하더라도 남녀 육아 분담이나 직장 내 젠더 평등의 문화 등이 서둘러 변하지 않으면 출산율 높이기가 어렵다는 것이 결론이다.

국제 NGO 연합회 자문역을 맡고 있는 장세규 목사(미국 거주)는 이렇게 말했다.
“저출산 문제는 경제가 핵심이 아니다. 사회⸱문화 현상에 원인이 있다. 한국의 젊은 여성들은 부모 세대에 비해서 엄청난 변화를 거쳤다. 그로 인해 여성의 인권과 파워가 급격하게 늘었다. 젊은 여성들이 급격하게 높아진 자존감, 인권, 능력 등에 비해서 그들에게 제시하는 출산의 동기가 조선시대 수준의 구태에 머물러 있다.” 덧붙여 여성 인권과 자존이 서구에 비해서 ‘청동기 시대’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이번 재판은 보상액의 문제가 아니었다. 한국의 내일을 향한 내비게이션이었다. 피해 호소인(?) 노소영은 말했다. “이 싸움은 단순히 부부간의 이혼 문제 이상입니다. 나라와 미래세대가 걸린 일입니다.” 그의 말은 예언자의 목소리를 닮았다. 이번 재판은 한동안 여성을 향한 표준시각으로 작동할 것이다. 우려하는 것은 바로 이 대목이다. 워킹맘들의 가장 큰 소원이 ‘나도 남편에게 있는 아내’가 하나 있었으면 하는 거다. 비록 여성 재판장일지라도 예외일 수 없다. 우리는 아직도 ‘여성은 남성보다 능력이 떨어진다’ ‘여성의 본분은 오롯이 가정을 지키는 것이다’ ‘여성의 이익은 남성이 알아서 대변한다’는 질기고 질긴 확증 편향(conformation bias)에 갇혀있는 것은 아닐까? 이 ‘편견(偏見)이 사회 발전과 저출산의 가장 큰 걸림돌이다.

이제는 우리의 노소영을 향한 시선이 아니라 한 번쯤 그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볼 때가 되었다. 한국 사회의 선진화나 저출산, 아직도 갈 길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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